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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Aug 06. 2021

주말부부의 저녁 없는 삶.

저 사진을 고른 건 우연이 아니다.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절벽 끝에 자란 저 나무가 안쓰러웠다. 한편으로는 용맹스럽게 보다.


저 사진 속 나무처럼 척박한 내 마음에도 무언가가 자랄 수 있겠지? 아니, 어쩌면 이미 자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



시간이 지날수록 주말부부를 한 게 눈물 날 만큼 후회되는 날들이 늘어갔다.


주말부부를 할 무렵부터 업무 시간이 끝난 후 시작되는 프로젝트뿐 아니라 회사 업무도 너무 바빠졌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도무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 부부의 장점은 끊이지 않는 티키타카 대화인데 그게 막혀버린 것이다.


참아도, 참아도.

기다려도, 기다려도.


그를 보는 건 커녕 대화할 수 있는 시간도 주어지지 않으니 심신이 지쳐가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워도, 일상에 감사한 게 가득해도 마음 한구석에 채워질 수 없게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실 없이 주고받던 농담도, 하루의 일과를 나누는 것도, 별 거 아닌 말들서로가 하는 말이라면 귀 기울여 듣고 피드백을 하던 것도 다 오래전 일이 돼버린 거 같았다.


그와 함께 했던 좋은 추억들도 이제 더는 힘듦을 밀어낼 만큼 힘을 잃었다.


이제 마주 보고 얘기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데.

하루 중 잠깐이라도 편하게 이야기라도 나누면 좋겠는데 참고 참아도 작은 바람조차도 사치처럼 돼버리니 속이 점점 곪아가는 것 같았다.


내가 이러자고 주말부부에 동의를 했나.


바보 같지만 그의 힘듦보다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이 더 커져버렸다. 그리움이 쌓이다 보니 고단함으로 변해버렸다.


몇 번을 곱씹으며 날 다그치기도 했다.


애 같은 투정 좀 그만 부려. 11시가 다 되도록 일만 하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어. 이게 다 누구 좋자고 하는 거야? 혼자 잘 살겠다고 하는 거야?


그런데 사실 나는 그와 떨어짐 앞에서는 애가 맞았다. 내게 그와의 저녁은 매일 너무 특별했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일상이었다.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익숙해졌다. 오히려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이 아이들이 내 곁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이 함께 있어 외롭지 않고 위로가 많이 된다. 아이들을 돌보고 있으면 저녁에도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현실을 잊을 수 있었고 그  생각이 안 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덜 고단했으니까.


차라리 몸이 힘들고 바쁜 게 나았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 그리워하고 그와의 시간을 곱씹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가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집도 텅텅 빈 것 같고, 마음도 텅텅 빈 것 같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우리 첫째가 가장 아끼는 건 아빠가 덮고 자던 이불이 되었고, 아빠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는 편지를 썼다. 이 세상에서 아빠는 보석보다도 소중하다고 했다. 주말부부 하느라 힘들지요하며 신랑의 마음까지 헤아렸다.


그렇게 보면 우리 집은 나와 아이가 바뀐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신랑에게 매일 저렇게 예쁘게 말하면 우리 신랑 타지에서 얼마나 든든하고 힘이 날까.


그 생각에 열심히 그에게 힘이 되는 말들과 긍정의 말들을 해 왔었지만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내 마음이 척박해지니 곱고 예쁜 응원의 말들이 잘 생성되지 않았다. 위로도 할 수 없었다.


소통할 시간이 없어 힘들고 외롭다고, 떨어져 있는 게 고단해 죽을 지경이라고 그런 말들만 나왔다. 그런데 곧이곧대로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보태지 않아도 그는 이미 충분히 피로하고 힘들 테니까.


그러자 우리는 더 대화가 줄었다.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11시가 넘거나 11시나 되는 그에게 고생했단 말과 잘 자란 인사만을 남기고 황급히 도망쳤다.


그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고 보고 싶고 안타깝다는 말을 많이 했다.


다정해서 어쩌면 그가 미웠다. 이렇게 보고 싶은데 만나고 싶은데 왜 이리 힘든지. 그렇다고 이게 당장 해결되지도 않는데.


덜 보고 싶은 사람이었으면, 그가 덜 좋았다면 이만큼 힘들었을까.


그러기에 그는 너무 좋은 사람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12시가 되어 들어가는 날이 아니면 내게 편지를 써줬다. 아가 힘든데 입만 놀려서 미안하단 그의 말에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담겨있어 눈물이 쏙 들어갔다.


이제 겨우 주말부부가 된 지 한 달이 지났단 게 믿기지 않지만, 앞으로 이걸 4개월이나 더 해야 한다는 게 더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 그에게 약속할 수는 있다.


아무리 연락이 힘들어도, 대화가 줄어도, 그를 못 만나도 그를 내 마음에서 놓지 않을 거란 사실이다.


차라리 생각을 안 하면 덜 힘들지도 모르지만 나는 앞으로도 여전히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그를 떠올릴 것이고, 그가 없는 빈자리 속에서도 늘 그를 생각할 것이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그를 마음에서 밀어내진 않을 거다.


비 오고 난 후에 땅이 더 단단하게 굳고 무지개도 뜨듯이 우리의 주말부부가 삶에서 그런 역할이 되면 좋겠다. 지금은 이렇게 힘들어도 나중에는 이 힘듦이 서로를 많이 사랑했기에 버틸 수 있었던 시절로 기억되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 간절하게 다시 그와의 저녁이 있는 삶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를 현명하게 잘 보내야 하는 게 먼저는 사실을 안다.


앞으로 아이들을 다치지 않게 잘 케어하고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사랑을 더 담뿍 줄 거다.


신랑에게는 내 마음의 평정을 얻어 불안함을 심어주지 않도록 온 힘을 다 할 거다. 힘이 되는 말도 기쁨이 될 수 있는 말도 많이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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