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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Oct 13. 2021

그래. 독서하다 목 쉬는 그 시기가 돌아왔다.

널 위해 고운 목소리를 잃는다 해도.

나는 어려서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엄마가 있다.


엄마는 어릴 적일수록 다른 사람이 입었던 옷을 물려 입거나 책 같은 것을 물려받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어려서부터 초등학생 저학년 때까지 입는 대부분의 옷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물려받은 것 중에 엄마가 가장 아끼던 것은 단연 책이었다.


엄마가 받은 그 책의 수가 어마어마했다. 한 번 물려받으면 전집이 와서 책장 한쪽 면을 가득가득 채우는 것이다.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물려받는 것에 있어서 책을 마다한 적이 없었다.


나는 아직 학교도 안 갔는데 고등학생이 읽을 책까지도 받았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어려서부터 벽면 가득 책이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풀어놓지 못한 책들이 창고에 박스째 쌓여 있었다. 


마는 책을 물려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 날 앉혀놓고 책을 읽어주다. 그 덕분 나는 돌이 되기 전 이미 동물 소리를 다 흉내 냈다. 


돌이 지나고 나서도 엄마의 책 읽어주기는 계속되었다. 내가 세 살에서 네 살 무렵부터 엄마는 일을 하러 가게 되었지만 일을 끝내고 집에 와서도 지친 몸을 이끌고 책을 읽어줬다고 한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어릴 때라 엄마가 날 앉혀두고 책을 읽어줬던 기억이 내겐 없다.


그런데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됐을까 생각해보니 엄마의 노력이 지금까지도 빛을 발하고 있다고 믿는다.


자라는 동안 엄마가 일이 바빠 곁에 오래도록 없을 때도 책은 늘 내 방에 있었다.


집에는 읽지 않은 책들까지 박스 채로 쌓여 있는 데 그건 너무 멋진 일이었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박스만 열면 읽을만한 책들이 보물창고처럼 쏟아져 나왔으니까. 


읽을 책은 많은데 읽 사람이 나뿐이었다. 한마디로 다 내 거였다. 책이 얼마나 많았으면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서 책을 빌려가곤 했다. 책과 친해지지 않으려고 해도 친해지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나는 그렇게 책과 늘 함께였다.


오죽하면 고등학생이 돼서 백과사전을 ㄱ부터 읽었을까. 읽다 읽다 사전도 읽었다. 읽을 수 있는 건 손에 잡히는 대로 그냥 다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시험기간이라도 교과서 속에 숨겨 읽었다. 그러다 선생님에게 뺏기는 날에는 "내가 먼저 다 읽고 돌려주마"라는 말씀을 들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처음으로 큰 도서관에 가 봤다. 정말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한참을 두리번거렸던 것 같다. 나는 그때 시, 에세이, 소설, 여행서, 실용서까지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그즈음 나는 고전소설 전집을 물려받게 됐는데 왜 진작에 읽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너무나 재미있었다. 글쓰기에 대해 배우고 있 시기라서 작가들의 문체나 필력에 감탄을 자아내며 잠도 자지 않고 고전소설을 읽어 내렸다. 신세계였다.


내가 늘 책과 함께였어서, 책을 좋아해서 나는 책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안다. 책이 얼마나 소중한지 책이 얼마만큼은 마음의 양식을 주는지.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도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이 큰 도움을 줬다.  


대학을 졸업하 사회생활을 할 때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부터 사소한 결정들까지 내가 그동안 읽어온 책들이 영향을 미쳤다.


또 꿈을 지켜가는 것에 대해서도 책은 참 많은 도움을 줬다. 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는 책을 읽을 때마다 차고 넘쳤으니까.




그랬던 내가 이제 엄마가 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책의 소중함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었다.


태교를 할 때부터 라디오를 틀어놓는 것처럼 책을 수시로 읽어주었다.


아이가 태어나 말을 바로 할 수 없지만 뱃속에 있을 때부터 들었던 단어를 기억하고 말을 하게 되면 쓴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어 더 열심히 읽었다.


태어나서는 또 어땠는지.


누워서 아직 배냇짓도 못하는 아이를 두고 책을 읽고 기어 다니며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아이를 보고도 책을 읽었다. 한 방에만 있으면 아이가 무얼 하고 있어도 내 목소리가 들릴 테니 집중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둘째 시기. 딱 이 시기에 첫째도 둘째도 독서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책이 있으면 30분이고 1시간이고 다른 놀이가 필요가 없다.


책을 자꾸자꾸 읽어달라고 책을 집어 내게 건넨다. 솔직히 이때 책이 많을 필요는 없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아무리 많은 책이 있어도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책들을 위주로 하루에 100번도 200번도 반복해서 읽게 된다. 


그런데 부작용은 내가 목소리를 잃을 것 같다는 이다.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다가오면 이제 무서울 정도이다.


아직 들고 있는 책을 다 읽지도 않았는데 다음 책을 집어 내게 건넬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나는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자그마한 아기가 가만히 마주 보고 앉아 책 읽는 걸 듣고 있는 게 너무 사랑스럽다. 책을 읽고 있으면 다 읽기도 전에 다른 책을 내밀며 소리를 내는데 저 작은 아이가 뭘 알고 저런 행동을 하는지 너무 기특하다.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자꾸 다른 책을 내밀 때가 있지만 그냥 책 읽는 걸 좋아한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그 까맣고 동그란 눈으로 책을 한 번 봤다 나를 한 번 봤다 하는데 그 순간 시간이 멈춰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의 눈을 이리 오래 바라볼 수 있는 그 시간이 감사하다.


내게 안겨 있는 것보다 다른 것들에 흥미를 가지고 이것저것 열어보고 만지고 올라타는 시기라 날 그렇게 오래 봐주는 것만 해도 설레고 가슴 떨리는 것이다.


흥미를 잃지 않고 책 읽어주는 걸 듣고 있는 아기를 보면 차마 목이 아파 더는 읽어줄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 빛나는 눈동자를 볼 때면 심장이 멎을 만큼 아름다워서. 순수한 눈빛에 힘든 것도 모르고 같은 책을 기본 30번씩 읽는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시기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첫째 때만큼 길게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바로 내일 아이가 책에 흥미를 잃는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어린 아기는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르다.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다.


오늘은 긴 줄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다가도 내일이면 아예 그것을 쳐다도 보지 않는 순간이 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생각한다. 아이가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있으면 최선을 다해 그것을 가지고 놀아주자고 말이다.


첫째가 7살이 되며 가장 가슴 아팠던 건 아이가 그때 흥미 있어하는 걸 내가 해주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숨바꼭질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잡기 놀이도, 병원 놀이도 피곤하거나 몸이 힘든 날이면 다음을 기약하며 해주지 않은 날들이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지금은 해주고 싶어도 아이가 이미 그 놀이들에 졸업을 해서 해 줄 수가 없어 그 시간들이 애틋하고 아깝기만 하다.


그럼 우리 첫째 복덩이는 지금도 책을 좋아할까? 일부로 찾아와 내 앞에서 읽어달라고는 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닌텐도에 푹 빠져서 내가 찾아가 읽어주려 해도 도망까지 간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몇 권의 책을 아이가 다른 걸 하고 있는 와중에 읽어준다. 그리고 다행히도 한 번 읽겠다 마음먹으면 5권 정도 읽는 동안 꼼짝도 안 하고 내가 읽어주는 걸 들어준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에도 자연스럽게 동화나 위인전을 틀어달라고 한다.


나는 생각한다. 책을 읽었던 아이는, 거기다 책을 읽는 것에 관해서 좋은 추억이 있는 아이는 책으로 돌아가는 길이 훨씬 더 수월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어휘력이나 이해력이 높아져 살아가는데 알게 모르게 조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데 책만 한 게 없다.


책은 낙엽과 같다. 시들고 말라버려 땅으로 떨어진 잎사귀가 시간이 지나면서 거름이 된다.


책을 읽은 시간과 그 정서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있다 거름이 되어 오랫동안 아이의 마음을 등대처럼 비출 것이다.


오늘도 그렇게 믿고 나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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