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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Dec 21. 2021

쉴틈, 그게 뭐예요?

신랑이 돌아오면 다 괜찮을 거라는 착각에 대해.

내 목이 제대로 기능을 못한 지 꽤 오래됐다.


요즘 종종 부딪치는 일곱 살 첫째에게 목에 핏대를 세우며 화를 내느라 그렇게 된 건지 아니면 화를 내고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다가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복숭이는 책을 쉴 새 없이 가져왔는데 그 책을 다 읽어주느라 을 무리하게 쓰기도 했다. 그 와중에  스스로 읽지 않으려는 책을 복덩이에게 읽어주느라 더 무리를 했다.


임파가 부어 시든 식물처럼 맥을 못 추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 날에도 나는 두 아이를 책임져야 했다. 주말부부가 시작된 7월부터는 온전히 내 몫인 아이들이었다.




2살, 7살 아이 손이 많이 간다.


배가 고프다는 첫째의 밥을 차려주면 이제 시작이다.


차려준 밥상을 노리는 둘째를 상에서 떼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도 당하니까 첫째는 쉽게 소리를 질렀고 둘째도 조그만 게 소리를 같이 질렀다.


그러다 육탄전으로 번지는 건 순간이었기에 얼른 가서 아직 말 못 하는 둘째를 대신해 미안하단 말을 하며 떼어 놓았다.


둘째는 아무리 떼어놓아도 오뚝이처럼 그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몇 번이고 떼어놓기에 여념이 없고 첫째 아이는 내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유롭게 식사를 이어간다.


여유로워도 너무 여유롭게 말이다. 밥은 잊은 채 티브이도 봤다가 잠시 누워도 봤다가 하며 말이다. 돌진하려는 둘째를 붙든 채 몇십 번의 밥을 먹어라는 얘기를 해야 겨우 밥시간이 끝난다.


복덩이는 밥 말고도 디저트, 과일, 물까지 먹고 싶은 것들 종류 많다. 나를 가져다주면 또 다른 걸 요구한다.


물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지 않냐고 얼른 가서 마셔라고 하면 알겠다고 하지만 그때뿐이다. 또다시 목이 마르면 습관처럼 엄마를 부른다.


둘째 잘 먹는다. 어른 밥 한 그릇을 그 자리에서 다 먹는다. 그런데 한 번에 그렇게 많은 양의 밥을 퍼서 주는 게 아니니까 몇 그릇의 밥을 먹인다.


그렇게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엉덩이가 무거운 나인데도 엉덩이 붙일 새가 없다.


아이들은 잘 놀다가도 순식간에 장난감 하나를 두고 싸움을 이어간다. 형이 만지는 건 다 신기해 보이는 복숭이가 형아 꺼를 뺏으러 들어 싸우고, 집에 있는지도 까먹고 있던 유물 같은 장난감을 복숭이가 가지고 있으면 또 복덩이가 호기심 뺏들어 버린다.


그 누구의 편도 쉽게 들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나는 금세 지쳐 버린다.


팔 하나 들 힘조차 없는 날도 쉴 새 없이 기저귀를 갈아야 하고 우는 아이의 잠투정을 달래며 업어야 한다.


왜 잠을 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복덩이에게 이해가 가게끔 설명도 해주어야 한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이어지더라도 말이다.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겨우 둘밖에 안되는데도 왜 이렇게 손이 가는 게 많은지. 힘에 겨운지. 내가 둘로 증식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


그 와중에 이가 나는 둘째가 새벽에도 시간을 잊고 울었다. 낮에도 이를 갈며 평소보다 칭얼댔다.




사실 프로젝트 일정에 차질이 생겨 예상 날짜보다 주말부부의 끝이 한 달 늘어진  그의 탓 아니었다. 도 회사에 속해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자신의 탓이 아님에도 나의 늘어난 짜증과 울컥함을 신랑은 온몸으로 맞았다. 불평, 불만 한 마디도 없이.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오히려 신랑이 그렇게 반응하니까 짜증과 억울함 분노 같은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다가도 측은함, 애잔함, 안쓰러움, 미안함 같은 감정으로 변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프로젝트가 늘어진 이유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은 그가 온전히 그 비난을 받는 건 억울할 거 같았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고 여기는 가족이 그런다면 모든 게 허무할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돌아올 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하는 신랑에게 짜증을 내는 순간에도 죄책감을 느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신랑이 돌아오면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이 모든 게 사라질까.


아니라는 걸 안다. 쉴틈을 만드는 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아니라는 걸. 내 스스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특히 지금 내가 처해진 상황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임파가 부은 게 지속돼 컨디션 난조와 평일 신랑의 부재, 그럼에도 같은 양의 육아 속에서도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이 보름달처럼 두둥실 올랐다.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도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쓰면서 나를 찾았다.


단편소설을 쓰고, 단행본 동화를 쓰고, 브런치에 글을 발행했다. 그때가 어쩌면 가장 깨어있는 시간일지도 몰랐다. 체력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무엇보다 기뻤다.

그게 어쩌면 내게 첫 번째 쉴틈 인지도 몰랐다.


두 번째 쉴틈은 울음이 터진 날 생겼다. 내 배송목록은 늘 가족을 위한 것들로만 채워져 있었는데 내가 감당하고 있는 일상이 더 이상 힘에 부쳐 엉엉 울었던 날, 몇 달간 장바구니에만 담아놓았던 감바스를 시켰다. 피자를 닮은 이태리 요리까지도 하나 더 움쳐서 시켰다. 삼만 원이 넘었던가? 요 몇 달 날 위해 가장 큰돈을 쓴 날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별 거 아닌 거 같은 그 일이 내게 또 숨 쉴틈을 만들어 줬다. 그거 두 개를 주문했을 뿐인데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고단함이 빠져나갔다.


나는 다시 누구보다 우뚝 서서 밝은 엄마로 돌아왔고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숨 쉴틈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찾아가 봐야겠다. 글을 쓰고 나를 위한 요리를 주문한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뜨거운 보이차였고 그다음 날은 무엇일지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감사와 기대로 채워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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