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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an 15. 2022

드디어 주말부부에서 발을 뺐다.

할레아칼라 산에 핀 은검초처럼.

미국 하와이주에 있는 마우이섬에할레아칼라 분화구 주위에서만 군생하는 희귀 식물인 은검초가 있다. 이 신비한 은검초는 사람의 손이 닿으면 죽는다고 전해져서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다.

은검초.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신혼여행지에서 본 은검초를 떠올린 건 주말부부 끝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주말부부가 끝나면 신랑의 곁에서 떨어지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덩그러니 놓인 그의 베개를 보며 그의 부재가 실감눈물 렸고, 주말에 잠시 다녀간 그의 흔적들을 보며 늘 그를 그리워다. 우리가 떨어져 있을 때 가장 많이 했던 말도 보고 싶다였다.


그런데 웬걸,  저녁 신랑이 왔는데 나는 자꾸 도망을 갔다. 같은 공간에 있을 때도 그를 보고 있지 않았고, 그의 곁에도 잘 붙어있지 않았다.


나도 이런 내가 낯설었다.


그가 아이를 씻기러 가면 고맙다는 말과 동시에 쏜살같이 도망가기 바빴고, 그가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을 때도 자꾸 혼자 있기 위해 눈치를 봤다. 그러고는 눈치 채지 못 하게 슬쩍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함께 있기 불편한 상사도 아니고, 서먹한 사이도 아닌데 왜 자꾸 그의 곁을 피하는 걸까. 같은 방 안에 있어도 왜 그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만 하는 걸까.


일부로 작정하고 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쓰려고 할 때마다 실패했던 날들이, 멍하니 가만히 있고 싶은데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그 시간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나를 홀로있게 이끌었다.


신랑은 여전히 좋았다. 정말 너무 좋았다. 그냥 의 목소리만 들려도 웃음이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하게 아이를 맡겨 놓을 수 있는 사람과 한 공간에 있다니, 무척이나 안심이 되었다.


보고 싶었던 사람이 아이를 맡겨 놓기에 가장 안전한 사람이 되었지만 더는 낯설게 여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할레아칼라 분화구 근처에서만 볼 수 있는 은검초가 되었다 여기기로 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죽어버리는 그 신비한 은검초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가 집에 오는 그 순간부터 나는 이 집을 지상 낙원이라 여겼던 것 같다. 나는 그 낙원에서 가장 필요로 했던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저 집 안 한 구석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뿐인데 하고 싶었던 걸 참지 않고 해도 된다는 게 이렇게 속이 시원할 줄 몰랐다. 이렇게 좋은 건지 꿈에도 몰랐다. 절로 노래가 나오고 혼자서 아이 둘을 본다고 동동 구르던 두 발은 이제 스텝에 맞춰 춤을 추었다.  


신랑은 다행히 그런 나를 인정해주었다. 일터에서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와서 진이 빠져 보였지만 "쉬어."라고 해주었다.


주말부부가 끝났다고 해도 아직 방 계약이 끝나지 않아 화요일, 목요일은 얻어 놓은 방에서 지내게 해 주었더니 신랑도 그게 고마운 모양이었다. 그도 나처럼 화요일, 목요일 이틀은 은검초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쉬어"라는 그 말이 밥을 먹는 것보다 더 좋았다. 자지 않는데도 가만히 누워있기, 아이가 요구하는 게 들리는데 벌떡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있기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 보았다.


한 여름밤의 단 꿈처럼 신혼여행도 인생도 유한(有限)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인생의 길목마다 그 유한(有限)함만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유한(有閑)한 사람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 나는 잠시만이라도 유한(有閑)한 사람이 돼 볼 것이다.


그러다 신랑의 고단함이 계속 마음에 걸리고, 신랑의 몸이 축나는 것이 눈에 밟히면 그때는 다시 내가 짊어져야 할 것들을 다시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는 아주 신나게 육아를 해야지. 그전보다 더 신명 나게 육아를 해야지.



유한(有限)하다 : 수(數), 양(量), 공간, 시간 따위에 일정한 한도나 한계가 있다.

유한(有閑)하다 : 시간의 여유가 있어 한가하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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