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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an 30. 2021

키우는 존재가 아니라 같이 커나가는 존재라는 걸

7살.  이제 서로 말로 상처 입히는 시기가 왔다.


어젯밤 일이다.

아이가 내게

"엄마 엄마는 몇 살이 제일 좋아?"라고 물었다.

나는 해맑게 웃으며

"엄마는 우리 복덩이가 7살이니까 7살이 제일 좋지"하며 대답했다.

그리고선 나도 몇 살이 제일 좋은지 물어봤다. 

"나는 100살"

의외의 대답에

나는 "?"라는 질문을 했다.

차라리 하지 말 걸 그랬다. 대답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아이는 대답했다. "엄마가 없으니까"


오 마이 갓.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내 귀를 의심했다. 그 얘기가 나오기 전에 싸우지도 않았고 사이가 나쁠 일도 없었다. 그런데 불쑥 저 말을 하다니. 아이는 농담이라고 했지만 그런 살벌한 농담을 들은 나는 한참 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아이에게 삐져있었다. 아이는 내 표정에 심각성을 느꼈는지 연신 미안하다며 매달렸는지만 "그건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하고 똑같은 말이야"라며 아이를 떼어냈다.


그때 마침 퇴근길에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신랑에게 미주알고주알 이르고 나니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하라고 신랑이 말했다.

그러자 우리 아이가

"엄마한테 계속 미안하다고 했는데 엄마가 안 받아줘"하며 속상함이 가득 담긴 어투로 성을 내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너무 심한 게 아닌가 싶어 이제 그런 말은 하지 말라며 아이를 안아줬다.


나도 아이의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이나 말에 똑같은 돌발 행동과 말로 대처할 때가 많아서 고민이 많다.

아이는 아직 아이이고, 나는 어른인데.

전혀 어른스럽지 못하게 말하고 행동해서 아이와 같이 나도 상처를 줄 때가 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우울해졌다.


그런데 우연히 육아 관련 글 하나를 읽게 됐다. 아이가 엄마에게 나쁜 말을 할 때 똑같이 대응하지 말아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리고 아이가 왜 그런 말을 쓰는지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라는 말도.


나는 그동안 그저 하지 말라는 말만 반복했지 왜 그 말과 행동을 하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적어도 한 번쯤은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라도 마음속으로 질문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정말 아침마다, 자기 전마다 다짐한다.

오늘은 아이와 하루 종일 사이좋게 지내야지. 절대 화를 내지 말아야지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그러지 말라고 열 번을 말해도 열 번을 다 무시하고 하고자 하는 걸 끈덕지게 해 나갈 때도 나는 그런 아이의 행동에 결국 폭발하고 만다.


아이와 나는 요즘 충돌할 때가 많다.

우리는 주말이면 집에 있지 않고 어디든 자연을 찾아서 나갔다. 바다를 보고 돌아올 때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아이가 말을 못 할 때 우리 손에 이끌려 함께 갔을 테고,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아이도 가는 것을 함께 기뻐해 줬다. 그런데 6살 중반이 되면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다.

왜 가야 하는지 이유를 알려달라고 했고, 가기 싫다고도 했다.


그리고 7살이 된 지금은 코로나로 주말에 갈 수 있는 곳은 정해져 있다. 한 시간 거리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 집. 연수원과 펜션을 함께 하는 곳이라 마당도 굉장히 넓어서 그곳에 가면 자연을 볼 수 있다. 그곳은 집제한때문에 손님이 없어 슬프지만 안전하다. 동네 집들과도 떨어져 있어 동네분들과도 마주칠 일이 없다.(안 그러면 동네분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가면 안 되는데)

아이는 막상 가면 제일 신나게 뛰어놀면서도 가기 싫다고 어기 장을 놓고 떼부터 쓰고 본다. 그리고 시간을 끌다 협상을 건다. 유투부를 보여 달라거나 휴대폰 게임을 시켜 달라거나. 그러면서 차에서 보내는 시간은 시간낭비인데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툴툴거린다. 집에서 티브이도 보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차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 하면서 말이다. 그럴 때면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로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이의 짜증 어린 말들이 엄마인 내게는 상처로 꽂히고 계속되는 툴툴거림에 좋았던 기분마저 다운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요즘 고민이 많았다.


안 하던 행동들과 안 하던 말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곱씹어보니 모두 그저 아이의 감정 표현이었고 나는 그때마다 내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아이의 숨은 감정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아이도 분명 자기가 하고 싶은 게 확실할 거고 한 사람의 인격체인데 지금까지처럼 내가 좋은 걸, 우리 부부가 좋은 것만 하고 살 수 없는 거였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자연에 가서 뛰어놀면 얼마나 개운하고 좋을까 싶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우리 아이에게 주관이 생겼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쁘게 다가왔다. 만지면 부서질까 불면 날아갈까 우리가 혼신의 힘과 정성을 들여 육아한 아이가 벌써 이만큼 자랐다는 거니까. 우리의 보호 아래 건강하게 잘 자라줬단 거니까.

나는 오히려 마음이 기뻐졌다.

나와 의견이 다른다는 건 아이가 자기 의견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는 거고 나는 이제 아이의 의견에도 귀 기울이고 들어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며칠 전 유치원에 가기 전에 날 물끄러미 보더니 아이가 말했다.

"나 시집 안 가고 엄마랑 평생 살래"라고.

나는 가뭄 단비가 내린 것처럼 기쁘고 행복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처음 아이에게 그 말을 들은 건 아니었지만 요즘 들어 상처되는 말들과 반대되는 의견을 많이 내세우는 아이에게서 들은 다정해서 소중한 말이니까.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아이가 내게 속삭인 (별같이 반짝이는) 무수한 말들 속에 내가 이제껏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리고 이 아이가 있어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아이는 여전히 내게 사랑을 속삭여 준다. 뽀뽀도 해주고 안아도 주고 내가 다치면 울며 달려와 날 걱정해준다.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맑고 예쁜 아이인데.

이 작고 예쁜 아이에게 내가 뭘 한 거지?

오늘 내가 벌인 언쟁과 싸움 생각하며 나는 매일 밤 후회하고 자책하고 반성한다.


좀 더 어른스럽게 행동할 순 없었을까.

아이의 말에서 짜증이나 화를 끊어내고 싸우지 않았어야 했는데 등등을 떠올리며 말이다.


건강하게 잘 자라만 주면 된다고 했던 내가 자꾸 욕심을 부려서 우리 아이가 슬퍼지면 어떡하지 걱정도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아이의 편에서 아이를 이해하고 공감해야겠다. 이제는 내 아기가 아닌 한 사람의 인격체로 성장한 아이를 받아들일 때가 온 것이다.


아이는 내게 키우는 존재가 아니라 같이 커나가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되새긴다.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엄마는 세상에서 우리 복덩이를 제일 사랑해.

라는 말을 지금보다 더 많이 해야겠다.


아이의 마음이 커 갈수록 나는 그곳에 담아줘야 할 예쁜 말들을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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