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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an 03. 2022

2년 간 꼴찌만 하는 기분.

내가 이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이제 7살이 된 첫째는 태어나 4개월 만에 6시간 통잠을 잤다. 두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수유를 했던 내게 그건 기적이었다.


그리고 5년 만에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 아이는 새벽이 되도 잠들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낯설었다.


죽은 듯이 자고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우는 아이를 안고, 업고 달래느라 사투를 벌인 날은 떠오른 해가 야속하게까지 느껴졌다. 누가 내게서만 밤을 훔쳐간 것 같아서 억울하기까지 했다.      


안 그래도 잠이 적은 아이인데 이가 날 때면 더 보채고 잠을 안 잤다. 그런 둘째를 보고 신랑이 말했다. “너희 형은 어금니 날 때만 잠깐 그러고 말았는데 너는 하나하나 날 때마다 그럴 거야?”. 평소 어디까지 알아들을 수 있는지가 제일 궁금했던 둘째는, 적어도 그 말은 못 알아들은 건지 아무 타격이 없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피식하고 실소가 나왔다.

  

한 번은 아무리 자라고 애원을 해도 잠을 자지 않던 둘째가 힘이 빠졌는지 엎드린 자세로 고개를 살짝 들었다 내렸다가를 몇 번 반복했다. 그 아이가 갑자기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너무 깜짝 놀라서 상태부터 살폈다. 입안에는 피가 고여 있었고 입을 벌리니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바로 앞에 있었는데 믿기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안전한 자세였는데, 고개를 들다 혀를 깨물다니. 우는 아이를 안아 들고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 말밖에는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더욱더 잠이 올 때면 내 허벅지를 찌르고, 잠시 감은 두 눈을 톡톡 때렸다. 둘째가 깨어있는 이상 나는 한 시도 눈을 떼서도 당연히 잠들어서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혼자서는 힘들 때가 많았다. 아이를 오랫동안 업고 있으면 아이는 눈꺼풀보다 더 무거워졌다. 발바닥이 아팠고 허리의 근육이 땅기면서 찢어질 듯 통증이 밀려왔다.  


부모님이 한집에 살고 지만 그렇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어느 한 분 깨울 수가 없었다. 나도 여기저기가 쑤실 때가 있고 몸이 무거울 때가 있는데 두 분은 오죽하실까. 내 선택으로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는데 그 짐을 덜어주기 위해 합가까지 한 부모님이셨다. 나는 그 이유로라도 그 어떤 것도 더는 바라서는 안 되었다.      


매일 식지 않는 사랑을 아이들에게는 물론 우리 부부에게도 주시는데 감사하기만 했다. 그 따뜻한 시선과 위로가 아니었다면 어찌 이렇게 매번 꼴찌를 하는데도 버틸 수 있었을까. 아이를 바라보며 짓는 미소 한 번이, 안아 드는 그 손길 한 번이 내게는 돈보다 값지고 시간보다 귀했다. 두 분은 언제나 깊이 주무시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대신 나는 엄마의 젊은 시절을 자주 떠올렸다. 밤새 울며 보챘던 나를 안고 있을 엄마의 모습. 어린 엄마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런 엄마를 꼭 껴안아 주는 상상을 했다. 꼭 껴안아 주고 싶었다. 그 작은 생명체가 엄마를 밤낮으로 괴롭혔을 생각을 하니 34년이 지났는데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이를 키우며 엄마가 존경스러웠다.      


어쨌든 밤은 아이와 나 둘 뿐이었다. “엄마 너무 잠 와. 얼른 코 자야지. 코." 하면 둘째는 ”코“하는 소리만 길게 낼뿐 두 눈을 감는 수고도 하지 않고서 자는 척을 했다. 그 모습이 또 얼마나 능청스럽고 귀여운지 피곤한지도 모르고 웃음이 났다.     


새끼 펭귄의 솜털 같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다 귀를 쓰다듬다 볼을 쓰다듬었다. 안 예쁜 곳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가 간지러워 내 연한 살을 포를 뜨듯 깨물었을 때도, 등에 업혀 한 시간 내내 우는 그 순간에도 예뻤다. 똥 기저귀를 갈 때도 예쁘기만 했다.      


‘네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디서 매일 너처럼 작고 인형 같은 아기를 볼 수 있었을까. 보드라운 너의 살결에 볼을 비비고, 널 안고, 업고, 눈을 맞추며 웃을 수 있었을까. 그런 널 볼 수 있는데 밤에 몇 시간 잠 좀 못 잔다고 무엇이 대수일까. 네가 날 엄마로 살게 해 줬는데. 네가 내 곁에 와주었는데. 아가야. 그거 아니? 살면서 좋아하는 걸 하고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야. 나는 네 덕분에 매일 차고 넘치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어.’     


‘내가 이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      


아이의 숨소리가 귓가에 들리면 그 어느 밤의 소리도 부럽지 않다. 나는 매일 같은 자리에서 광활한 우주를 키우고 있다. 이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만 있다면 내 평생 꼴찌를 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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