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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Dec 16. 2021

시어머니의 방문 소식에 화색이 돈다.

어머님 오래 계시다 가셔야 해요.

어머님과는 한 시간 거리의 다른 지역에 살고 .


어머님이 오신다고 하신 일주일 전 어머님 댁에 다녀오며 고들빼기김치를 받아 왔다. 밥상 앞에서 연신 감탄을 하며 먹는 날 고 싸주셨다.


그 고들빼기는 그날부터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갓 한 고슬고슬한 밥에 어머님이 만드신 고들빼기 한 점이면 입에 넣기도 전에 침이 고였다. 입에 들어가면서 한 번 더 진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끼니마다 고들빼기는 꼭 꺼내 먹었다. 그리고 꺼내어 먹을 때마다 어머님 생각이 났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 만에 고들빼기김치가 든 반찬통은 바닥을 보였다. 고들빼기가 떨어졌단 소식을 들은 어머님께서 내가 사는 지역에 마침 볼일이 있으시다며 갔다 주신다고 하셨다.


들르시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것도, 어머님이 오신다는 것도 좋았다. 


매일같이 영상 통화를 하며 그리움이 배가되던 참이 었는데 이렇게 만날 수 있다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나는 그때부터 데이트 계획을 짜느라 바빴다. 그러면서 다른 누가 온다 해도 이렇게 설레고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 없이 어머님과의 단독 만남은 낯설지 않았다. 첫 만남부터가 그랬기 때문이다. 


대학교 기숙사에서 살던 신랑이 자취방을 얻어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잘 살고 있는 걱정이 된 어머님께서 한 번 들르러 오신다고 하셨.


어머님은 기차를 타고 오실 계획이셨는데 친구와 같이 기차를 타시느라 기차표를 미리 끊으셨다고 했다. 친구분과는 역에서 헤어질 예정이라고 했다. 근데 그 열차 시간이 하필 신랑이 수업을 듣는 시간과 맞물려 있었다.


신랑의 학교 쪽은 거의 처음 오시는 거라 길이 낯 텐데 나는 어머님을 내가 모시고 오겠다 했다. 애 1년 차였다. 아직 한 번 뵙지도 못했지만 왠지 자신이 있었다.


신이 난 참새처럼 총총총 걸어 어머님이 나오실 역으로 미리 갔다.


사실 나도 긴장이 엄청 됐다. 어머님을 알아보지 못하 지나치면 어떡하지, 혹시 어색하지는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참새처럼 총총거리며 왔던 다리는 이미 후들후들 거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걸어 나오는데 신랑하고 정말 똑같이 생기신 분이 계다.


나는 한눈에 운명처럼 어머님을 알아보고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제일 걱정이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지 였는데 그게 해결된 것이다.


처음 뵌 어머님은 여성스럽고 고운 분이셨다.


길치였던 나는 신랑 학교로 가는 택시를 어디서 타야 할지 헷갈렸다. 혼자 그곳을 찾아오기 힘드실까 봐 모시러 온 거였는데 함께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님은 싫은 기색 하나 없으셨다. 오히려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나를 위로하셨다. 그때 어머님이 참 따뜻한 분이라는 걸 느꼈다.


결국 서로 길을 모르는 우리는 서로를 의지한 채 그래도 어째 어째 무사히 신랑이 있는 학교로 왔다.


자취방에 가기 전 학교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갔다. 멀리서 오셨는데 내가 어떤 작은 것이라도 대접을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님과 친해진 계기는 신랑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신랑을 만나기 전 모습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는 물어보는 데에 있어 거리낌이 없었고, 어머님은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같은 사람을 아끼는 두 사람이 만나 친해질 수 있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회에 어머님과 느끼한 걸 잔뜩 먹어야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아버님도 신랑도 한식을 좋아해서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는 대부분 한식을 먹는데 어머님과 단 둘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안 그래도 어머님과 밖에서 만날 일이 있으면 분위기 좋은 곳을 모시고 가고는 했는데 그럴 때면 어머님은 스파게티도 예쁜 디저트도 잘 드셔주셨다. 그리고 그 분위기 자체를 즐겨 주셨다. 나는 그런 어머님이 참 좋았다. 항상 웃으시는 그 얼굴이 좋았고, 선한 웃음만큼 인자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는 게 좋았다.


신랑의 회사에서는 내가 어머님과 단 둘이 만나는 로 인해 때 아닌 논쟁이 일어났다고 했다.


모두가 그 만남을 말렸다는 것이다. 신랑이 없이 둘만 만나는 건 너무 아슬아슬하다고 했다.


그날 당일에 일이 터지지 않더라도 며칠이 지나 어떠 어떠한 게 서운했다고 폭탄이 터질 거라면서 말이다.


나도 그게 어떤 말인지 이해는 됐다. 어느 집에서라도 한 번쯤은 겪었을 상황이라 생각했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랬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적어도 그게 이번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어머님이 오시고 나는 이미 알아뒀던 양식집에서 스파게티와 필라프를 시켰다. 근데 이게 웬일. 같은 맛의 스파게티만 2개가 온 것이다.


나는 당황해서 배달이 잘못 온 것 같다며 배달앱을 서둘러 켰다. 내가 그랬다. 울고 싶었다.


하지만 애써 당혹함을 감추며 배고프실 어머님을 위해 얼른 식사를 권했다.


그런데 그게 신의 한 수였다. 스파게티가 정말 입에 들어가자마자 목구멍으로 쏙 넘어갈 만큼 맛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님과 정말 맛있게 스파게티를 먹었다.


어머님은 스파게티도 스파게티지만 둘째를 보시는데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보기만 해도 아까우신지 둘째를 향한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5년 만에 아기가 태어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머님은 안 그래도 아이를 예뻐하시는데 이제 막 꼬물꼬물 걷고 애교를 부리는 둘째를 보시는 게 정말 행복해 보였다.


어머님은 배가 불러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다고 하셨지만 나는 기어이 디저트를 시켰다. 요즘 디저트너무 예뻐 먹기도 아까운데 그걸 어머님께 꼭 대접해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나는 평소에 뚱카롱이라든지 전주 초코파이, 전병이라든지 같은 것들이 있으면 어머님 생각이 나서 종종 보내드리고는 한다.


보내드리는 간식들은 나도 아까워서 먹지 못할 만큼 예쁘거나 맛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어머님이 그걸 드시면서 그 순간은 정말 행복하시길 바라면서 말이다.


디저트가 괜찮으시다던 어머님은 디저트를 보고 정말 예쁘다며 좋아하셨다. 떠먹는 티라미슈 케이크와 패스츄리 와플이었다. 그리고 따뜻한 커피 한잔.


굳이 나는 그걸 옥상에서 먹자며 어머님 손을 잡아끌었다. 옥상은 공원처럼 꾸며져 있어서 어머님 마음에도 쏙 들었다. 복숭이는 흙을 밟으며 걸어가다 넘어지기도 하면서 나무막대 하나를 집어 신나게 놀았고, 그곳에서 나는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디저트를 먹었다.


어머니는 참 말이 고우신 분이셨다. 표현도 아끼지 않으셨다. 그날도 내게 복덩이라고 하셨다.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해주신다.


차가운 바람도, 눈앞에 보이는 산도, 하늘에 떠가는 구름도 다 완벽했다.


나는 그날 어머님이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또다시 고들빼기김치를 꺼내먹을 때마다 어머님이 눈앞에 아른거릴 것만 같았다.


내 짝꿍의 어머니는 내게 늘 따뜻한 존재이다. 결혼을 하며 가장 좋았던 건 나를 걱정해주고 아껴주고, 마음을 나누는 가족이 더 생겼다는 거였다.


어머님과 평생을 지금처럼 알콩달콩 잘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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