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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Sep 12. 2021

아빠의 체감 온도는 체온일지도.

나의 육아있어 아빠와 엄마의 온도 차는 하늘과 땅이라 할 만큼 극심하다. 주말부부를 하고 있는 지금은 더 티가 난다.


주양육자는 나고 내가 낳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육아를 책임지는 편임에도 엄마가 집에 없는 날은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시간들과 평온한 시간들 사이를 쉴새없이 아슬아슬하게 넘나 든다.


뜸 들이기를 시작한 밥솥처럼 끊임없이 정신이 하얗게 새어 나간다.


아빠 방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를 않기 때문이다. 밖에서 어떤 소리가 나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럴 때면 아빠는 같은 집에 있어도 가장 먼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것도 다른 장소 정도가 아닌 다른 별에 있는 것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아빠에게 너무하다 말하지 못 이유가 있다.


어렸을 적부터 아빠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꽃이 었다면 활짝 필 생각조차 못한 건 다 나 때문 일 거라고.




엄마는 내가 자라는 내내 너무 바빴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고민이 뭔지 들어줄 시간이 없었다. 정확히는 얼굴을 보기도 어려웠다.


엄마와 함께 하는 외출이라고는 명절 전날 집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둔 메이커 가게에 가서 내 옷을 살 때였다. 갈 때마다 3벌에서 5벌 정도 샀었나? 그것도 입어보지도 않고 대충 예뻐 보이는 걸 엄마가 고르는 식이었다. 나는 쇼핑은 그렇게 하는 건 줄 알았다.


아빠는 진즉에 그런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겠다 마음먹은 걸까.


6시쯤 퇴근하면 어디도 들르지 않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는 재잘재잘 내가 하는 얘기를 들어주었다.


처음로 만들어 본 라면스프 맛밖에 나지 않는 볶이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어 줬다.


엄마와 나는 거의 만나지를 못 했지만 만나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거렸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할퀴고 뜯고 상처 받는 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중재를 하느라 제일 바빴다. 내게 와서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해주고 같이 흉을 보는 척도 해줬다.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혼을 내거나 강제로 이해하라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그런 아빠였기에 엄마에게 가서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런 아빠와 자란 나는 세상 모 남자가 아빠처럼 공감능력이 뛰어난 줄 알았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외식도 늘 아빠와 함께였다. 막창집이나 고깃집에 데려가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이가 들어서 알았다. 아빠도 친구와 놀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취미 생활할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아빠는 굉장히 검소했다.

고속도로를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도 아빠 스스로에게 허락한 건 휴게소 자판기 커피뿐이었다.


러닝셔츠 빨아도 빨아도 기름때가 까맣게 껴 있는데도 그냥 입었다. 낡고 떨어져야만 바꾸었다. 팬티도 올이 풀려 헤져야 새로 샀다.


하지만 나머지 가족에게는 안 그랬다. 먹고 싶은 걸 먹을 때도 갖고 싶은 걸 살 때도 하고 싶은 걸 할 때도 돈을 아끼라 충고는커녕 부지런히 벌어와 건네주기 바빴다.




아빠는 여름 내내 입맛이 없다고 했다. 하루 종일 야외에서 뙤약볕을 그대로 맞아가며 크레인을 수리하느라 몇 바가지 흘린 땀이 입맛을 떨궜을 것이다.


샤워도 공장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샤워를 하기 전에도 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었으니까.


아빠 매일 속옷과 늘어진 러닝셔츠를 퇴근길에 일회용 봉지에 담아 왔다.


빨래통에 붓는 걸 지켜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서운함이라는 되지도 않은 단어를 꾸겨 넣었을 것이다.


저녁밥을 먹고 방으로 가 축 늘어진 티셔츠처럼 누워있던 아빠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난 잊 수 없다.


"아이고. 사장님. 그거 그냥 놔두세요. 그거 사장님이 못 고칩니다. 이 땡볕에 크레인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해야 하는데 사장님은 절대 그렇게 못 합니다. 내일 가볼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리세요."


나는 크레인에 대해서도 크레인을 수리하는 것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빠가 한 여름의 땡볕에 세워놓은 차 내부보다도 더 뜨거울 크레인 바닥과 땅 사이 그 좁은 공간에서 일을 할 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가 목을 조른 것도 아닌데 숨이 막혔다. 목구멍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장님처럼 나는 단 하루조차도 아빠가 되어 살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장님은 남이지만 나는 아빠의 혈육이고, 아빠의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아빠의 보물이면서도 아빠의 짐을 하루도 덜어질 수 없다니 너무나 나약하고 약해빠진 딸이 아닐 수 없.


우리 아빠는 그 고생을 하면서 아빠의 딸인 나는 기름을 묻히기는커녕 기름 냄새 한 번 안 맡아보게 귀하게 키웠다.


오랫동안 한 사업이라 정착도 했고 적자도 아니었지만 한 번은 아빠가 사위에게도 일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너무 고생스러워서 자식도, 자식과 같은 사위도 그 일을 하길 원치 않으신다고. 그 말을 듣고도 막연하게 그렇구나 생각했지 아빠의 고충을 떠올리지는 못한 나는 못난 딸이었다.


공휴일의 빨간 날은 아빠와는 상관없는 날이었고, 주 5일제도 아빠는 비껴간다. 아빠는 이렇게 일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아빠가 일복 대신 자식복이 많았으면 그래도 이렇게 지금도 뼈 빠지게 고생할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자식이 자리를 잡고 나서 돌아보면 부모님은 이미 그 자리에 계시지 않다고 하던데 아직은 우리 아빠 그래도 이만큼은 정정한데 하나라도 더 해 드려야 하는데 마음이 급하다.


안마를 해드릴까. 더 환 하게 웃어드릴까. 팬티를 사드릴까. 러닝셔츠를 사드릴까. 매일 꼭 안아드릴까.


사 드리는 건 너무 편하다.


하지만 아빠가 마음으로 원하는 걸 찾아서 해드리는 건 너무나 어렵다. 아빠의 입장에서,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 본적이 너무나 없기 때문이다.


내리사랑이라는 비겁한 변명으로 일관하며 내 새끼들 먹이고 돌보느라 아빠의 고생에 무심했다.


아빠가 날 피워낸 뿌리고 줄기라면 나는 곱게 핀 꽃이다. 꽃 잎 하나하나 다 떨어지는 고통을 느끼기 전에 아빠가 곁에 계시는 지금 소중함을 되새겨야 한다.


아빠의 체감 온도를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은 아빠가 집에 없을 때다. 아빠가 집에 없는 날은 일 년에 많아야 하루 이틀도 되지 않는다.


그날이면 신랑과 아이들이 다 집에 있는데도 온 집 안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고 집이 너무 넓게 느껴다. 아빠가 없는 밤을 이 집에서 나는 게 무섭기까지 했다.


아빠는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 내 마음속까지 환하게 비춰주는 든든한 등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관심이 없다고 느낄 만큼 표현에 서툴었던 엄마는, 나와 싸우는 게 싫어서 날 보면 피해 다녔다는 엄마는,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며 너무나 많이 변했다. 사랑한다는 표현뿐만 아니라 미안하다는 말을 할 상황이 오면 그 말을 할 정도까지 말이다. 자라면서 두 가지다 들어보지 못한 말들이었다. 엄마도 표현이 서툴렀을 뿐, 단지 너무 바빴을 뿐, 나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함없었다는 걸 아이를 낳으며 알게 됐다.  사실 그동안 나도 많이 변했을 거다. 일방통행이란 건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도 엄마와 내가 지금 이렇게 서로에게 살갑고 애틋할 수 있는 건 그때마다 중재를 해주었던 아빠 덕분인 걸 알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바빠서 집에 잘 없지만 그래도 집에 있을 때면 육아를 도와줘 자주 뜨겁게 달아오르는 엄마의 온도와 달리 아빠는 곁에 묵묵히 있어서 있어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도 모르는 체온과 같은 온도이다.


빠에 관한 소원이 하나 있다면 아빠에게 24시간 상시 대외용 딸이 되고 싶단 것이다.  남들 앞에서만 순정적이고 온순하고 착한 딸이 아니라 가장 잘 보여야 할 사람, 바로 아빠에게 잘 보이려고 다정하고 온순한 딸.


일주일에 5일 신랑이 없는데 잘됐다. 이 참에 참한 딸로 거듭나야겠다. 아빠 맞춤형 딸이 되 고군분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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