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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Sep 08. 2021

우리 집에도 cctv가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찍혔으면 하거든.

7살 첫째가 땀이 나서 머리도 감고 몸도 씻어야 하는데 "엄마, 만져봐. 나 안 씻어도 되겠지? 하나도 안 찐득하지"라며 씻기를 거부하는 날이 있다. 어떻게든 구슬려서 화장실 앞까지 데리고 가는 일이 쉽지가 않다.


가족 중 가장 늦게 잠드는 사람조차 자러 들어가고 모두가 잠든 시간 둘째와 내가 있는 방에만 불이 꺼지지 않는다.


잠을 자지 않는 아이를 졸음을 참아가며 기약 없이 보다 잠을 놓친다.


설상가상 잠투정을 한다고 온 몸을 활처럼 휘어 뒤로 젖힐 때 더는 안고 있을 힘도, 업을 힘도 없다.

당장에라도 내려놓고 싶은데 기를 쓰고 안고, 둘러업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아니면 이 아이를 재워줄 사람 없어.'


아이는 내려놓는다고 자지 않는다.


겨우 겨우 아이를 재웠다. 


잠을 놓쳐버린 나 뒤늦게 잠이 들었다.


꿈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알람 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된다.


간식통과 수저통 물통을 챙겨 가방을 싸고 곤히 잠들어 있는 첫째를 깨운다.

목소리는 씩씩하되 다정해야 한다.  걱정 대신 사랑을 먹고 유치원에서 티없이 잘 지낼 수 있게.


든든하게 잘 있다 오라고 깨우기 전에 이미 준비해 놓은 아침을 먹이고 씻기고 입힌다. 둘째와 함께 나가야 해서 둘째의 기저귀를 간다. 혼자 둘째를 들춰 안아 아기띠를 메면 첫째 등원 준비 완료다.


집으로 돌아와 아기가 배고플까 봐 먼저 배불리 밥을 먹여놓고 뒤늦은 밥을 먹는다.


뭘 먹어도 감사하고 맛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아기는 밥 먹는 내내 내 다리에 붙어 울 칭얼댄다. 식탁은 어느새 전쟁터가 된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달래느라 자주 한쪽 무릎에 올려 밥을 먹는다. 그럼 데워놓은 국도 냄새로만 먹어야 한다.


한 손으로는 안아 든 아이를 감싸고 한 손으로는 겨우 가까운 반찬들만 집어가며 서둘러 식사를 끝낸다. 아이가 손에 닿는 식기들에 손을 뻗어 잡으려 해서 밥 먹기를 포기하고 남기기도 일쑤다.


칭얼거림은 밥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계속 칭얼거려서 업어줬는데 업혀서도 칭얼대다 한잠이 들다. 내려놓으려 할 때 마다 다시 깨서 엄청 큰 목소리로 울어댄다. 눕히려는 마지막 시도에서는 결국 머리를 흔들고 격렬하게 우는 아이에게 입술이 부딪혀 비릿한 피맛이 다.


그때마다 '내가 이 아이 엄마니까, 주 양육 자니까, 당연한 거다. 불평하지 말자.' 속으로 수없이 읊조다. 아이를 보는 건 내 몫이라고 되뇌어본다.


아이가 새카만 눈동자로 날 보면 '그래. 이렇게 이쁜데 고생 좀 시켰다고 무슨 대수야.'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 안길 때면 온 우주를 안은 듯 충만하고 부러울 게 없다.


그렇지만 엄마도 지칠 때가 있다. 나 혼자밖에 이 고생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억울하기도 하다.


아이를 보다 보면 단단하게 묶은 머리가 어느새 반 이상 풀려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져 있다. 눈은 이 나갔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있을 때도 있다.


그걸 나만 안다. 그 모습을 나만 기억한다.


그럴때면 우리 집에도 cctv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웃는 모습, 사랑스러운 모습, 귀여운 모습, 때로는 떼쓰는 모습, 우는 모습까지도 다 찍혀있다. 그것도 내 사진첩에 차고 넘칠 정도로.


그런데 내가 아이를 돌보느라 고단하고 힘겨운 모습은 없다. 날 찍어주는 사람이 없다. 가 곁에서 내 힘듦을 지켜만 봐주더라도 위로가 될 텐데.


그래서 나의 그런 모습이라도 찍히고 싶다.


나는 그래서 울더라도 cctv의 사각지대에서 울 않을 것이다. 


cctv가 있다면 가장 잘 보이는데 앉아 펑펑 울어버릴 것이다. 설령 누가 보지 않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보지 않더라도 나라도 며칠지나 그걸 보고  '아 그래도 오늘은 엄청 수월한 편이구나. 다행이다.' 안도할 수 있을 테니까.


시간이 훨씬 더 지나서는 영상을 보고 웃기까지 하며 '그래. 그래도 애들이 어린 이때가 참 좋았지.' 하며 추억할지도 모른다.


'그때 그만큼 힘들어봐서 이렇게 단단한 엄마가 될 수 있었잖아.' 하며 뿌듯해할지도 모른다.


예방접종을 맞은 저녁부터 다음날 낮까지 한창 칭얼댄 둘째는 어느새 창문에 붙어 청명한 바깥 하늘과 지나다니는 자동차 같은 걸 보며 가을바람을 맞고 있다. 결 편안한 모습이다.


아이가 편안해 보이는 그때서야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칭얼거림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초조 마음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수저를 놓을 때의 마음도, 업고 있던 허리가 당기고 아파 내려놓고 싶었지만 악착같이 버티던 그 마음까지.


흙탕물이다.


나도 가을바람을 맞으며 마음을 토닥인다. 아이를 재우 듯 토닥거린다.


이제야 겨우 불순물들이 된 지치고 모난 감정들이 가라앉 투명한 바닥을 드러낸다.

 

지금 보이는 이 투명한 바닥이 사실은 진심이다.

아니래도 내가 그렇다 믿으면 진짜가 된다.


선명한 빛깔의 조약돌이 동글동글 사이좋게 놓여있고 우리 아이들같이 작고 앙증맞은 물고기가 헤엄친다.


그래,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야.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만났잖아. 그래, 나는 정말 감사해야 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잖아. 어쩌면 그날 이후로 내게 주워진 삶은 공짜로 사는 선물 같은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첫째 아이를 낳고 출혈을 잡지 못해 바로 다시 수술실로 가 응급 수술을 한 기억.


둘째 아이를 낳고 8일 넘게 소변줄을 끼고 있으며 소변줄이 스치는 자리 자리마다 헐어서 쓸리고 아팠던 때를 떠올린다. 그 소변줄이 막혀서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했던 걸 기억한다. 요의를 느끼지 못해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하나 무서웠던 그때를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둘째를 분만할 때 두 시간 만에 나온 나를 두고 정말 위험했다며 하얗게 질린 의사 선생님의 표정을 기억한다.


cctv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이제 넣어 둬야지.


'나만 기억하고 나만 알면 다 괜찮잖아. 내가 아는데, 그럼 이 시간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아니까 칭얼대고 쉼 없이 울지. 아이니까 고집도 부리고 말도 안 듣지. 그런 아이라 사실은 널 사랑하는 건데 입맛에 맞기만을 바라는 건 내 욕심이지.


오늘도 아이들을 보며 엄마인 내가 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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