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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an 17. 2022

술과 마사지의 등가교환

나는 첫째 아이를 가진 후부터 9년째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


반면 신랑은 줄곧 술을 즐겼다.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로 마셨는데 그 독한 소주를 두병씩 마다. 많이 마실 때는 일주일에 5번도 마셨다.


그렇게 마시는 게 난 잘 이해가 안 갔다.

'저 쓰고 독한 걸 왜 저렇게 많이 마시는 걸까?'부 '혼자서 저걸 무슨 재미로 먹는 걸까?'라 생각 했다.

 

밖에 나가서 마시질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술 마시고 주정이 없으니 그걸로 만족해야 하나? 술을 마셔도 아이들을 돌보고 자신의 몫을 하니 봐줘야 하나? 다가도 한편으로는 아내가 술 마시는 게 그렇게 싫다는데 왜 저렇게 끊지도 못하고 마시는 거야, 술이 저렇게 좋으면 술 하고 결혼하지 왜 나랑 결혼한 거야, 술 마셔서 벌게진 얼굴 정말 보기 싫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신혼 때는 싸우기 많이 싸웠다.


그러다 그를 이해하게 되는 지점 있었다. 평소에 그가 내게 보여준 모습들이다.


나는 살이 통통하게 는데도 빵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펑퍼짐해진 몸매와는 별개로 습관적으로 빵을 찾았다. 그때마다 기꺼이 빵을 사다 준 건 신랑이었다. 나와 살면서 내가 먹는 걸 가지고 단 한 번도 잔소리를 하지 않다. 


그리고 신랑은 아이들이나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기 싫은 티나 피곤한 티를 내지 않고 몸이 부서져도 해주는 사람이었다. 출퇴근만 해도 왕복 3시간을 길에서 보내면서 주말이면 리가 어디를 가고 싶어 하는지 늘 궁금해했고 우리를 태우고 여기저기 가주었다.


또한 그는 늘 나를 안정시키는 사람이었다. 나는 기복이 심한 편인데 그는 달랐다. 건네는 말이나 돌아오는 말이 모두 향기로운 사람이었다. 그와 하는 대화가 너무나 기다려져서 설렐 정도였다.


그는 무엇보다 마사지가 생활화된 사람이었다. 내가 잠시라도 앉거나 누워서 쉴 때면 늘 그가 따라붙어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러다 손목에 테니스 엘보가 와서 만성이 되었는데도 그는 마사지를 멈추질 않았다. 손을 사용하는 대신 소파에 앉아 다리로 마사지를 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사는 동안 몹시 헷갈렸다. 마시기 전부터 내 비위를 맞추며 애교를 부리고 마시고 나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의 몫을 해내는 사람이어서 자꾸 헷갈렸다. 을 마시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조차 미워해도 되는지를 고민 정도였다.


그가 맘 놓고 하는 건, 좋아서 하는 건 술 마시는 그거 하나뿐인데 내가 그렇게 제약을 하고 싫다고 해도 되는지가 늘 고민되었다.


어떤 아내는 잔소리는커녕 즐겁게 같이 마셔주기도 할 텐데 나는 그 즐거움은커녕 눈치를 주고 잔소리를 하니 같이 살기 피곤하겠다 싶기도 했다.


그러다 소주 두 병을 마신 날 우리는 다시 한번 부딪혔다.


신랑은 한 병만 마시는 걸 잘 지키다가 겨우 몇 번 그걸 넘겨 마셨을 뿐인데 너무 가혹하다 받아들여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술이 진절머리가 났다. 술을 마신다고 내 할 일을 안 한 적이 있냐는 그의 말이 듣기 싫었다. 벌게진 얼굴이 싫었다. 을 마시기 위해 식탁에 오래 앉아있는 게 싫었다. 내가 이제껏 얼마나 참아줬는데라는 억울한 마음 들었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몇 마디 나누는데 하필 첫째가 들어왔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라고 하는 의젓한 말투와는 달리 당황한 표정으로 우리 둘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서는 우리 둘이 한 공간에 있는 걸 허락지 않았다. 달래서 우릴 떼어 놓았다. 나는 죄책감이 었다.


화를 삭이려고 혼자 깐 방에 있는데 신랑과 아이가 노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랑에게 아이가 달려가 부딪히는 악당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악당은 물론 신랑이었다. 신랑은 아이가 부딪칠 때마다 "악"같은 소리를 내며 놀이의 흥을 돋우고 있었다.


그때 '그래.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홀린 듯 발걸음은 방을 나서고 있었다. 그는 두꺼운 매트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잘 됐네. 좀 세게 박아도 아무 느낌 안 들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이와 한편이 되어 "받아라. 얍"하며 그에게 달려가 부딪혔다. 다행히 신랑도 싸우기는 싫었는지 내가 부딪혀도 "악"하고 반응해 주었다. 뭔가 쾌감이 느껴졌다. 나는 아이보다 신이 나 몇 번을 더 달려가 박았다. 나는 그렇게 술 악당을 물리쳤다.


우리는 다시 사이좋은 부부로 돌아왔다. 첫째를 재우고 밖으로 나왔을 때 그가 맥주를 마시고 있기 전까지는.


그때는 정말 화가 나기보다는 기가 찼다. 헛웃음만 나왔다. 물고 뜯고 싸우기 전에 그의 의중을 들어봐야 했다. 그의 진심을 알고 싶었다.


"지금 싸우고 싶어서 먹는 거 맞지?"

"아냐. 절대 아냐. 나오기 전에 숨기려고 했는데 둘째가 칭얼대는 바람에 못 숨겼어. 진짜 미안해."하고 말했다.


사과는 하고 있지만 그 내용이 이미 내 헛웃음을 목격한 후라 좀 능글맞아 보였다.


'웃은 게 죄지.'

내 마음은 이미 국 속에 매생이처럼 한 없이 풀어져 버렸다. 그 틈을 노린 그는 맥주 한 병을 더 마셨지만 기가 찼지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많이 마신  결혼 후 처음이었는데도 오히려 그 밤에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을 함께 보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나는 이례적인 시간에 눈을 떴다. 무려 오후 한 시였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요즘 아이가 이가 나서 기본 새벽 두 시에 잔다지만 한시라니. 것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한시라니.


신랑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너무 미안해서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신랑은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숙취도 없었는지 설거지를 끝내고 것도 모자라 고기를 재어 놓고 된장찌개도 끓여 놨다.


나와 같은 방에서 자던 둘째가 칭얼거렸을 때 신랑이 살며시 문을 열어 둘째만 쏙 데려간 모습까지 눈에 선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는 술을 마시지도 않은 내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인데. 싸워서 남는 게 뭐 있다고.' 후회가 됐다.


자신의 몸이 아파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마사지를 할 수는 없을 텐데 매일 같이 마사지를 해주는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는 좀 더 그를 풀어줘도 되지 않을까, 믿어줘도 되지 않을까. 그날 나는 때로는 봐도 못 본척하는 그런 아내가 되어주자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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