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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Feb 11. 2021

당신의 직무유기가 다행인 이유

피곤했을 당신에게 주는 선물

새벽 2시 반. 새벽 1시가 되어서야 겨우 업어 재운 아이가 숨이 넘어갈 듯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고 자던 엄마가 방에서 나왔다.

시골에 있는 엄마 집에서 자던 날이었다.

같이 아이를 어르고 달래다 엄마가 첫째를 보며 참 신기하다며 이렇게 큰소리가 나는데도 잘 잔다며 신통방통하다고 했다.

(정말 첫째는 이 부분에 있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모자란 아이였다. 한 번 잠들면 절대 깨는 법이 없어 재우기만 하면 꽤 너른 자유가 주어졌다. 불을 켜고, TV를 켜고, 대화를 해도 깨지 않는 순한 아이 었다)


나는 신랑을 가리키며 술 먹고 자면 신랑도 똑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난리에도 곤히 자고 있는 신랑에겐 저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신랑은 저러면 직무유기지"

순한 첫째와 다른 부류라 단단히 선을 그었다.


신랑은 술을 마시고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에 빠졌다. 바로 옆에자는 첫째가 코 골지 말아라고 아무리 흔들고 깨워도, 오줌이 마려워 깨서 꺼이꺼이 울고 있어도, 방에서 둘째가 자지러지게 울어도 당신은 늘 잠에 빠져 있었다. 내가 몸살에 걸려 근육통에 시달리느라 절로 신음소리가 나던 날도 당신은 코를 골며 참 맛있게도 잤다.


그렇다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만큼 모진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술을 먹고 잠든 것만 아니면 우리 가족의 손과 발이 되어 온갖 허드렛일을 찾아 하는 사람이었다. 아이가 둘이다 보니 어디를 가려면 짐이 한두 개가 아닌데 늘 말없이 몇 번을 왔다 갔다 해도 혼자서 옮기는 사람이었다.


신랑이 퇴근한 후에는 우리 가족 누구에게라도 필요한 게 있으면 늘 신랑이 사러 갔다. 처음에는 내가 갈게라고 만류했지만 위험하다, 힘들다 같은 이유로 신랑이 자처해서 가다 보니 그게 너무 당연해진 거 같아 이제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신랑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그 일을 매일 해나갔다.


언젠가 신랑이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도 너무 고단해서 정말 꼼짝도 하기 싫을 날이 있다고. 그래도 본인이 안 하면 내가 힘드니까 그런 날도 한다고.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오랫동안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힘든 일이 있음 바로바로 신랑에게 다 털어놓거나 도움을 청하는데 신랑은 참는데 이력이 난 사람이라 다 참아버리다 내게 이제야 그것도 딱 한 번 티를 낸 거라는 걸 아니까 마음이 아팠다.


신랑이 깨어있을 때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하니 나는 신랑이 잠들어 있을 때 웬만하면 신랑을 깨우고 싶지가 않았다. 신생아 원더윅스가 와서 새벽 4시까지 이유도 모른 채 우는 아이를 안아 들고 있을 때도 나는 신랑을 깨우지 않았다.

원더윅스가 몇 날 며칠 이어지면서 손목에는 손목 보호대가 채워졌고 잠을 못 자 좀비가 되어가도 이를 악물고 신랑의 잠을 지켜냈다. 아이의 잠투정과 씨름을 하다 더는 아이를 안을 힘도 없을 때면 어쩔 수 없이 신랑을 깨우기도 했다. 그럴 때면 신랑은 내게 이유도 묻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적어도 신랑이 자는 동안은 그 어떤 짊어짐의 무게도 없이 자유로웠으면 서 정말 웬만서는 신랑을 깨우지 않았다.


신랑은 눈을 뜨고 있는 동안 내 곁에 와서 내 발과 어깨를 주물러줬다. 고생했지, 힘들지 하며 계속 내 컨디션을 챙겼다.


신랑이 잠들기 전까지 내게 보여준 것들도 진심이었고, 신랑이 잠들고 내가 보여준 것들도 진심이었다. 우리의 진심은 낮과 밤이 맞물려 하루가 돌아가듯이 로에게 맞물려 돌아갔다.


육아를 하면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상대를 더 배려한다는 걸 깨달을 때가 많다. 아이가 울면 내가 먼저 달려가 안아 올리는 행동. 첫째가 놀아달라고 할 때 좀 쉬어라는 눈 맞춤을 하며 아빠와 놀자. 또는 엄마와 놀자라며 휴식시간을 주는 행동. 설거지거리가 가득 쌓였을 때 슬며시 나와 고무장갑을 끼고 마지막 남은 그릇까지 씻어 놓을 때.


로를 위하는 마음이 커갈수록 서로를 향한 믿음도 커져갔다. 그리고 언제라도 상대를 위해 희생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육아를 하면서 상대가 더 안쓰럽게 생각되고, 더 가여웠으며 시간만 조금 나 좀 쉬었으면 생각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에서 부모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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