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잘 버텼는데 한 달만 더 참지.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지난 6개월 간 신랑과 주말부부로 살며 2살과 7살 남자아이를 키웠다.
함께하는 주말은 늘 불꽃놀이를 보는 것처럼 황홀했지만 찰나 같았다. 일요일 오후 3시가 되면 신랑이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의 성장을 함께 볼 수 없었고 퇴근 시간이 넘어 아무리 현관문을 쳐다봐도 들어오지 않았다.
씻기고 먹이는 것도, 아이의 숙제를 챙기는 것도, 준비물과 가방을 싸는 것도 늘 혼자였다.
혼자서 둘을 돌봐야 했기에 첫째 때는 혼자서 매지 못했던 포대기를 둘째 때는 혼자서도 척척 둘러맸다.
둘째가 잠드는 시간은 매일 새벽 1시가 넘는데 그렇다고 다음날 첫째 아이 등원 시간이 바뀔 리 없었다. 피곤했지만 나밖에 없었으니까 매일 같은 시간 몸을 일으켜야 했다.
아빠의 빈자리를 그 누구도 느끼지 못하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서 나 혼자만 참으면 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참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너무 억누르면 결국엔 터지는 게 맞나 보다. 그동안 힘들었던 게 둑이 터지듯 쏟아져 나와 나를 공격했다.
주말부부의 끝을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내게 이상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커피포트에 버튼을 누른 것 같이 자주 마음이 들끓었다. 불 꺼진 방에 있으면 자꾸 울음이 나왔다.
‘신랑도 그곳에서 놀았던 게 아니야. 우리를 생각하지 않았던 게 아니야. 가족을 위해서 그도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어.’
매일 외웠던 그 말들도 ‘이제는 하지 마.’ 하고 내 마음이 손사래를 쳤다.
네가 힘들었던 것도 좀 털어놓으라고, 네가 고생한 것도 좀 알아주라고 자꾸 이상한 소리를 했다.
주말부부를 하면서 모든 순간이 다 힘들고 슬펐던 건 아니었는데 그 좋았던 순간조차 요즘 느끼는 이 이상한 감정들 때문에 퇴색되는 것 같아 마음이 복잡했다.
당장 다음 주부터 신랑은 월요일과 수요일에도 집에 오는데, 하루는커녕 한 시간이라도 신랑이 와서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던 마음이었는데. 왜 지금 와서 맞이할 행복조차 감사히 여기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건지.
아이를 키우며 고되었던 시간이, 그 시간에 신랑이 평소보다 훨씬 없었다는 점이 이렇게 주말부부가 끝날 때쯤 화살이 되어 다시 신랑에게 돌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새해 마지막 날 다른 이에게는 덕담을 하면서도 신랑에게는 그동안 서러웠던 걸, 서운했던 걸 말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신랑은 보호구 하나 착용하지 못하고 그 불길을 그대로 다 맞았다.
그 와중에 나는 이 사람이 나와 좀 싸울 제스처를 취하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받아만 주고 내 마음을 다독여만 주니 싸우려는 의지가 사그라들었다.
나는 지금 이 감정들을 풀어야 하는데, 이 사람하고는 싸움이 될 거 같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주말부부의 끝을 고작 이틀 남겨놓고 이 글을 쓰고 있을지 상상도 못 했던 나는 우습게도 더 이상 불행하지 않다.
글이 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를, 주말부부로 보냈던 그 시간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도와 주웠다.
주말부부를 하며 쓴맛을 제대로 보아서 다음에 올 단맛도 카카오 99% 함유량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당연한 거라 알려 주었다. 그만큼 썼으니까, 그 수준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 주었다.
글을 다시 쓴 게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에 이곳에서 소중한 분들도 만날 수 있었다.
어쨌든 주말부부는 끝이 났고, 이제는 단맛 같은 다음 주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이 사실이 바뀌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지 말고, 오늘은 잠이나 푹 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