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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an 17. 2021

우리 가족은 연락처에 사랑을 저장합니다.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고 표현하는 방법, 연락처 이름.

다시 서로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 또 나를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는 가족이다. 기에 가족의 연락은 서로에게 늘 가슴 뛰고 설레는 일다. 그러나 살다 보면 그때마다 반갑고 설렌다고 표현하지 못한다. 밥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오거나, 재미있는 프로를 시청하고 있는데 또는 양치를 하고 있을 때 연락이 오면 대충 전화를 받고 끊거나 짧은 글을 보내곤 한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피로에 젖어 있을 때도, 말 한마디 할 기운도 없이 체력을 소진한 날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그게 당연해지고 무뎌져 버려 표현하는 횟수는 더더욱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게 습관이 되고 일상이 돼버리면 가족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어색해져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표현들이 결국 딱딱하게  목 안에 가시처럼 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특효 처방은 바로 연락처에 적는 이름을 말랑말랑하고 따뜻하게 바꾸는 이다. 설레고 반갑고 고마운 사람이라는 걸 순간마다 알게 해주는 이름을 가족에게 지어주는 것이다.


휴대폰에 저장하는 이름은 친밀도와 연관이 깊다. 친해지면 대부분 이름에서 성이 빠진 채 저장이 된다.

상대와 덜 친밀할수록 이름 석자 뒤에 상대를 떠올리기 위해 괄호를 열고 어디서 만났는지 장소를 적거나 누구 관련해서 만났는지, 어떤 일을 계기로 만났는지 정보를 적고 괄호를 닫는다. 그 괄호가 없으면 그 사람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기 때문이다. 


나와 신랑이 정식으로 만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휴대폰에 서로의 이름을 다시 저장하는 거였다.

다시 서로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고민 끝에 서로에게 모든 것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지금은 휴대폰 기본 이모티콘에 빈 하트(♡)밖에 없지만 13년 전인 그때만 해도 속이 까맣게 꽉 찬 하트도 있었다. 내 폰에는 속이 빈 하트가 신랑 폰에는 속이 까만 하트가 모든 것이라는 이름 뒤에 붙여졌다.

하트가 다른 건 신랑이 그러자고 해서였다.

자신은 날 향한 마음이 이미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속이 꽉 찬 하트를, 나에게는 앞으로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겠다며 빈 하트를 골라줬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설렌다. 그렇게 멋진 남자와 지금까지 살게 되어 이제는 소중한 추억이 된 그때의 이름 속 하트다.


그 후로 우리는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아빠 엄마가 되었지만 서로에게 아직도 모든 것으로 저장되어 있다. 일에 치이고 육아에 지쳐 힘이 하나도 없다가도 휴대폰에 모든 것이라는 이름이 뜨면 살며시 미소 지어진다. 때로는 사소한 일로 의견 차이나 말다툼을 해서 감정이 상했을 때조차

모든 것이라는 이름을 보면 피식하고 웃음이 나며 부정적인 마음을 흘러 보낸다. 그만큼 연락처의 이름 칸은 그 이름보다도 훨씬 값지고 중요한 칸이다.


목숨을 걸고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은 뭘로 저장할까?


이렇게 이름 칸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부모님의 저장된 이름도 떠올리게 됐다. 나는 심플하게 엄마, 아빠로 저해 놓았었다.

그 이름만으로는 고마움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엄마,  사랑하는 아빠로 바꾸고 나서 나도 엄마, 아빠에게 어떻게 저장돼 있는지 떠올려 봤다.

그리고서는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어떻게 저장해 놓았는지도 궁금해서 한걸음에 달려가 여쭤보았다. 두 분은 너무나 당당하게 서로의 이름이 저장된 걸 보여주셨는데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상상이나 해 본 적이 있었을까. 그렇게 저장되어 있으리라고.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언제나 닮고 싶은 분들이었는데 연락처에 이름마저도 내게 큰 깨달음을 주셨다.


겉으로 사랑을 속삭이지는 않아도 부모님의 사랑은 '찐'사랑이었다.

그리고 자식에 대한 사랑도 '찐'사랑이어서 내가 어떻게 저장되어 있는지 떠올릴 때마다 내 마음은 따뜻해졌다.


나는 엄마에게 분신이었고,

(내가 엄마의 전부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의 분신으로써 더 착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겼고, 또 삶에 대한 책임감도 느껴져서 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가 더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빠에게 나의 보물이었다.

(보물은 따로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내게 소중한 것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걸 안다. 그것도 무척이나.

나는 아빠에게 소중한 존재였고 지금도 나는 아빠에게 소중한 존재이다.) 


아빠는 엄마의 대장이었고,

(대장이라니. 그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내가 가장 사랑하고 가까운 이가 나를 대장이라 칭해주고 생각한다니. 아빠는 엄마에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인정받고 있었고, 남자로서도 인정받고 있었다. )

엄마는 아빠에게 나의 천사였다.

(아빠는 정말 그 시대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한결같은 사랑꾼이었나 보다. 나의 천사라니. 달콤하다 못해 달콤함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 할 정도이다.)


서로를 저렇게 저장해 놓아서일까.

부모님께서 큰 소리를 내며 싸우신 걸 들어본 적이 없다.


나의 부모님이 서로를 저장해놓은 이름을 보고

또 나를 저장해놓은 이름을 보고

나와 신랑의 앞날을 우리 부부와 아이들의 앞날을,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나의 부모님과 아이들의 앞날을 그려보았다.


우리의 미래는 저장된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고 밝아 보였다. 아이들이 커서 휴대폰이 생긴다면 정말 멋진 이름들이 가족들에게 생길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름만큼이나, 그 이름보다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 줄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거처럼. 우리 부부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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