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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Sep 24. 2021

백신 하나 맞았다고 나한테 다 시키네.

널 키우며 누리는 행복.

주말부부인 나는 올망졸망 한 두 아이를 평일에는 혼자 케어해야 하기 때문에 아플 때 아프더라도 신랑이 있을 때 아파야 맘이 놓다.


그래서 9월 17일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 모더나 1차 백신을 접종했다. 신랑은 추석 연휴 내내 설거지와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아이를 안는 것도 신랑이 엄청 많이 도와줬다.


그렇다고 엄마만 찾는 엄마 껌딱지를 안고, 업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게 무리였던 걸까. 백신을 맞은 날 밤부터 팔 통증에, 근육통, 몸살기 타이레놀을 먹기 시작해서 며칠 째 백신 부작용 앓았다. 오늘도 겨드랑이 통증과 몸살기때문에 타이레놀을 먹었다.


면서 나는 아이에게도 이것저것을 부탁했던 것 같다.


아이가 부탁을 거절했다면 스스로 해결했을 텐데 아이가 잘 들어주니 어쩌면 더 쉽게, 자주 부탁을 했었던 것 같다.


적기 민망하지만 둘째 수유를 하면서 다른 곳에 있는 휴대폰을 가져다 달라고 한 적도 있고, 리모컨을 부탁한 적도 있다.


몇 번을 그러자 아이는 내게 이 말을 했다.


"어휴. 백신 하나 맞았다고 나한테 다 시키네."하고 말이다.


어휴는 긴 잔소리가 시작되기 전 잔소리의 서막을 알리는 엄마들의 말투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너무 웃겨서 숨도 못 쉬고 웃었다. 웃다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내가 얼마나 안 시켜도 되는 걸 시켰으면 아이가 저런 말을 할까라는 반성은 웃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 중간쯤에 했던 것 같다.


리고는 엄살을 살포시 내려놓고 다시 자생력을 길렀다.


누군가가 내게 불만이 있다고 얘기하는 데도 그게 이렇게 귀여워 보이고 좋을 수가 다니. 아이가 없으면 집에 웃을 일이 훨씬 줄 이다.




요즘 7살 첫째는 주말부부인 우리에게 정말 지극정성이다.


아빠가 없는 평일에는 "우리 아구. 동생때문에 피곤하지. 복덩이 유치원 간 동안 꼭 자고 있어야 해"하며 살갑게 날 챙긴다. 


신랑이 오 금요일 밤이면 "주말부부 한다고 힘들었지요?" 하며 평소에 쓰지 않던 존댓말을 섞어가며 아빠를 보살핀다.


복덩이 눈에 우리가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넌 참 착한 아이구나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주말 나들이를 가는 길 차에서 먹을 햄버거를 사려고 신랑이 가고 차에는 복덩이와 나, 그리고 둘째만 있었다.


복덩이가 "엄마, 아빠하고 주말부부지"하며 말을 꺼냈다. 나는 그렇다고 "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아이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 먹고살려면 그래야지. 어떡하겠어."


정말 두 눈이 만화처럼 '띠융'하고 튀어나올 뻔했다. 평소에 저런 말을 쓰는 사람이 복덩이 주변에 없는데 아이는 어디서 저 말을 배워 온 걸까. 그리고 아이가 주말부부를 하는 이유까지, 그것도 저렇게 현실적인 이유까지 생각해봤다니. 그리고 알고 있다니. 정말 복덩이는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할 때가 많구나.


아이는 너무나 순수해서 복덩이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근데 그래서 복덩이가 좋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생각을 하고, 생각지도 못한 말과 행동을 해서. 그게 복덩이라서 너무 좋다.


그날 달리는 차 안에서 둘째는 울다가 소리 지르다가를 반복했다. 평소에도 차를 타면 자주 울고, 한 번 울면 목청껏 울고 잘 그치지 않는 복숭이라서 우리는 조금 지쳐 있었다. 그런 복숭이를 보며 내가 말을 꺼냈다.


"복숭이가 젤 편하네. 다 먹었다고 더 달라고 소리 지르고, 불편하면 불편하다 소리 지르고."


그러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신랑과 복덩이가 "맞아." 하며 울분을 뱉어내 듯 대답했다.


그런데 복덩이가

"엄마. 그런데 나는 그래도 복숭이가 좋은 사람으로 잘 자라면 좋겠어."하고 말했다. 


아이의 따뜻한 말은 둘째의 울음으로 경직된 차 안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다시 힘을 냈고, 나는 더욱 성심성의껏 복숭이를 달랠 수 있었다.


한 번은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신랑과 내가 아이의 숙제 때문에 잠깐 언성을 높인 적이 있었다. 나는 방학이 끝나가는데 숙제가 별로 되어 있지 않아서 신랑이 화가 난 거라고 생각했다.


신랑이 없는 평일에 내가 아이들을 돌보는데 아이에게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화내는 게 꼭 내게 내는 화 같아서 나는 속이 상했다. 그래서 나는 신랑이 하는 얘기에 동의하지 않은 채 아이의 편을 들었다. 아직 유치원생인데 숙제가 그렇게 중요하냐며. 사실 숙제가 많아서 그렇지 열심히 한 것도 많았다.


그런데 집에 와서 그게 오해라는 걸 알게 됐다. 신랑은 복덩이가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태도에 화가 난 거였다.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날 늘 안쓰러워하고 그런 날 보며 미안해했는데 순간적으로 내가 판단을 잘 못 한 거였다. 서로 오해가 풀리고 잘 마무리가 됐다.


그런데 그 일이 복덩이의 기억 속에는 계속 있었었나 보다. 복덩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넬 때 복덩이가 내게 말을 꺼냈다.


"엄마 요즘에 많이 착해졌네. 근데 아빠가 복덩이 혼 때 내 편들지 마. 복덩이는 정말 괜찮아. 그럼 엄마는 정말 최고야. 그냥 복덩이가 착하게 잘하면 돼."


나는 정말 아이 앞에서 한 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날, 그 순간 울컥하지 않고 언성을 높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일이 었는데 나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해 그랬었는데 아이는 내가 기분 좋을 때 한참이 지난 그제야 그 이야기를 꺼냈으니. 그것도 날 칭찬해서 기분을 좋게 해 주고 이야기를 꺼내는 순서까지. 나는 이 아이에게 배울 점이 정말 많구나 또 한 번 깨달았다. 더군다나 복덩이 편을 들어 싸울 거 같으니 그러지 말라고 하는 복덩이가 너무 예뻐 정말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컸지?




유치원에서 돌아온 복덩이는 집에 온 손님께 단풍 같은 손으로 만원을 받아 쥐고 손님과 함께 슈퍼로 향했다.


아이는 돈도 잘 모르면서 계산해가며 신중히 과자를 골랐다고 했다. 그러고서는 집에 가는 길에 들를 곳이 있다며 손님의 손을 끌고 커피집으로 갔다. 우리 엄마 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커피집 사장님이 기특하다며 아이에게 몇 살인지 이름은 뭔지 등을 물었던 거 같다. 그때 우리 아이가 한 대답을 전해 듣고 나는 또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우리 엄마 강하영인데 우리 엄마 알아요? 저는 강하영 씨 아들이에요."


얼음이 담겨 차가운 아메리카노는 컵 밖으로 물기를 매 단채 내게 전해졌다.


커피를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복덩이가 날 위해 태어나 처음으로 사 온 커피다.


'이거 정말 아까워서 어떻게 먹. '


 내 눈에도 얼음이 담긴 컵처럼 물기가 맺혔다.


살면서 수 없이 많은 아메리카노를 먹어 봤지만 그때처럼 고소하고 마음 달아지는 아메리카노는 처음이었다.




추석에는 차를 타는 내내 보름달이 우리를 따라왔다. 우리는 달을 볼 때마다 가득 찬 그 모습에 감탄을 쏟아냈다. 복덩이가 추석에는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거라고 했다. 나는 7살 복덩이가 빌 소원이 궁금했다. "우와. 우리 복덩이 그런 것도 알아?" 하며 우선 아이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복덩아 우리 복덩이는 무슨 소원 빌 거야?" 하며 소원을 물어보았다.


아이는 "우리 가족 잘 살게 해주세요"라고 했다. 

여기서 잘 이란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 것이다.


그건 사실 어른인 우리가 빌어야 하는 소원인데 7살 아이가 저런 소원을 빌다니. 나는 감동을 받았고 아이가 기특했다.


다음 차례로 아이가 신랑에게 어떤 소원을 빌 거냐고 물어보면서 그 감동은 순식간에 해소되었다.


신랑은 우리 가족이 건강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같은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지겠어."하고 복덩이가 말했다. 아이가 듣기에 아빠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나 보다.


우리는 정말 깔깔깔 소리를 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그날 신랑에게 수수께끼를 하나 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든 있는 게 뭘까?"하고.


신랑은 답을 맞혀 보려고 이것저것 얘기했지만 야속한 "땡"이라는 답만 되돌아 왔다. 


아이는 드디어 답을 알려주었다.


"아빠. 그건 바로 사랑이야."


신랑은 복덩이에게 보이지도 않는데 그걸 어떻게 느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복덩이가 "나는 엄마가 사랑을 많이 줘서 느낄 수 있어."하고 대답했다. 


아이의 말이 오랫동안 마음을 맴돌아 내 마음은 사랑과 환희로 가득 찼다.


그때 나는 내게 낳은 게 천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엄마는 너무나 인간적이라 실수투성이에다 매일 밤 아이에게 잘 못한 걸 곱씹으며 반성을 하는데. 그리고서는 줄어는 나가지만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다시 반복할 때도 있는데.


그런 내가 이런 아이를 낳은 게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매일 파랑새들과 함께 살고 있다.


아이는 감사한 존재이고 내게 행복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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