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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Oct 15. 2021

우리 애들이 울음이 짧아요.

악. 그 애들 중 하나가 바로 너라고!

7살 첫째와 15개월에 접어드는 둘째의 예방접종이 같은 시기에 잡혔다. 신랑 월차 날 다 함께 병원에 갔다.


첫째 차례가 되자 들어가지 않겠다고 병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작년까지는 이러지 않았는데 이제 병원이 무서운가 보다. 신랑에게 들춰 업혀 병실로 들어가서도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주사를 맞고는 바로 조용해졌다.


 '별 거 아니네.' 하며 머리를 긁적이고 진료실에서 나오는 첫째를 보고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둘째는 그날 두 대의 주사를 맞아야 했다. 첫째는 자신도 함께 꼭 들어가야 한다며 진료실에 따라 들어왔다. 동생은 잘 맞는지 궁금했나 보다.


둘째는 아직 너무 어려서 주사의 두려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의사 선생님이 지금은 아직 너무 어려서 그렇지 조금만 더 크면 형처럼 주사를 무서워할 거라고 했다. 주사가 들어가기 전까지는 온순하게 있다 주삿바늘이 꽂히자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주삿바늘이 빠지자 울음을 뚝 그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의사 선생님이 순하다고 칭찬을 하니 첫째가 옆에 있다가

"우리 애들이 울음이 짧아요."라고 했다.


'악. 그 애들 중 하나가 바로 너라고!'


진료실 웃음꽃이 폈다. 아이와 함께 있는 공간은 그곳이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병원일지라도 꽃밭처럼 향기롭다. 아이는 스스로 향기를 내뿜는 꽃이기 때문이다.




복덩이는 아직 밖에서 용돈을 받으면 나 아니면 신랑에게 준다. 그날도 용돈을 받은 날이었다. 다음날 여행이 계획되어 있는 우리에게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외할머니가 복덩이에게 10만 원을 준 것이다.


나는 저녁에 신랑에게 "어휴. 엄마는 뭘 그런 것까지. 죄송하고 감사하다."며 말을 했는데 복덩이가 그걸 들었나 보다.


"엄마. 그거 나한테 준 돈이니까 내가 써야 해. 쓰면 안 돼."그런다.


그래서 내가 "당연하지. 통장에 다 넣어 놓을 거야."하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복덩이가

"아기 통장 같은 거 사실은 없잖아. 말만 그렇게 하고 엄마, 아빠가 몰래 쓰는 거잖아."하고 말하는 것이다.


저런 생각을 하는지 꿈에도 몰랐던 나는 너무 놀라서 손사래 치며 "아니야. 진짜 있어."하고 말해 주었다.(사실은 없다)


그러자 복덩이가 "그래?" 하면서 엄청 좋아하는 게 아닌가.


"아빠 그럼 아기 통장에 모은 돈으로 스포츠카 살 수 있어?"하고 물어본다. 내 마음 같아서는 할 수 있다고 얘기해줬으면 좋겠는데 현실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랑은 솔직하게 말한다. "아니. 아직 그 정도는 안돼."하고 말이다.


"아. 그렇지? 나는 되면 엄마나 아빠 사주려고 했지."그런다. 본인도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말투와 포기가 빠른 복덩이에게 웃음이 나온다.


우리는 서둘러 복덩이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에구. 우리 아가가 그런 생각을 했어? 너무 고마워." 하며 말이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복덩이 말이 너무 재밌다. "내가 스포츠카를 사주면 아빠 친구들이 다 스포츠카를 보려고 달려오겠지? 그러면서 로또 됐어? 그러겠다." 한다. 우리는 아이가 생각하는 게 너무 웃겨서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살면서 한 번도 사보지 못한 로또의 존재를 아이는 어떻게 아는 것일까.


아이는 거기서 말을 멈추질 않았다. "아빠. 우리 엄마 생일에 아빠랑 돈 보태서 다이아몬드 반지 사주자. 꼭 무슨 날이어야 그런 걸 사주겠어. 그렇지?"하고. 그러고는 "엄마, 아빠 그런데 이런 아기 못 봤지? 나도 못 봤어. 다 내 거야. 내 것 살 거야 이러지 이런 아기 못 봤지?" 한다. 고마움과 기특함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복덩이 스스로 자신을 포장하는 모양새에 오늘도 웃음이 나온다. 너와 있으면 자꾸 자꾸 웃을 일이 생긴다.




하루는 첫째를 씻긴다고 샤워기로 물의 온도를 조절하다 복덩이의 몸에 물에 튀었나 보다. 날보고 "엄마. 인생은 원래 이렇게 차가운 거야?" 한다.

"악. 그게 무슨 소리야." 그때부터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복덩이를 씻기는데 물이 생각보다 뜨거웠나 보다.

"엄마. 인생은 원래 이렇게 뜨거운 거야?"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내게 말한다. "악. 너 왜 이렇게 웃겨. 7살짜리가 무슨 그런 말을 해." 나는 이제 깔깔 넘어가는 단계다.


샤워타월로 비누칠을 할 때는 "엄마. 인생은 원래 이렇게 까칠한 거야?" 한다. 이제 끝인 줄 알았던 "인생은" 회심의 공격에 나는 이제 더는 샤워를 진행도 할 수 없을 만큼 풀어져서 웃었다.


겨드랑이에 비누칠을 하게 도와달랬더니 두 팔을 허리에 올리고 모델 자세를 취한다. 우리는 함께 웃다가 욕실에서 쓰러질 뻔했다. 너와 함께면 일상의 사소한 일들도 기쁨으로 가득 찬다.


요즘 15개월에 접어든 둘째는 아직 걷지 못한다. 그런 둘째를 보고 왜 빨리 걷지 않는지 걱정을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형만 한 아우 없다고 첫째 복덩이가 15개월에 걸었어요. 그래서 형보다 일찍 걸으면 안 돼서 천천히 걷는 중이에요."하고. 그러면 와하하 웃으며 분위기가 전환됐다.


첫째만큼 걱정을 하고 전전긍긍하면서 키우지 않아도 된다는 게 둘째를 키우는 맛인 거 같다. 그리고 걱정을 해서 건네는 말들도 좀 더 유연하게 넘길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긴다.


그랬던 둘째가 요즘 두발로 우뚝 서는 연습을 몇 발자국씩 띄는 연습을 매일 같이 하고 있다. 그럴 때면 첫째와 나는 "우와. 우와"하며 둘째를 지켜본다. 그리고 첫째가 그런 둘째를 보더니 내게 말했다.


"엄마. 복숭이 진짜 장하다. 우리 복숭이 꼭 최고급 이유식 사줘."하고 말이다.


이유식을 졸업한 지 이미 한참 지났지만 기특한 동생을 위해 제일 좋은 걸 해줬으면 하는 그 마음이 꽃같이 예쁘다. 자그마한 아이가 더 작은 아이를 위하는 그 마음에 온천에 몸을 담근 것처럼 노곤노곤 녹는다. 아이가 하나의 우주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몸은 작지만 마음만은 우주처럼 넓을 수 있는 게 아이들이다.




연수원에서 첫째는 자전거를 타고 나와 신랑은 둘째의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갔다.


가는 길에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아이에게 용돈 3만 원과 웨하스가 가득 담긴 봉지를 건네주셨다. 우리는 다함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한 달쯤 지났을 때 다시 같은 산책로로 산책을 하게 됐다. 그날따라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나는 빨리 가고 싶은데 아이가 여기서 기다리라며 했다. 그리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도토리를 주었다. 도토리가 신기해서 그러나 보다 하고 함께 땀을 흘리며 기다려줬다.


그런데 산책로에서 그 할머니 집에 가더니 할머니께 주머니 가득 주운 도토리를 드렸다. "할머니 저번에 너무 감사해서요. 이걸로 도토리 묵 만들어 세요"하며 말이다. 자그마한 아이가 얼마나 기특하던지. 그저 호기심에 줍는 거라 생각했던 게 미안해졌다. 나도 같이 주워줄걸.


아이는 별다른 자극 없이는 쉽게 자라지 못하는 내게 자랄 수 있도록 기름칠을 해주는 존재 같다.


내가 복덩이에게 제일 설레는 순간은 복이가 내가 내 온 음식을 보고 "엄마 이거 보는 거지? 보기만 하는 거지?"라고 말을 해줄 때다. 요리 실력이 출중하지 못한 나는 아이 앞에 반찬이 담긴 밥그릇을 가지고 갈 때면 위축이 될 때가 많다. 그런데도 아이는 내가 내 온 요리를 보며 저렇게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얼굴이 환하게 피며 "아니야. 우리 복덩아. 이거 먹는거야. 먹으라고 한 거야."하고 말해준다. 그러면 그때서야 복덩이는 "우와. 우와"하며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분홍색 옷을 입으면 공주 같다고 말해주는 복덩이는 듣는 사람을 배려해 예쁜 말을 자주 해준다. 고마울 때가 참 많다.




요 몇 달 첫째 복덩이의 진학 문제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아파트에 산다면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초등학교에 보내면 됐지만 우리는 주택에 살고 있다. 초등학교에 가려면 적어도 15분을 골목골목을 걸어가야 한다. 아이 혼자서는 너무 위험한 길이다. 나는 내년에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복직을 앞두고 있는데 매일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게 일에 지장을 줄 것 같았다.


그래서 통학버스가 제일 메리트가 큰 사립학교를 알아봤다. 곧 11월이라 원서접수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우연히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우리가 원서를 내기로 한 사립초등학교에 견학을 갔다. 그곳에 다녀온 아이는 얼굴이 새파래져서 거기는 절대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엄마. 거기 가면 한자를 배워야 한대.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한대"부터 시작해서 "배워야 하는 게 엄청 많대. 으으으. 엄마 나는 그곳에 가기 싫어."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사실 통학버스가 제일 큰 메리트였다는 건 내 거짓말이라는 걸. 이것저것 하나라도 더 배우게 하고 싶어서 그곳에 보내고 싶어 한 거라는 걸. 그리고 내가 가장 오래 고민하고 걱정한 건 아이의 성향과 그곳이 맞지 않다는 점이라는 거. 그걸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며 그동안 이게 아니다 싶으면서도 놓지 못했던 욕심의 끈을 툭 하고 놓아 버렸다.


우리 아이는 아침이면 왜 유치원에 가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친구들과 사이도 괜찮고 유치원이 재미있다고도 하는데도 유치원에 가서 무언가를 배우는 게 싫다고 했다. 공부가 싫다고 했다. 쓰는 게 느려서 나머지 공부를 하기도 하고 바이올린을 배우는 날에는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아이가 좋아하는 유일한 배움은 블록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다. 아이는 멘사창의만 하루 종일 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 유치원에서도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 되면 아이들에게 영어를 외우게 해 영상을 찍는 데 아이는 그때마다 하긴 했지만 그걸 달가워한 적이 없다.


배우는 것보다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게 우리 아이였다.


아이가 받아 온 사립초등학교 원서는 실물로 내 책상에 놓여있지만 나는 그 원서를 보고도 이제는 하나도 미련이 남지 않는다.


내 아이가 가장 행복한 길을 갔으면 하는 그 마음을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기억해내서 다행이란 생각뿐이다.


아이 커면서 내가 할 일은 그저 내가 가지고 있 욕심을 한 숟가락 덜어내게 아닐까?


등하교길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길에서 아이와 나누는 대화가, 하루를 나누는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조막만 한 손을 잡고 아이의 체온을 느끼며 함께 걸을 그 길이 기다려진다. 그 길에서는 또 얼마나 아이와의 소중한 추억이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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