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데려간 날, 어머님 가게가 문을 닫았다.
나는 그토록 편안했지만 어머님의 사정은 전혀 달랐단 걸.
둘째가 감기에 걸려 일주일을 아프고 난 후 홀린 듯 짐을 쌌다. 일주일 만에 처음 하는 외출이었다. 나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그런지 내가 아프거나 아이가 아프면 어른들 품이 그렇게 그리웠다. 아이가 아플 때 나만큼 마음을 졸이며 함께 아이를 돌보던 친정 엄마는 아이가 나을 때쯤 나와 같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가 낫고 나자 아픈 몸을 이끌고 연수원으로 떠났다.
그래서 우리 외출의 종착지는 어머님이 계시는 시댁이었다. 이제 아이를 살려놓았으니 내가 쉴 타이밍이겠지.
그전에 미리 신랑을 통해 잡채가 먹고 싶단 말을 흘렸다. 물론 우리 신랑이 먹고 싶은 걸로. 나는 잡채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좋아했다. 그런 잡채가 있는 어머님집이라니. 차 타고 한 시간 거리였지만 걸어서라도 갈 수 있을 만큼 불끈 힘이 솟았다. 어머님이 잘 드시던 바지락 탕을 사들고, 저녁에 구워 먹을 오리 훈제도 두 봉 사서 어머님댁으로 향했다. 지인이 제주도에서 보내온 양배추도 몇 개 담았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시댁은 평온했다. 그리고 편안했다. 이번 한 주가 고되었다는 신랑도 엄마 앞에서는 긴장이 풀렸는지 밥을 먹고 방바닥과 일체가 됐다. 나는 좋아하는 잡채를 실컷 먹고 힘이 남아돌았던지라 신랑에게도 살갑게 대할 수 있었다. 얼른 들어가 좀 자라고 신랑의 등을 떠밀기까지 했다.
이번에 아이가 아프며 며칠 째 잠을 못 자는 바람에 예민해져 그에게 화살이 돌아간 날이 있었다. 나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내 의지가 정신력을 이기지 못했던 때였다. 그때가 떠올라 더 미안했고 챙겨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 눈앞에 어머님도 보고 계신데 잘 된 노릇이었다. 피곤한 신랑을 상냥하게 방으로 들여보내는 며느리라니. 내가 시어머님이라도 이뻐 보일 것 같았다.
어머님은 함께 식사를 하시고는 1층에 있는 미용실로 내려가셨다. 첫째 아이도 태블릿을 맘껏 할 수 있는 할머니 곁으로 쪼르륵 따라 내려갔다.
그날 한 두 명씩 손님이 끊기지 않고 있어 어머님은 저녁이 될 때까지 위에 올라오시질 못했다. 어머님은 미용실 옆 공간에 살림집을 만들어 거기서 생활하고 계셨고, 2층은 아예 쓰시지를 않았기 때문에 2층은 우리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식들이 오면 그곳을 모두 사용했기 때문이다. 2층은 방 두 칸에 넓은 거실이 있고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얼마 전에 집을 사고 인테리어를 새로 해서 신혼집이 따로 없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벌러덩 누워있기도 하고, 애벌레처럼 웨이브를 타며 물건을 가지러 가기도 했다. 게으름 그 자체로 있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독립된 우리 만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할머니를 따라간 첫째가 없으니 조금 더 수월했다. 안 그래도 떨어진 체력을 끌어올려야 했는데 그러기에 그만한 장소가 있을까. 바깥나들이를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만큼 꽤 멀고, 집에 들어와 있으니 한없이 아늑하고 편안하고 안전하고.
나는 그토록 편안했지만 어머님의 사정은 전혀 달랐단 걸 저녁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일을 마치고 올라온 어머님이 그제야 얘기를 해주셨기 때문이다. 내 아이라서 알던 부분, 내 아이지만 낯선 부분들을 듣고 우리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라서 이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어머님도 손자이기 때문에 이 아이의 행동을 온전히 받아들였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행동을 참 많이도 해놨으니까. 나는 정말 얌전히 태블릿만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 아이의 손을 끄잡고 올라오지 않으신 어머님이 대단해 보였다.
아이는 손님이 가고 나서 마트에 가기로 해놓고는 마트에 가자는 말을 마트에 가기 전까지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야 마트를 좋아하니 이 정도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에는 더한 것들이 무지막지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잠근 채로 닫아버려 문이 잠기는 바람에 옆집 아저씨가 와서 문을 따주셨다. 그리고 미용실과 1층 살림집의 문이 닫힌 상태로 조금 조용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저지래를 해놓았다고 했다. 냉장고에 있던 당근을 끄집어내 위험하게 썰어놓기도 했고, 서랍을 뒤져 방을 어지럽혀 놓기도 했다.
미용실에 있을 때도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으셨겠구나 싶은 말들도 들었다. 아이가 문 밖에다 외출 중입니다 팻말을 걸어놓고, 또 그것도 모자라서 문을 잠그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게 몇 번이 반복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장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만 그랬다 해도 가슴이 철렁한데 어머님께서도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아무리 당겨도 열리지 않는 문을 잡고 있었을 손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우리는 사실 봄 방학을 맞은 첫째를 좀 맡겨놓고 가볼까 생각했었는데 아이가 벌인 일들을 들으니 그 소리가 목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랑이 말을 꺼냈더니 어머님께서 차마 우리 아이가 오늘 이래서 안 된다고는 못하시고 엄마랑 떨어져서 있을라 하겠나라고 하셨다. 나는 전혀 다른 말을 들었음에도 어머님께서 오늘 일로 몹시 당황하셨고 자신감도 잃으셨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젊은 내가 데리고 있어도 그런데 일을 하며 손주의 짓궂은 행동까지 감당하시려면 넋이 나가실 것 같았다. 그저 말없이 아이를 데려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 신랑은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다음 주 월차날 저녁 자신이 데려다줘 며칠 있게 둔다는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다. 아마 하루만 있어도 어머님께서 두 손 두 발 다 드시며 제발 데려가라 하시지 않을까.
내가 응석을 부리러 갔는데 우리 아이가 선수를 치는 바람에 나는 조용히 저녁 준비를 했다. 어머님은 아팠던 둘째가 핼쑥해졌다고 걱정하시며 그동안 못 본 둘째를 살펴 주셨다. 밑에서 그렇게 천방지축으로 굴어도 어머님께서 화 한 번 안 내신 덕에 우리 첫째는 할머니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둘째 아이는 그동안 못 잔 잠을 몰아 자기라도 하는지 몇 시간을 깨지 않고 잤는데 이대로면 밤에 잠을 자지 않겠다 싶어 다시 집으로 갈 채비를 했다. 그 사이 어머님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드라마도 함께 봤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따뜻하던지. 반나절 하고 조금 더 어머님 집에 머물렀고, 그중 어머님을 직접 뵌 시간은 또 얼마 안 됐지만 제대로 힐링을 하고 가는 기분이었다.
어머님이 담근 손맛 가득한 배추김치도 너무 시원하며 아삭했고 함께 구워 먹는 오리고기도 레스토랑 못지않게 담백했다. 인자하게 웃으시며 손주들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또 얼마나 다정하시던지. 꿀이 뚝뚝 떨어졌다. 안 그래도 둘째가 오래 아픈 바람에 첫째를 제대로 못 돌봐줘 미안한 순간이 많았는데 내가 줄 수 없었던 사랑을 아이가 잔뜩 받아가는 것 같아 맘이 놓였다. 꿈나라로 간 둘째도 할머니가 아픈 자신을 이토록 애처롭게 바라보고 아낀다는 걸 알면 더욱 힘내서 건강하게 생활하겠지.
할머니의 사랑은 끝이 없다. 짓궂은 장난을 쳐도 개구쟁이 짓을 해도 그저 허허 웃으며 넘기실 수 있을 만큼 마음도 너르시다.
비록 지금은 아이가 문을 잠그고 외출 중입니다 팻말까지 걸어놓았지만 그 아이가 크면 또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할머니가 더는 기운이 없어 정말로 문을 닫아야 할 때 할머니보다 더 장정이 돼서 그 여리고 고운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이곳저곳 여행을 시켜드리지 않을까. 지금 이대로라면 어른을 공경하는 아이로 잘 자랄 거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꼭 그렇게 자라리라 믿고 있으니까. 할머니의 고운 손이 꼭 잡은 아이의 손 안에서 꽃처럼 피는 날 내 얼굴에도 함박웃음이 피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