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크리스마스가 온다.
아이를 즐겁게 하는 일에 진심인 편이다.
여덟 살, 세 살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아이를 즐겁게 하는 일에 진심인 편이다. 최근에는 아이가 원할 때까지 종이접기를 했다. 접다 보니 색종이 세 장으로 접을 수 있는 팽이까지 섭렵했다. 플라스틱 팽이보다도 잘 돌아가는 게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걸 종류별로 접느라 내 허리가 말아 접힌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사실 이건 내게 감사한 일이었다. 티브이와 유튜브, 휴대폰에 재미를 들인 아이가 처음에는 종이접기를 거들떠도 보지 않다가 쉬운 것부터 옆에서 하나, 둘 꾸준히 접는 걸 보여줬더니 드디어 관심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애걸복걸을 해야 할 정도로 종이 접기에 진심이 됐다. 그러면서 또다시 느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하더라도 아이들은 뭐든지 쉽게 받아들인다는 걸 말이다. 그 시간을 기억하고 기다려주는 것도 역시 엄마의 몫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즈음에 떠올릴 만한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작년에는 일어나도 허리가 다시 펴지지 않을 만큼 선물 포장을 했다. 외국 영화에서처럼 한가득 쌓인 선물 상자를 한 번쯤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무 개쯤 되었던가. 그보다 한 두 개 많았던가. 내 평생에 한 사람을 위해 그렇게 많은 선물 포장을 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다 생각했다. 학교에 입학하는 해와 맞물려서 선물을 조금 더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가방부터 신발주머니까지 총동원해 선물 개수를 채웠다. 필통 같은 학용품도 있었다. 선물 상자는 통유리에 붙인 앵구 전구 트리 밑에 두었는데 앵구 전구의 반짝임 때문이었는지, 전날 아이들을 겨우 재워놓고 신랑과 함께 선물을 싸며 신랑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던 그 시간 때문이었는지 빛이 나고 있었다.
아이는 그곳에 놓인 선물 꾸러미들을 보고 해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날렵하고 난폭하게 선물 포장지를 뜯었다. 마음에 드는 걸 보고는 조금 더 화사하게 웃었고, 마음에 덜 드는 걸 뜯었을 때는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웃음이 가시지는 않았다. 두 살이라 아무것도 모르던 둘째는 그 곁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첫째에게 책을 읽어주는 걸 듣고 자신을 위해 읽어주는 줄 알고 누워있던 동생이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는 일화도 있으니까 좋아하고 있었겠지 짐작할 뿐이다.
그랬던 둘째도 이제 할 말 할 줄 아는 세 살이 되었다. 이제는 하나가 아닌 둘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부담스럽기보다는 둘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그 마음이 더욱 크고 즐거웠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며 돈 들 일이 얼마나 많은데 때때마다 비싼 이벤트를 해줬다가는 평소에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줄어들게 분명했다. 비싸고 화려한 이벤트는 해줄 수 없다. 되도록 싸고 화려한 걸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주시는 부모님까지 만족할 수 있는 이벤트였으면 했다. 아이가 커가는 만큼 낳아주신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시간이 흐르지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걸 체감하고 있는 요즘 부모님을 보며 순수하신 두 분을 기쁘게 해 드려야겠다 다짐했다. 나는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통유리문을 활용하기로 하고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다 화려하긴 하지만 풍선을 많이 불지 않아도 되는 크리스마스 파티 용품을 찾았다. 금액대도 적당했다. 2만 원 중반을 넘기지 않았다. 금액대가 적당한 게 아니라 가성비가 아주 괜찮았다. 커다란 산타도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알파벳 풍선도, 또 그걸 풍성하게 꾸며줄 별 풍선까지 다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속으로 아우성을 질렀다.
이벤트 용품이 도착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하는 준비였다. 가족들이 오기 전에 내가 다 만들어 놓을 심산이었다. 몇 개 되지 않는 풍선을 보고 삼십 분이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 만만했다. 그런데 손으로 비비자 풍선이 얇게 나눠지더니 3개, 5개, 7개 꼭 세포증식을 하는 것 같았다. 또 낱개 풍선마다 들어있던 빨대가 문제였다. 공기를 주입하는 기구를 곁에 챙겨두고도 빨대가 들어있길래 그걸 사용해야지만 하는 줄 알았다. 빨대를 꽂고 줄기차게 불어댔다. 부끄럽지만 나중에는 하도 힘을 주어 방귀까지 같이 나왔다. 그 순간 나 혼자 이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음에 내심 감사했다.
이제 될 대로 대라는 심정으로 빨대를 치우고 공기를 주입하는 기구를 사용해 바람을 넣었는데 완전 신세계였다. 몇 번 펌프질을 하지도 않았는데 금방 풍선이 빵빵해졌다. 한동안 빨대는 어떤 용도로든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 가까워지자 마음이 몹시 급해졌다. 먼저 붙여놓은 은박 커튼 위로 알파벳 풍선을 붙여야 하는데 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파벳 풍선들이 쉽게 톡톡 떨어졌다. 나중에는 노란색의 널따란 택배 박스용 테이프까지 사용해서 덕지덕지 붙였다. 앞에서 봤을 때 보이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드디어 아이들이 오는 시간이 되었고 첫째와 둘째의 반응은 천지 차이였다.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기라도 한 것처럼 "우와", "와"를 연발하는 둘째는 내 기대 속 반응 그 자체였다. 나는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 첫째를 쳐다보았다. 첫째도 물론 눈이 휘둥그레지고 좋아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그런데 대뜸 "엄마. 이게 엄마가 말 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이게 그 비밀로 하는 그 크리스마스 선물인 거지?"하고 약간 비아냥대는 것이 아닌가. 자신은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다는 말도 흘리듯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감정이 팍 상해서 막말을 해버렸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아이를 위해 한 시간을 넘게 꾸며놓고는 말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와 이쁘다 해주면 안 돼? 너는 진짜 애가 왜 그래. 복덩이가 이렇게 나쁘게 하니까 산타할아버지도 선물 안 주실 거야. 그래. 이게 니 크리스마스 선물 맞다. 맞아!"하고 말했다.
아이는 순간 내가 마음이 상한 걸 눈치챘는지 날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아니야. 엄마. 미안해. 진짜 이뻐. 이쁘네."하고 말이다.
나는 그 순간 너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아이가 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또다시 나 혼자 들떠서 준비해놓고 그에 맞는 호응을 해주지 않는다고 아직 여덟 살밖에 되지 않는 아이에게 막말을 하다니. 진짜 내 입을 수십 번은 때리고 싶었다. 나는 금세 반성을 하고 아이에게 이건 그냥 이벤트일 뿐이라고 크리스마스 선물은 다른 게 준비되어 있으니 걱정 말라고 말해주었다. 기뻐해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좋은 엄마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후회를 자주 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단 생각을 했다. 첫째의 반응은 내게 돌발 상황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에 직면했을 때 나는 아이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다. 그저 내 마음이 무너진 것만 살피느라 아이에게 종종 상처를 줬다. 나는 그런 내가 한심하고 미웠지만 쉽게 고쳐지는 일은 아니었다.
사실 이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건 둘째의 돌발행동이었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났지만 직전에 했던 이벤트에서도 은박 커튼을 주렁주렁 달아놓았었는데 둘째가 그걸 보자마자 다 뜯었다. 얼마나 힘없이 쭉쭉 잘 뜯기던지. 한참을 멍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날은 그 은박을 가지고 셋이서 온 방안을 어지럽히고 놀았다. 던지고 들고 뛰어다니고 하면서. 그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12월 25일에 가장 빛이 날 이벤트를 12월 초에 다 해놓았으니 그때까지 이 은박 커튼과 풍선들이 무사하길 바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만큼 우리 둘째도 훌쩍 자랐나 보다. 은박 커튼에 손을 갖다 대고 흩트려놓을 뿐 잡아서 뜯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비슷한 행동을 하기 전에 그러면 안 된다고 말을 해주긴 했지만 그 전에는 그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엄청난 발전인 거다. 이런 순간순간에 아이가 부쩍 컸구나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지금부터 크리스마스날까지 우리 가족은 그 누구라도 현관문을 열며 내가 만들어놓은 메리 크리스마스 파티 장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불속에서 빠져나오느라고, 저녁을 준비하느라고 잠시 늦게 나와도 그 장식이 반짝거리며 먼저 맞아줄 것이다. 그러면 찬 바람이 스미던 몸과 마음이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도 되듯 금세 따뜻해질 것이다. 이건 그 누구도 아닌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한 시간 넘게 공을 들여 내가 건 마법이다.
그리고 12월 25일. 나는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로 마법을 한 번 더 부릴 것이다. 그 포장이 뜯기면 우리 집은 작은 놀이터나 모래사장으로 바뀔 것이다. 작년처럼 선물 상자가 수북하게 쌓여있지는 않을 테지만 아이들은 즐겁게 웃어주고 놀아줄 것이다. 몇 개 안 되는 모래 틀 속에서 같은 모양의 모래 모양들이 줄지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커다란 우리만의 진지가 세월 질 것이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모래 놀이에 흠뻑 빠져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 모래성은 그 어느 모래성보다 견고하게 아이들의 기억에 박힐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더라도 은박 커튼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듯 모래성을 함께 만들고 놀았던 기억이 틈틈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기쁠 때든 슬플 때든, 가족과 그렇게 따뜻한 시간을 보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이런 소중한 추억을 아이들에게 많이 많이 심어주고 싶다. 매년 내가 주는 진짜 선물은 어쩌면 아이들이 평생 갖고 살아갈 크리스마스에 대한 좋은 기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