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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r 08. 2023

어머님, 저희 아이 데려가게 해 주세요.

발로 엉덩이를 차서라도요.

방학 때가 되면 아홉 살 아이와 함께하는 출근으로 지쳐갔다. 사람들 앞에서 내 말을 듣기는커녕 놀림버튼이 눌린 것처럼 놀려댔고, 집에서도 하지 않 짓궂은 장난들 내 속을 태웠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겨우 숨통이 트였는데 뒤돌아서니 봄방학이 목전이었다. 아직 제대로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같은 상황에 놓인 것이다.     


보다 못한 신랑이 아이를 어머님집에 데려다 놓겠다고 했다. 이제 아홉 살이 되었기에 친할머니 집에서도 잘 있을 거라며 말이다. 그는 어릴 때 그런 추억 하나씩은 누구나 다 있다는 말로 날 위로했다. 내가 아이를 떼어놓고 싶어서 보내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껏 아이가 아홉 살이 될 때까지 어머님께 맡긴 적이 한 번도 없을 만큼 나는 아이를 품 안에서 . 아무리 힘들어도 내 품 안에서 감내했다. 그런 내게도 변화의 바람 불어닥 모양이다.  


홀가분할 줄 알았다. 오랜만에 아이 없이 일을 하면 모래주머니를 떼낸 것처럼 가벼울 줄 알았다. 아이가 가는 당일이 되었다. 이제 갈 짐은 다 싸졌다. 이 상황은 어쩌면 내가 바라던 일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내 진심은 어쩌면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이의 옷으로만 가득 찬 가방을 보고 있자니 그때부터 덜컥 실감이 났다. 아이와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전에 없던 안감이 날 집어삼켰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성의 끈이 뚝 끊어져 아이의 채비를 늦출 궁리만 하게 됐다. 마침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왔는데 주말도 아닌데 아빠가 있고 짐이 싸져 있으니 놀러를 가자고 조르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밖은 강풍이 불어 집 안에까지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둘째는 콧물을 흘리고 있었기에 절대 나가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이렇게 가자고 하는데 드라이브라도 시켜주자며 생떼를 부렸다. 조금 있음 퇴근 시간이 겹쳐 더는 지체할 수 없는데, 뻔히 알면서도 속 시원하게 아이를 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잔뜩 마음이 흐린 이별을 했다.     


그 주는 태권도 학원에서 심사가 있는 날이었는데, 집에 있으면서 태권도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냐고 했을 때 난 아이의 마음은 헤아릴 생각도 않고 안 된다고 못을 박았었다. 태권도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할머니집에 가기를 거부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이가 가는 순간부터 런 것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아이는  내 집이 제일 편할 텐데 내가 아이를 돌보는 게 힘들어서 보낸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내가 정말 잘해주겠다고, 태권도 학원도 가지 말고 엄마랑 이번 방학 정말 알차게 보내보자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 말을 못 한 게 마음에 걸리고 미안했다.   

  

분리불안은 아이가 아닌 내게 주어진 병명 같았다. 몹시 초조하고 불안하고 슬프기까지 했으니까. 신랑의 회사와 가까운 곳에 어머님댁이 있어서 그날 신랑은 아이와 자고 출근을 했다. 우리 집에는 둘째와 내가 있었다. 하나가 없을 뿐인데 그만큼보다 훨씬 더 조용했다.     


아이는 내게 수시로 영상 통화를 했다. 보고 싶다는 얘기와 사랑한다는 말 꼭 빠지지 않고 내게 해주었다. 첫째 날 저녁과 둘째 날 밤에는 내가 보고 싶어 울었다는 얘기도 들려주었다. 이제 아이가 갔다는 사실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그 여유를 오롯이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수요일쯤 일이 터졌다. 상사병이 난 것이다. 영상통화를 하며 화면 너머의 아이를 보기만 해도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눈을 감아도 복덩이, 눈을 떠도 복덩이가 떠올랐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아홉 살 평생, 우리와 떨어져 있어보지 않았던 복덩이가 월요일 갔으면서 주말까지 집에 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분명 내가 보고 싶어 울었다면서,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내가 있는 집으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거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엄마가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어렸을 적 다른 집에 가면 너무 재밌어서 집에 오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이다. 집에 오는 길에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었던 적도 있다고 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니 종종거리던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 엄마에 그 아들이었다.   

  

어느 날은 신랑이 내게 말했다. 자신도 초등학교 때 친척집에 가면 그곳이 너무 좋아 몇 주씩 있다 온 적도 있다고. 그런데 아이들은 특히 남자아이들은 그곳이 너무 좋으면 그곳 이야기만 하지 엄마에게 보고 싶다던지, 사랑한다던지 표현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게 그런 표현을 한 것만으로도 아이가 날 얼마나 아끼고 좋아하는지를 알려주려고 한 이야기 같았다. 신랑의 말은 충분히 위안이 되었고 안심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복덩이가 조금 괘씸했다. 당장은 돌아올 생각조차 없었으니까.   

  

그동안 아이는 그곳에서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소시지반찬과 밥을 먹었고, 좋아하는 오리훈제까지 떡하니 밥상에 차려졌다. 매일같이 할머니의 손을 잡고 마트에 가서 포켓몬빵을 샀으며, 새벽 두 시까지 잠을 자지 않으며 놀면서도 자기 전 양치마저 거부했다. 아주 자기 세상이었다. 중간중간 신랑과 내게 데이터를 보내달라 연락이 왔다. 갈 때부터 휴대폰을 실컷 하기 위해 간다고 하긴 했지만 내 생각보다도 정말 실컷 하는 것 같았다. 어떤 날은 식탁 가득 탕수육에 짜장면 같은 중국음식이 깔려있었다. 어머님을 꾀어 아이가 시킨 것이다.  

    

이쯤 되면 나도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하지만 실상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찔끔찔끔 울며 아이를 그리워했다. 떨어진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우리 복덩이 발은 얼마나 더 커있을까. 손은 또 얼마나 도톰해졌을까 같은 우스운 생각을 했다.  

   

수요일이 되자 더 기다리지 못하고 신랑에게 퇴근을 하면서 아이를 데려와 달라고 했다. 신랑은 언제나 내편이었다. 어머님께 데려갔음 한다는 말씀을 드렸. 그런데 어머님이 더 둬도 괜찮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어머님도 일을 하시기에 내가 겪었던 고충을 다 겪으셨을 테니 데려간다 하면 얼마든지 선뜻 아이를 데려가라고 하실 줄 알았데 마음이 조급해졌다. 신랑이 내 상황을 대신 설명했다. 상사병에 걸렸다고.  

   

어머님은 단톡방에 그 말을 보자마자 아이를 데려가라고 하셨다. 언제나 참 따뜻하시고 좋으신 분이다. 그런데 복병은 따로 있었다. 복덩이가 집에 가지 않겠다고 식음을 전폐하며 울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아이를 이렇게 애지중지하며 키워놔도 다 소용없구나.'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마음을 비우기 시작한 게. 이제 더는 아이를 그리워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영상통화 속 아이의 모습만 봐도 당장이라도 안고 싶어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전화를 훨씬 덜 했다. 그래도 이제 더는 웅크리고 슬퍼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이는 그곳에서 저렇게 잘 노는데 왜 나 혼자 전전긍긍해서 이 난리를 피우고 있는지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모든 건 내 마음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나는 목요일이 되어서야 오롯이 조용한 공간에서 나는 가뭄의 콩 같은 자유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첫째가 가고 나서 둘째가 우는 일이 없었다. 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소리를 지르며 뛰어놀기도 했지만 또 그만큼 싸우기도 했는데 그런 일이 게 눈 감추듯 사라진 것이다. 둘째는 분명 기가 살아 있었다. 이 집에 있는 어떤 것도 첫째의 허락을 맡지 않고 써도 됐으니까.  

   

평소에는 둘을 함께 돌봐야 하다 보니 둘째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바로바로 해줄 수 없을 때가 많았는데 이번주엔 마음껏 해줄 수 있었다. 공룡을 가지고 놀아도 책을 읽어도 머라 할 사람이 없었다. 그것도 나와 둘째 복숭이에게는 처음이었다.     


이제 다음 주면 학교를 가야 해서 첫째를 더는 할머니집에 둘 수가 없었다. 또 복덩이가 자꾸 잠을 안 자는 통에 어머님께서 몸살에 걸리셨다고 했다. 금요일 저녁 퇴근길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를 데려와야만 했다.     


아마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신랑은 평생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울며 불며 난리를 친 것 말고도 "제발, 제발" 할머니집에 다시 데려가 달라며 빌기까지 하고 그것마저 안 되니 자신의 머리를 뜯고 얼굴을 할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 조그만 아이도 이성을 잃으면 한 없이 이상해질 수 있구나 싶었다. 그만큼 할머니와의 시간이 소중했던 탓이겠지. 그 차에 함께 타고 있을 신랑이 불쌍했고, 그런 상황에서 운전을 하고 있으니 안전이 걱정됐지만 나까지 이성을 잃고 날뛸 수는 없었다.     


돌아온 아이는 난리를 피우느라 진이 다 빠져있다. 또 기가 죽어 있었다. 편으로는 다행히도 날 몹시 반가워했다. 나는 아이의 이상 행동을 본 신랑을 진정시키고 다독거리며 동시에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로 마음먹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또다시 잔소리를 듣고 혼이 나야 한다면 이곳은 아이가 안정감을 느낄 수 없는 곳이 될 것만 같아서. 할머니와 있는 그곳은 잔소리도 없고 혼날 일도 없었을 텐데. 처음으로 그런 자유로움만 가득한 곳에 살아봤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를 이해하기로 했다.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그동안 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보고 싶어 했는지 내 목소리만 듣고도 느낄 수 있게 말이다. 아이와 떨어져 있던 동안 사실 나는 자연스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다. 집에 규율이 있으니까 아이가 그곳을 편안하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내가 복숭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복덩이가 느끼기에 억울한 상황에서까지 복숭이의 편을 든 적은 없을까?     

 

그리고 어머님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사실 복덩이가 출근해서 나와 있을 때처럼 했다면 어머님이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실 거라 여겼다. 내 속으로 낳은 내 자식인데도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님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으셨다. 무척이나 침착하셨고, 담대하셨고, 무엇보다 받아들이는 품이 넓으셨던 것 같다. 설사 상황이 그렇게 좋게 흘러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티를 내지 않으셨고, 아이도 친할머니가 이제 엄마와 똑같이 좋다고 했으니 어머님은 정말 너른 품을 가지신 게 분명했다. 결국에는 몸살이 나실 만큼 신경이 쓰이고 몸이 힘드셨을 텐데도 어떻게 싫은 티를 한 번도 내지 않으셨을까. 나도 언제쯤 어머님처럼 모든 걸 허허실실 넘기며 볼 수 있을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복덩이와 싸우기도 하는데. 정말 부럽고 또 존경스러웠다.      


원래 써야 약이 된다고 했던가? 그 시간들이 복덩이를 다시 집으로 맞이하는 데 있어 약이 됐다. 집에 오고 싶지 않다며 오는 차 안에서까지 난동을 피우던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온했다. 평소에 내가 아는 우리 복덩이였다.


재잘재잘 할머니와 산 과자와 과일들을 풀어놓고, 기분이 좋은지 동생 몫을 챙겨주기도 했다. 그리고 눈물까지는 흘리지 않았지만 나와도 진한 상봉을 했다. 서로 너무 보고 싶었다는 말을 건넸으며 따뜻한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이 관한 건 모든 처음 참 약한 사람인 걸 깨닫게 된다. 어쩌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이에 관한 나의 관심이 너무 커서 그럴지도 모른. 그렇지만 유별난 건 사실이다. 앞으로는 점점 다른 곳에서 자고 올 일이 늘 텐데 그때마다 이러면 큰일이지 않을까. 아이는 내 소유도, 내 것도 아니기에 아이를 키우며 내가 할 일은 마음을 비우는 것뿐. 번 일을 겪은 덕분에 다음번에는 지금보다 훨씬 덜 아쉬워하고, 조금 더 기쁜 마음으로 복덩이와의 헤어짐을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이번일로 헤어짐이 꼭 유난스러워야만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건 아니라는 건 아니라는 걸 배웠다. 떨어져 있다고 해서 서로를 그리워하지 않는 것 아니고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잠깐의 헤어짐은 서로의 존재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명약이 될 수도 있다. 아이는 점점 자신의 영역을 확대해 나갈 것이고 나는 그걸 인정해 주는 친구 같은 엄마, 다정한 엄마가 되어줘야지.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째는 쉽다. 혹여나 그것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믿는다. 우리 복덩이도 나도 더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을 거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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