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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Oct 20. 2021

솔직함 한 스푼, 찌질함 두 스푼.

나는 정말 글에 재능이 있을까.

공모전에 글을 내기 전까지 나의 글쓰기는 꽤 평화롭고,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공모전에 글을 내며 내 속에 있던 일그러진 욕심들이 포장지가 뜯겨 툭 던져진 기분이다.


차라리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니 속이 덜 답답하다. 아니, 오히려 후련하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들키는 게 이렇게 시원한 일인지 몰랐다. 이렇게 글로 쓰지 않으면 내 멘탈이 와장창 깨져 버릴 것 같아서 이 찌질함마저 글로 풀고자 한다.




대학생 때 이후로 다시 글을 쓰게 됐을 때 겁 없이 공모전에 글을 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바라는 것도 많았다. 붙게 되면 아이들의 이층 침대를 사주고 부모님께 두둑하게 용돈을 드리고 등 훨씬 더 스케일도 컸다.

그런데 차라리 돈으로 스케일이 큰 게 나았다. 바라는 게 상금이 아니라 내 글의 가치로 넘어가니 출구도 답도 없다.


그때는 인정도 빨랐다. 내가 낸 글을 결과 발표가 끝난 후 다시 읽었을 때 나는 뚝뚝 끊기는 연결고리에 너무나 당황스러워 원고를 채 다 읽지도 못했다. 왜 떨어졌는지 알겠다 싶었다.


그 후로 10개월이 지났다. 이번에 세 군데에 글을 응모했다.


입상자들 전화가 돌려질 거 같은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잠에서 깨기 전 꿈을 꿨다. 그런데 깨고 나서 꿈이 너무 생생한 게 아닌가!


꿈속에서 내 글이 뽑혔다는 전화를 받았다. 믿기지 않 다시 전화를 건 곳이 그곳이 맞나 되물었을 만큼 기뻐했다. 전화를 건 사람이 내 글이 좋다고도 했다. 일어나서 상대와 나눴던 말들이 다 기억나긴 또 처음이었다. 그래서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비록 꿈속에서 입상한 거였지만 기분이 좋았다. 꼭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 주 내내 혹시나 주최 측에서 걸려온 전화가 아닐까 싶어 모르는 전화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카드사 광고전화부터 부동산, 선거 전화까지 받다 받다 지쳐 공모전을 주최한 곳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정말, 왠지 올 것만 같았다. 이제 그 전화만 받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렇게 생에 처음 공모전을 주최한 곳의 전화번호까지 저장해 봤다.

              

사실 그 전주부터 며칠을 공모전 전화를 기다리다가 발표가 4일 남았을 때 목구멍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나마 남은 이틀은 주말이어서 주말에 전화가 올 가망은 없기 때문에 이틀이라고 봐야 했다. 그 사이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4일 정도 남았을 때는 더 이상 바닥이 어딘지 가늠을 할 수 없을 만큼 바닥과 나는 이미 한 몸이 돼있었다.


왜 나는 안되는지에 대한 울분이 가슴속에 응어리져서 눈사람처럼 몸을 불리며 돌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덜 아플텐데. 그러니까 아예 공모전 같은 건 쳐다도 안 보고 가만히 있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처음 공모전에 다시 응모했을 때만 해도 이런 상태는 아니었다. 부담 없이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제껏 열심히 썼으니 내보기는 하자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냈다.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모전에 글을 낼 때 떨어지더라도 경험도 되고, 또 더 열심히 쓰라는 가르침으로 알고 열심히 쓰면되지 여겼다.


그런데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욕심도 많고, 자존감도 낮았다.                


내가 쓴 글로 고기 한 근이라도 사고 싶다던 말도 가족들이 좋아하는 배달음식을 한 번 시켜줄 수 있을 만큼만 벌면 좋겠다던 생각도 다 진심이었던 것이다. 가작도 괜찮고, 어떤 상도 괜찮으니 내가 낸 글로 공모전에 입상이라는 걸 하고 싶었다.                


내년 복귀까지 남은 날짜가 줄어들수록 글로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심이 더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래야 원래 하던 일을 하면서 글을 쓴다고 시간과 정성을 할애해도 가족에게 면목이 설 것 같았다.


여하튼 나는 너무 우울했다. 공모전 세 군데를 응모하고 두 군데는 '똑' 떨어져버려서. 아직도 공모전의 결과를 마음으로 다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왜 나는 안 될까라는 생각이 마음처럼 쉽게 떨쳐지지가 않는다.                 


공모전에서 연달아 떨어지고 나니 내가 주변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붙은 모습인지 아니면 떨어진 모습인지 헷갈렸다. 나는 왜 공모전에 떨어져 놓고 또 공모전을 도전하는 것일까. 그냥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걸까 내 스스로 글에 대한 고민이 늘어갔다.    


지금은 그 이후로 글을 꾸준히 쓰고, 그 전보다 노력했는데 왜 붙지 못하냐는 비아냥도 따라왔다.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나한테는 정말 내가 쓴 글로 고기 한 근 살 돈을 버는 것도 사치인 걸까? 내 실력으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일까?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헤집고 갉아먹기도 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몇 번 떨어지고 나니 공모전에 관해 유일하게 내 진심을 내 비칠 수 있는 건 신랑뿐인데 이제 신랑 앞에서조차 공모전에 관해 언급하는 게 내키지 않는다. 공모전의 결과에 따라 기분이 가라앉는 걸 보여주는 것도 부끄럽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 사람이지 그를 나와 같이 나락으로 끌어내리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둘째를 낳고 두 아이를 기르면서 대학교 때 이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가 너무 어려 때때로 지금 떠오르는 영감을 글로 이어가지 못할 때 답답하고 서글펐던 적도 있다. 그런데 글은 나를 그 감정에 멈추게 두질 않았다.


"그럼 좀 어때. 글로 쓰는 걸 놓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 지금 영감이 샘솟고 있다는 게 중요해. 얼른 메모해. 지금이 다가 아닌데 다시 시간 나면 그때 쓰면 되지."하고 말을 건넸다.


글은 내게 새로운 창을 열어 주었다. 거기다 더 중요한 건 지금 아이들과 부대끼는 이 시간이 글의 원동력이며 글감이라는 것까지 알려주었다. 나는 그래서 어떤 순간에도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들이 늘어났다.  

   

글을 쓰며 처음으로 이런 생각도 했다. 꿈을 이루는 순간보다 이루는 과정이 더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이다. 내가 직접 겪으니 그건 정말 맞는 말 같았다.


언젠가는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거나 등단을 하겠지만 그때 받는 감동과 환희가 글을 쓰면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감동과 환희보다 절대 크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저 이 일을 업으로 할 수 있는데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것뿐이지 내게 중요하고 큰 기쁨을 주는 건 글쓰기 그 자체이다. 한자라도 내가 직접 썼다는 뿌듯함이고 말이다.     


처음 글을 다시 시작했을 때, 아니 글을 쓰겠다는 꿈을 품고 있을 때 했던 다짐을 떠올린다. 나는 내 글을 읽고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의 불씨가 살아나거나 꺼지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누군가가 됐든 단 한 명에게라도 온기를 줄 수 있다면 내가 글 쓰는 사명은 다 한 거라 여겼다. 그리고 나는 글쓰기 자체가 너무 좋으니까 죽는 그 순간까지도 펜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갈망했다.

   

그런데 글을 쓰며 알았다. 그 한 명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더는 바래서도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된다는 걸.


내가 좋아서 쓰는 글이면서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포기하고 그만두는 게 옳은 일인지를 생각했다.


십 년을 넘게 가슴속에 품고 살다가 돌고 돌아 다시 쓰는 글인데, 얼마나 애틋한 글쓰기인데. 자유도 희망도 꿈도 일탈도 성장도 치유도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글쓰기인데.


내가 글쓰기를 하며 받은 게 없다고 정말 말할 수 있을까? 내 글을 읽고 펑펑 울어줬던 독자들. 내 글을 읽어보라 귀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적어주셨던 작가님. 내 글에 공감하며 댓글을 남겨주시는 귀한 분들 다 내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미 내게는 선물처럼 주어졌고, 기적처럼 일어났다.


내 새해 목표는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는 거였고, 새해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낸 글이 꼭 통과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랬었다. 지금은 그게 이루어져서 이곳에서 이렇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 내가 그 어떤 걸 더 바랄 수 있을까.


나는 이제 생각을 고쳐먹었다. 글로 인해 원하던 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주저앉아 일어날 생각 하지 말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고쳐 앉으려고 말이다. 왜 내가 되지 않았는지 그동안의 글쓰기 습관과 시간을 되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반성하며 더 간절히 두 손 모아 빌어보기로 했다. 더욱더 낮아지고 더욱더 겸손해지자. 이런 시간이 없이 바로 등단하거나 입상했다면 얼마나 거들먹거렸을지 자아도취했을지 날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떠올려보자.     


그리고 어찌 됐든 아프지 말자. 글쓰기도 체력 싸움이고 꿈을 이루려는 그 과정은 더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 건데 지쳐서도 나가떨어져서도 안 된다. 악바리처럼 체력을 기르자. 더욱더 글쓰기와 읽기에 시간을 할애해 마음의 근육도 기르자.


그랬는데도 안 된다면? 글을 쓰고 싶었음에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들을 떠올리자. 일을 할 때는 일을 하고 나서 지친 체력으로 쓸 수 없었던 그 시간들을 떠올려보자. 지금은 글을 쓰고 싶어도 컴퓨터 전원을 끄고, 내게 안아달라 손을 뻗고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아기를 떠올려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쓰는 것을 멈출 생각이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면 지금 꽤 괜찮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자.


힘들 때면 돌아가는 게, 포기하는 게 더 익숙했던 내 삶에서 끝까지 손아귀에 쥐고 놓지 않을 만큼 글 쓰는 게 소중하다면 그걸 인생에서 찾은 것에 만족하자. 벌써 이렇게 찾은 것에 만족하자.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는 날들이 내 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늘 그랬듯 지금 이 상황에서 감사한 일, 행복을 찾고 행복한 채로 묵묵히 나아가자. 기적은 거창한 것도 큰 것도 아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가장 작고 평범한 일이다. 그걸 찾아내는 눈을 기르는 게 글쓰기로 원하는 걸 얻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리고 글쓰기는 내게 그 눈을 선물해 주었다는 걸 잊지 말자. 쓸 수 있는 걸로 만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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