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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Sep 06. 2021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어서.

내가 한 거짓말.





닭가슴살 같은 퍽퍽 살은 쳐다도 안 보던 내가 입맛이 바뀐 이유.


내가 자랄 때 우리 가족에게 닭가슴살 같은 퍽퍽 살을 먹는 건 기이한 광경이자 벌칙이나 다름없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건 오직 촉촉하고 야들야들부위, 한 없이 기름지고 바삭바삭한 부위였다. 닭다리살이나 날개, 껍질 같은 위만 먹었다. 그러다 보니 치킨을 시켜도 닭볶음탕을 해도 퍽퍽 살들은 남겨졌다.


가끔 삼계탕을 하거나 닭볶음탕을 할 때 껍질을 다 제거하고 하는 집이 있었나. 나는 그걸 보고 저걸 무슨 맛으로 먹지하고 궁금해할 만큼 껍질파, 닭다리파, 날개파였다.


그랬던 내가 그를 만나고부터 좋아하는 닭고기 부위를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만난 건 대학생 때였다.

23살, 24살.


신랑은 타지에서 자취를 하며 대학을 다녔고, 나는 집에서 통학하며 용돈을 받아쓰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 직접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기에 데이트도 그에 걸맞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식비를 줄이기 위해 대부분 신랑 자취방에서 밥을 해 먹었다. 요리는 신랑이 했다.


그가 두부를 사러 갔다 현관문에 들어섰을 때 나는 신랑에게 기꺼이 달려갔다. 그는 그런 나를 안아 들고 한 바퀴 돌았다. 그가 해준 밥을 먹고 통실통실 했지만 그는 내가 제일 가볍다고 했다.


 집에서 반찬을 가져가기도 했다. 그는 요리를 하는 게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내가 잘 먹는 걸 보면 한 없이 뿌듯해했다. 우리는 소꿉놀이를 하듯 된장을 끓여 먹고 때때로 돈이 좀 모아지면 삼겹살을 조금 사서 구워 먹기도 했다.


그의 식비를 덜어주고자 김밥 두 줄을 사갈 때가 많았다. 김밥 한 줄이 남았을 때는 남은 김밥을 서로의 입에 넣어주기 바빴다.


우리 연애에 배가 허기지는 날이 있었더라도 마음이 허기진 날은 없었다. 마음만큼은 배가 불렀다.


부모님은 내게 늘 말씀하셨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라고. 그래서 절대 돈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도 하셨었다. 사람을 볼 때 성품을 가장 먼저 봐야 한다고 했다.


그 영향 때문이었는지 나는 신랑을 만나기 전부터 내가 만나는 사람이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생수 한 병을 가지고 하루를 버텨야 해도 함께 있을 때 편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공간 또한 방 한 칸이 다라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을 게 콩 한쪽뿐이더라도 서로에게 나눠줄 수 있는 그 마음이라면 충분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을 만났다. 버는 게 없어서 가진 게 없었어도 서로가 지금의 상대를 사랑했고, 미래의 상대를 믿었다. 우리 앞에 먹을 게 생수 한 병 놓여있더라도 깔깔 웃으며 얘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우리는 생수 한 병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연애를 할 수 있었고 함께 있는 게 정말 좋았다. 그와 내가 만나려면 50분 동안 버스를 타야 했는데 정말 50분이 5분 같았다.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를 발견했을 때 나는 가슴이 벅차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어제 봤더라도 일 년 만에 만난 것처럼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랬던 우리도 가끔은 외식이란 걸 했다. 대학가라서 다행히 찜닭이 반마리도 있었고, 행사가로 싸게 먹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찜닭을 먹 날 나는 내가 먹는 건 뒷전이고 그가 먹는 걸 유심히 지켜봤. 자주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먹는 걸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러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리고서 바로 파악했다.


그가 나와 같은 부위를 좋아한다는 것을.


우리는 20대였고 한창 식욕이 왕성했다.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내가 덜 먹어도 그의 입에 하나라도 더 들어가는 게 좋았다.


나는 그렇게 그가 내 닭 부위 취향을 알아차릴 기회도 주지 않은 채 평생 품어오던 취향을 바꿔버렸다.


닭다리살, 날개 같은 부위들을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의 앞쪽으로 슬쩍 밀어놓고 퍽퍽 살만 찾아 먹은 것이다.


처음에는 맛이 정말 너무 충격적이었다. 입이 다 마른 상태에서 잔뜩 욱여넣은 생 김을 우걱우걱 씹는 것처럼 퍽퍽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몇 번을 먹고 보니 겉에 발린 양념이 맛있어서 먹을만했다.


우리의 연애는 6년간 이어졌고 그동몇십 번, 어쩌면 백 번넘게 먹고 보니 퍽퍽 살이 더 이상 퍽퍽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담백했다. 닭고기를 먹으며 처음 느껴보는 맛이었다.


그로 인해 새로운 맛에 눈뜰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나는 비로소 그에게 사실 퍽퍽 살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신랑은 정말 말 그대로 너무 놀라 펄쩍 뛰며 굉장히 미안해했고 안타까워했다.


이제 닭요리를 먹게 될 일만 생기면 닭다리부터 야들야들한 부위들을 내 숟가락 위에 올려줬다.


그런데 사실 제일 큰 반전은 여기서부터 이다.

나는 그것들을 먹는데 예전처럼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감은 조금 더 퍽퍽했으면 좋겠고, 너무 기름져 소화가 덜 된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이것조차도 닭고기를 먹으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이제 나는 퍽퍽 살이 없으면 안 될 정도로 퍽퍽 살을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가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아 함께 좋아하는 음식을 먹다 배가 부른 것처럼 슬그머니 수저를 내려놓을 때가 많다.


그가 그런 날 알아주기를 바라냐고?


아니. 평생 몰랐으면 좋겠다.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차 트렁크에서 우산을 꺼내 펴 주는 사람. 고장 난 증기 기관차처럼 쉬지 않고 가족들 짐을 둘러메고 여기서 저기로 다시 저기서 여기로 가쁜 숨을 몰아 쉬 묵묵히 혼자서 짐을 옮기는 사람. 육아에 지친 내가 쓰러지 듯 잠을 잘 때 깨우는 대신 자고 있는 내 이마를 쓰다듬어 주는 사람.


날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주는 그에게 내가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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