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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Dec 21. 2022

반깁스를 하고 거리를 뛰었다.

지금 당신, 불행한가요?

비 오는 날, 학교에 첫째를 데려다주고 미끄 발목접질렸다. 어지서 무릎으로 짚었더니 바지가 찢어지 피가 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끼던 바지였는데 찢어져 못 입게 됐다는 아까움과 다친 무릎이 얼마나 쓰라리던지 그날은 접질린 발목이 아픈 줄도 몰랐다.


하루가 지나고 일어나려 발을 딛었는데 천둥번개가 치는 것 같은 찌릿한 통증이 찾아왔다. 마른 엽을 밟을 때처럼 정신도 파스락 거리며 부서졌다. 한 걸음을 떼기도 어려웠다. 당장에 두 아이가 떠올랐다. 8살, 3살, 아직 손이 한참 갈 나이인데. 

'엄마인 내가 아프면 안 되는데.'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았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인대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한 번 늘어난 인대는 쉽게 늘어날 수 있는데 내 왼쪽 발목이 꼭 그랬다. 할 수 없이 반깁스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에는 가고 싶은 곳 어디에나 데려다주던 내 다리가 이제는 짐처럼 느껴졌다. 디디지도 못하고 질질 끌고 다녀야 할 수준이었다. 그래도 할 건 해야 했다. 둘째를 어린이집 차에 태우기 위해 다리를 끌다시피 하며 내려왔는데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어린이집에 가자며 안아 들려 한 아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울면서 한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정말 단 몇 초간은 넋을 놓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지금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번도 저런 적이 없던 아이인데 대체 왜 지금 저러는 것인지. 눈앞이 캄캄했다.


잠시 생각할 새도 없이 반깁스를 한 다리가 아프든 말든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거추장한 반깁스를 벗어던지고 싶었다. 아이가 혹시나 도로로 갈지도 몰랐다. 울면서 달리는 아이와, 그 뒤에는 반깁스를 한 엄마가 뛰어가는 모습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서 우리를 바라봤다. 나는 필사적으로 쫓아가 아이를 겨우 안아 들었다. 그런데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저항이 심했다. 그냥 바둥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온몸을 비틀고 발을 구르며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부를 했다. 난 그 순간 낙지가 내게 안겨있는 줄 알았다. 안으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만 내 품을 빠져나갔다.


근데 마침 그때 전날 밤 아이가 자주 깨던 게 떠올랐다.

'몸상태가 심상치 않구나.'

나는 가만히 떼를 쓰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저 자그마한 게 얼마나 가고 싶지 않았으, 엄마의 품이 그리웠으면 그럴까 싶어 아이를 내려놓았다. 아이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을 따라 뛰어갔다.


그 길은 놀이터로 향하는 길이었다. 마침 아이의 등원차량 곁을 지나고 있었다. 찰나였지만 내게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믿기지가 않는 순간이기도 했다. 눈길로는 아이를 따라가면서 등원차량에 가서 아주 짧게 사정을 설명하고 아이를 따라 뛰었다.


"아가. 그래. 안 가도 돼. 우리 놀이터 가자."라고 내가 말하자마자 아이는 뛰는 걸 멈췄다. 우리는 사이좋게 손을 잡고 놀이터로 갔다. 뭔가를 줍고, 주운 걸로 흙에 그림을 그리고 노는 걸 좋아하는 둘째는 그날도 뭘 자꾸 주웠다. 놀이터에 이렇게 탈 기구들이 많은데 왜 화단이 있는 변두리에서 이 놀이를 하는지 궁금했지만 어차피 나는 모든 걸 내려놓은 참이었다. 아이가 하고 있는 걸 가만히 함께 해주었다. 아이에게도 평온이 찾아온 건지 집으로 가자고 할 때 떼를 쓰지 않고 쉽게 따라나서주었다. 아침에 있었던 일이 기억도 안 나는 건지 그게 그냥 고마웠다.


아니나 다를까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몸이 뜨끈뜨끈했다. 내 다리가 아픈 건 참을 수 있는데 말도 잘하지 못하는 아이가 아프니 애가 탔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 절로 기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 다리로 내가 아이를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한숨이 났다. 직장도 문제였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미리 말할 틈도 없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다행히 집과 매장이 가까워서 내가 아이와 아침에 그런 실랑이를 벌이는 걸 직장에서도 목격했. 오늘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먼저 연락이 왔다. 갑작스럽게 아이로 인해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건 내게도 가슴이 철렁하는 일이지만 그런 배려가 날 다시 일으켰다.


나는 다리를 다쳤고, 아이 갑작스럽게 아팠고, 그 덕에 출근도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불행하 않았다. 아이가 엄마 필요로 할 때마다 곁에 있어주고 싶었지만 일을 하다 보면 울며 겨자 먹기로 보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마음으로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곁에서 아이의 상태를 보지 못하는 것도 곤욕스러웠다. 그래서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기로 했다. 내 다리는 아는 병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나을 수밖에 없고, 아이도 병원에 갔다 하루 쉬면서 약을 먹으면 좋아질 것이다.


오늘 아이 덕분에 내 평생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반깁스를 하고 거리를 뛰어다녔다. 하지만 그 아이와 함께 보내며 웃고 행복했던 시간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몰랑이 같은 아이가 내게 다가와 볼을 비비면 세상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이마를 맞대고 흔들 때면 내가 도로 아기가 되어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것처럼 포근하다. "엄마"라는 말이 가장 좋은 말이 되었다. 나는 이 아이를 보고 있으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마저 붙는다.  아이를 낳고부터는 기적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매일이 기적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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