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와 그 사람은 이제 한 몸이 되었다. 스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엄청난 인연이라는데 그감기와 그 사람은 대체 얼마나 큰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난 것일까. 감기가 한 달이나 떨어지지 않아 고생한 사람이 감기가 실은 그 사람이 안쓰러워서 함께 있어준 걸 알면 좀 덜 힘들었을까.
한 달간 감기에 걸린 사람이 말했다.
"이 놈의 감기 진짜 질기기도 하지. 콧물이 좀 낫다 싶음 목이 칼칼하고 목이 나았다 싶음 다시 코가 헐고. 진짜 힘이 들어 죽겠어. 너무 진이 빠져."
화장실 벽에 금이라도 간 건지 바깥의 찬바람이 숭숭 뼈까지 박혀온다. '그래도 벗어야지. 그래야 하루가 시작되지.' 벗기 싫은 옷을 억지로 벗이 구석에 박아 놓는다. 아파트는 틀자마자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데 따뜻한 물 쪽으로 수도를 돌려놓았는데도 찬물이 한참 나오다 바뀌어 손등이 텄다. 샤워기에 물을 틀어놓고 혹시나 튈까 봐 팔을 멀리 뻗어 피해있는다. 씻고 나와 옷을 입기 전까지는 숨을 들이켜고 쉬면 안 된다. 한 번 추위가 다녀가면 아랫니 윗니가 틀니처럼 딱딱 소리를 낸다. 그리고 사시나무보다 더 몸이 심하게 떨린다. '그래. 숨만 참으면 된다.'
그걸 보고 감기가 말했다.
'진짜 웃겨. 그렇게 추운 것도 못 참는 사람이면서 누가 누굴 지키고 위해. 자기는 매일 저렇게 씻으면서 제 자식 씻길 때는 김이 올라올 정도로 화장실을 데워놓고. 진짜 바보야 뭐야. 그럴 거면 너도 춥다고 누구라도 붙잡고 말 좀 해. 뭐 다 네가 하는 건 당연하고 네 자식은 안돼. 그러니까 내가 못 떠나는 거야. 아무도 모를 거 아냐. 네가 혼자 애쓰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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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주 엉뚱한 상상을 합니다. 감기는 죽을병은 아니지만 걸리면 굉장히 불편한 건 사실입니다. 유례없이 한 달째 감기를 앓으며 엉뚱한 상상을 했습니다. 감기와 사람이 서로의 언어를 알았다면 조금 덜 외로웠을까요? 상상을 하고 나니 이상하리만큼 그 상황이 훨씬 덜 힘들게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