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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an 07. 2022

아이의 방학이 두렵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마지막 방학이니까!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가 말을 건넸다.    

        

“엄마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 알아?”    

초롱초롱한 두 눈을 보고 있자니 꼭 모른 체를 해야 할 것 같다.     


“무슨 말일까? 엄마 궁금하네.”  

        

“예를 들어서 엄마가 좋은 옷을 입고 밖에 나갔어. 그런데 갑자기 비가 오네. 피할 곳도 없어. 그래서 계속 비를 맞아. 그럼 기분이 어떻겠어?"

내 기분을 물은 거 같아 대답을 하려는데, 통째로 외 온 건지 재빨리 말을 이어간다.   

  

"안 좋겠지? 그런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되는 줄 알아? 그냥 즐기면 돼.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는 그냥 받아들이고 즐기면 돼. 엄마”  

         

“어머. 복덩아. 복덩이가 그런 것도 알아? 어떻게 안 거야?”   

       

“유치원에서 오늘 배웠지. 선생님이 얘기해줬어.”          


복덩이는 몹시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는 그런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꼭 안아주었다.

         



아이의 방학 일수가 적힌 가정통신문을 받아 든 날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가 생각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방학이 되기도 전 ‘둘째가 낮잠을 잘 때 따라 자야 하는데 이제 어쩌면 좋지?’ 또는 ‘첫째와 둘째 사이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중재만 하다 하루가 다 가 버리는 거 아냐.’하고 미리 걱정부터 했던 예전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나는 이제껏 아이의 방학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 방학만큼은 그렇게 맞이할 수 없었다. 아이가 유치원생으로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방학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못 해줬던 걸 학교에 들어가기 전 만회할 수 있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그래. 아이 말처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면 돼.'


나는 이번 방학에 가장 큰 화두를 복덩이의 행복 찾기에 두었다.     


코로나로 관광지나 놀이공원은 데려가 줄 수 없지만, 집만큼은 놀이공원처럼 즐거운 곳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동물원에서 다음에는 어떤 동물이 나올까 설레 하는 것처럼 내가 주는 간식이, 밥이 설레었으면 했다. 그리고 유치원에서 규칙을 익히고 따르느라 긴장한 것까지 모두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편했으면 했다.    

      

그러려면 복덩이가 좋아하는 것을 채우고, 싫어하는 것을 덜어내야 했다.   

        

우선 복덩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는 아이가 좋아하는 귤을 미리 한 박스 준비해 놓고, 베이글과 크림치즈를 넉넉히 쟁여두었다.      


아이는 아이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음식도 소탈다. 떡볶이 하나에도 엄지를 치켜세우고 당면이 든 만두를 함께 구워다 주면 좋아서 소리까지 지른다. 방금 한 밥에 김만 싸주어도 밝게 웃어주고, 후식으로 귤을 까주기만 해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가 될 수도 있다. 평소에 먹고 싶어 하는데 잘 주지 않았던 라면을 가끔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와 함께 하는 방학이 꽉 찬 기분이었다.   

   

아이는 나와 함께 있는 내내 욕심내지 않고, 있는 것 안에서 그리도 쉽고 빈번하게 행복을 건져냈다. 그건 내가 가장 배우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내가 다 알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아이는 곧잘 먹고 싶은 걸 얘기해 줬고, 하고 싶은 놀이를 알려주었고, 보고 싶은 걸 스스로 틀었다.      

    

아이는 또 소박했다. 슬라임이나 새 장난감을 매번 가지고 놀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스스로 집 안에서 장난감이나 놀 것을 찾아냈다.     


한 번은 일 년 전에 시켰던 새것이지만 다 굳어버린 지점토 하나를 찾아왔다. 너무 딱딱한 그 지점토로는 모양을 만드는데도 손이 아팠다. 그걸로 놀아주려니 미안하기도 하고 머쓱해서 노는 와중에 당장 새로운 찰흙을 주문했다. 그런데 아이는 하나도 개의치 않아 보였다. 그걸 가지고도 몇 시간이나 거뜬히 놀았다. 예쁜 건치 미소를 자주 보이며 말이다. 거기다 다음날 같은 지점토를 어제보다 하나 더 뜯어서 가지고 놀게 해 주었을 뿐인데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내가 본인이 하고 싶은 게임을 함께 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를 두었다. 흰 종이에 성공이라는 글자를 적어와서 자기와 게임을 하고 싶을 때 이걸 건네라고 했다. 그깟 게임 한 번 같이 해주는 게 아이에게는 성공이라는 단어를 쓸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걸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비소집일이 되어 학교에도 함께 갔다. 학생이 처음이고, 학부모가 처음인 우리는  한껏 긴장해서 서로에게 의지했다. 손을 잡고 걷는 길은 아이가 곁에 있어, 건강하게 있어 줘서 그야말로 꽃길이었다.     


귀가 차갑다며 내 손을 끌어다 난로처럼 썼는데 빨갛게 언 귀가 작고 귀여웠다. 나는 화력이 좋은 난로는 아니지만, 겨울의 찬바람 정도는 아이를 위해 얼마든지 맞을 수 있었다.


교문을 나서면서 자신감이 하늘까지 솟구친 아이가     

"엄마. 나는 조사, 접속사, 형용사, 동사 같은 것도 다 아니까 1, 2학년은 안 다녀도 되겠어. 너무 시시할 거 같아."하고 말했다. 속으로 실소가 터져 나왔지만 차마 동심 앞에서 뱉어낼 수 없었다.    

  

덜어내는 일은 얼마 전 더는 낯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게 도움이 많이 다. 내게서 고쳐야할 점을 찾았고, 고치는 중이어서 그 연장선으로 여겼다.     


우선 아무 의미 없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기사를 보지 않는 게 눈도 마음도 이렇게 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왜 그걸 이제껏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의문이 갈 정도였다.


공부도 과감히 덜어내었다. 아이는 학교에 가기 전부터 공부가 정말 하기 싫다고 의사를 내비쳤었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부를 하지 않는 학교로 보내달라고 했을까.     


이번 방학만큼은 매일 정해놓고 읽던 책도 읽지 않기로 했다. 공부 얘기만 나오면 진저리 치는 아이를 보고 방학 숙제를 나의 기억에서도 지워버렸다.


노는 것도 실컷 놀아보고 쉬는 것도 원 없이 쉬어봐야 휴식의 참뜻도 알게 되지 않을까. 어른이 되어 쉬고 싶어도 쉬는 방법을 잘 몰라 제대로 못 쉬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적어도 복덩이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안심이 되었다.  


아이 둘이 싸우는 것도 덜 개입하기로 했다. 이제껏 나는 아무래도 덩치가 작은 둘째 편을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무조건 한쪽만 희생하는 양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웬만큼 쥐고 박는 건 둘이 알아서 하도록 했다. 그러다 울음소리가 나면 서둘러 둘째를 안고 나오며 자연스레 둘을 떨어뜨려 놓았다. 첫째가 둘째에게 긁혔다며 보여준 곳의 크기는 빵 부스러기만큼 작고 티도 나지 않았지만 눈물을 글썽이는 연기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자 아이는 정말 흡족해했다. 그러면서 "나는 죽어도 엄마는 살릴 거야."라는 말을 수시로 했다. 목숨보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저렇게 귀엽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절대 안 돼. 엄마가 100번을 죽더라도 우리 복덩이 살릴 거야.”하고 말했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서로 본인이 죽겠다고 했다.


정해진 취침 시간도 없애 버렸다. 원래 자던 시간보다 한, 두 시간 더 노는 걸 못 본 척했다. 대신 평소 자는 시간보다 얼마 정도 더 지났는지를 알려주기만 했다. 그런데 며칠 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 전날보다 더 일찍 자자고 했는데도 방학 전보다 얼마나 더 놀았는지를 물어보더니 순순히 잠을 잤다.   

  

하루는 자기 전 아이가

 "오늘 기념일이야 엄마. 복덩이랑 복숭이 본다고 힘들었을 엄마 기분 좋게 해주는 기념일이야. 아. 그런데 오늘은 너무 아무것도 못 해줬으니까 내일을 기념일로 하자. 내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마사지만 해줄게."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시지를 다. 힘들다고 말리는 내게 복덩이는

“나는 지금이 진짜 행복해. 가족을 위해서 해주는 지금이 나는 정말 행복.” 하고 말했다.  


아이는 방학 내내 고맙다는 말을 평소보다도 훨씬 많이 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내가 훨씬 더 고마웠다. 아이는 내게 엄마는 정말 좋은 엄마라는 말도 많이 해주었다. 일 년 동안 들은 것보다도 많이 해주었다.  

   

정해진 틀에 맞춰 살아야 했던 내게 그건 충격과도 같은 일이었다. 진작에 좀 그럴걸. 집에서만큼은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를 더 이해해줄걸. 하고 싶다는 걸 위험하지만 않으면 좀 더 허용할걸.


아이와 오롯이 함께 하는 하루는 내게 편안함 그 자체였다. 처음이었다. 그전에는 미처 몰랐던 걸 유치원 마지막 방학이 내게 선물해준 것 같았다.


아이의 행복을 바란다면 아이가 원하는 걸 함께 해주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전보다 더 많이 믿어주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줬을 뿐인데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변화를 선물했다. 생명과 직결될 만큼 위험한 게 아니라면 아이의 요구를 좀 더 들어준 것뿐인데 아이는 훨씬 나를 좋아해 줬다.


이제 아이의 방학이 두렵지 않다. 앞으로의 방학도 아이의 행복을 최우선에 두면 잘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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