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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Dec 08. 2021

혼자 영상 8편을 찍으며 자꾸 오열을 했다.

너와의 헤어짐을 준비하며.

점점 복덩이와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아이와의 헤어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둘째를 낳으러 가면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할 수 없다는데 그동안 복덩이를 보지 않고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만으로 가득찬 날들이었다.


매일 밤 잠든 복덩이 곁에 누워 오동통한 손을 만지면서도 꺼억 꺼억 울며 소리를 삼켰다. 웃으며 함께 놀다가도 뒤돌아 눈물을 훔쳤다.


내게 전부였던 아이가, 내가 전부였던 아이가 이렇게 오래도록 나와 떨어져 있게 되다니. 출산의 두려움보다 복덩이가 내가 없이 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걱정이 넘친 것인지 가슴속에는 늘 첫째에 대한 안쓰러움이 찰랑였다. 그 감정이 닿을 때마다 시리고 아팠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나와 떨어져 있는 동안 복덩이가 조금이라도 덜 슬플 수 있게, 덜 울 수 있는 방법을 고심했다. 


그러다 복덩이가 제일 좋아하는 책들을 읽어주는 영상을 찍어야겠다 마음 먹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제껏 복덩이와 한 번이라도 읽은 책들은 다 읽는 영상을 찍고 싶었다. 내 모습이 영상에 나와 책을 읽어줌으로써 아이의 허전함을 달래줄 수만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자꾸 눈물이 날 거 같아 차일피일 미루다 나는 이제 만삭의 몸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이제 실행에 옮길 차례가 왔기 때문이다.


마트폰 고정 삼각대를 챙겼다. 혼자서 거실 중앙에 삼각대를 놓고 그 위에 스마트폰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책은 이미 복덩이에게 수 없이 읽어줬던 친근한 책 8권을 챙겨놓았다. 그리고서는 방으로 들어가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더 이상 부풀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부운 손과 발은 더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게는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했고, 그걸 오늘 안에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배가 부르다 보니 빨리 한다고 해도 동작 하나하나가 느렸다. 겨우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뿐인데 진이 다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서둘러 삼각대에서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첫 책을 펴 들었다. 그리고서는 5초도 되기 전에 영상 녹화를 중지했다. 울음이 터져 나와서 찍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운 것도 아니고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게 울었다. 내가 없이 아이가 혼자 보내야 할 나날들을 떠올리니 앞이 막막하고 가슴이 미어졌다. 그러다가도 퉁퉁 분 벌건 눈이 찍힌 영상을 남길 수 없기에 한참을 손으로 부채질을 해가며 눈물을 식히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거기다 내 모습이 제대로 찍히고 있는지를 보느라 또 영상을 껐고 책이 내 얼굴을 가리지는 않는지 또 영상을 끄고 확인했다. 한 번도 그렇게 찍어본 적이 없어서 어색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산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었다. 그런다고 벌써 시간이 한참 지나가 버렸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전에 영상 작업을 다 마쳐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영상을 찍었다. 책은 최대한 보이지 않게 하고 화면에 나오는 건 내 상체와 얼굴이다. 나는 아이와 눈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밑에 펼쳐놓은 책을 읽을 때도 눈동자만 살짝 내려서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다음 문장은 재빠르게 외워서 아이를 보며 옆에서 들려주듯 스마트폰에 눈을 맞춘다.


영상의 처음은 활짝 웃는 내 표정으로 시작된다. 그리고서는 복덩이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넨다. "우리 복덩이 잘 자고 일어났어? 엄마가 정말 많이 사랑해." "복덩아. 엄마야. 우리 복덩이 씩씩하게 잘 있지?" 8권 하나하나 다 다른 인사들을 건넸다. 절대 보고 싶다는 말은 넣지 않는다. 괜히 그 말을 듣고 우리 복덩이가 그리움에 펑펑 목 놓아 울어버리지 않게 말이다. 보고 싶다는 말은 가슴으로 삼킨다.


그리고서는 "재밌는 동화가 왔어요. 재밌는 동화가 왔어요. 동화 나와라 뚝딱~"하고 노래와 율동과 함께 동화의 시작을 알린다. 저 노래와 율동은 복덩이가 어린이집에서 배워 온 걸로 한 동안 동화책을 읽기 전에 복덩이가 내게 불러주던 노래다. 동화가 끝날 때마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복덩이 엄마가 진짜 진짜 사랑해" 같은 인사를 남겼다.


아이가 느낄 익숙함을 떠올리며 애써 슬픈 감정을 추스르지만 얼마나 많이 동영상의 녹화 중지를 눌렀는지 모르겠다.


만삭의 임산부 몸으로 몸을 일으켜 끄러 가는 게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텐데 멈추지 않고 나는 자꾸 동영상을 중지시켰다. 동영상이 녹화되지 않고 있는 그 순간에 아무도 날 보지 못한다는 게 위로가 되었다. 영상을 다 찍고 나서는 눈이 부어있고, 눈가가 빨개져 있었다. 더 이상 앉아있을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걸 남겼다는 생각에 마음에 환한 빛이 들었다.


내가 둘째 아이를 낳으러 갔을 때 복덩이는 외할머니에게 아침,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내가 찍어놓은 동화를 틀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가 보고 싶다며 중간중간 울기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스스로 트는 법을 익혀 내가 보고 싶을 때면 한참이나 영상을 틀고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한 시간, 두 시간이 흐른지도 모른 채로. 그리고는 시간이 훨씬 더 지나자 내 동화를 그전처럼 자주 찾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전해듣고 하나도 서운하지가 않았다. 나를 덜 찾는다는 그 말에 안심을 했다. 내가 없는 시간에 적응하느라 고생하는 복덩이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코로나였지만 아기 면회시간에 면회실에서 복덩이를 만날 수가 있었다. 살면서 기적은 그리 멀지 않다고 느낀 순간이기도 했다. 매일 밤 울면서 걱정하던 복덩이를, 코로나로 인해 수시로 바뀌던 병원 방침으로 인해 못 볼 수도 있던 복덩이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왠지 나와 함께 있을 때보다 기죽어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뒤돌아 눈물을 훔쳤지만 생각보다 밝아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안도를 했다.


가족이 세 명에서 네 명이 되는 건 그저 사람 하나가 느는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내가 더 성장하는 일이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병원에 있는 동안 나는 배가 아파서 운 것보다 나와 떨어져 있을 복덩이 생각에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또 난산으로 인해 피주머니를 달고 있어서 모유를 한 번도 먹이지 못한 복숭이에게 미안해서 울었다.

내 몸 하나 추스르기도 어려웠던 그 시기에 나는 아이들 생각뿐이었다.


나는 점점 더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바탕화면에 동화 영상이 담긴 파일을 발견하고는 가끔씩 그날의 추억에 잠긴다. 오늘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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