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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Dec 27. 2021

낯부끄러운 줄 알아야 좋은 엄마가 된다.

나는 어쩌다 이런 엄마가 됐을까.

이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아이가 나를 찾거나, 말을 걸 때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답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부터이다. 그때마다 내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생산성이 있는 일을 하고 있었더라면 그렇게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핸드폰에 있는 기사를 별 감정 없이 넘기고, 받아 놓은 게임을 생각 없이 하고 있었다.


그러느라 가장 소중한 것들은 놓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놓친 것은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 앞에서 언젠가부터 힘들다는 말도, 아프다는 말도 너무 쉽게 꺼냈다. 엄마가 아프면 슬퍼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핑계 삼아 7살 첫째에게 안마를 교묘히 종용하기도 했다.  안마를 해주는 대가로 티브이 유튜브를 허락해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말귀를 알아듣고 내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더 시키고 바라는 게 많았다. 그 바람에 미치지 못할 때면 상대가 아이인데도 쉽게 실망을 했고, 실망감을 표현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아이다움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아이니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아이니까 소매를 걷지 않고 손을 씻기도 하고, 아이니까 목욕을 하고도 옷을 재빨리 입지 않고 후다다닥 거리며 뛰어다니기도 하는 건데. 그 당연한 것들조차 참지 못하고 잔소리를 했다.


속을 뒤집어 놓는 말대답을 할 때면 '7살도 아직 어린 아이야.'라는 말을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내 자식인데, 그게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고 계속 머리로 되새겨야 한다는 게 부끄러웠다.


아이는 놀이를 할 때 아이가 정해놓은 방식대로 하기를 바랐다. 아이의 방식은 일방적이고 지루했지만 그건 내가 어른 이어 서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놀아달라고 할 때 이 놀이만 영원히 해야 할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아이가 하고 싶은 놀이는 시기마다 바뀌어 있었다.


공룡을 열 맞춰 세워놓고 하는 공룡 싸움, 공룡과 인형을 한 줄로 세워놓고 하는 병원 놀이, 유치원에 다녀오자마자  놀이터 가기, 잡기 놀이, 숨바꼭질, 옥상에 올라가서 소꿉놀이 하기 같이 시기마다 다른 놀이를 했다.


시기마다 아이가 원하는 놀이는 딱 한 가지뿐였는데 나는 왜 그걸 제때, 제대로 해주지 못했을까. 너무나 쉬운 것들이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도 말이다.


아이의 웃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아이의 기뻐하는 그 웃음소리를 한 번이라도 더 들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내어야 했다.


낯부끄러운 모습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막말을 듣게 했다.


도저히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에게 할 수 없는 말, 아이가 어디 가서도 절대 듣지 않았으면 하는 말.


"그 예쁜 입으로 나쁜 말 하면 안 돼."라고 자신의 의견을 상대의 기분까지 헤어리며 잘 말하는 아이가 내가 막말을 할 때면 입도 벙긋 못 하고 놀라서 쳐다봤다.


"세상에 너 같은 사람이 어디 있어.", "그래. 문 열어 줄테니까 나가.",  "그게 말이 돼?", "정신 차려.", "야"하고 윽박지르기, "다시는 너하고 말도 안 할 거야."까지. 당장에 생각나는 것들이 이 정도이니 나는 아이와 살면서 얼마나 모진 말들을 많이 쏟아냈을까.


막말은 말 그대로 막말이다. 그런 말들을 다시는 아이 앞에서 꺼내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핸드폰을 의미 없이 쥐고 있는 그 나쁜 습관도 과감히 버릴 것이다. 그 시간에 밤하늘 어느 별보다 반짝이는 아이의 두 눈을 들여다볼 것이다. 아이의 시선에 눈을 맞추고, 아이의 부름에 기꺼이 대답을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랑한다 한 번 더 속삭여 줄 것이다. 보들보들한 아이의 살결을 한 번이라도 더 쓰다듬어 주고 품에 안아줄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기꺼이 시간을 보내줄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티브이를 볼 때도, 유튜브를 볼 때도, 게임을 할 때도 엄마가 없어도 된다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서야 바뀌 너무 늦어 버린다.


그렇기에 그날이 오기 전, 낯부끄럽지만 잘못을 시인하고 좋은 엄마가 되어야겠다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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