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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r 02. 2023

또다시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밖의 공기는 또 얼마나 차고 상쾌하던지.

오늘 2학년이 되는 첫째 복덩이는 긴장이 되는지 내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먼저 일어나 날 깨우러 달려왔다. 새 학년이 된다는 흥분이 너무 커 목소리까지 덩달아 커지는 바람에 둘째가 깰 뻔했지만 내 놀란 표정을 보고 눈치 빠른 복덩이가 돌아가는 바람에 위급상황을 간신히 넘겼다. 


오늘은 옷 입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알아서 척척이었다. 평소에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만도 한데 그런 생각은커녕 얼마나 떨리고 긴장되면 그럴까 조금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덩달아 가슴이 떨려왔다. 그 덕에 등굣길에도 평소보다 10분에서 15분 일찍 나섰다.


새 학년이 된다는 특별함 때문일까 아이와 함께하는 등굣길부터 모든 게 새로웠다. 이주가 넘는 방학 동안 학교에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니 한 시간 정도 늦게 일어났는데 일찍 일어나니 꼭 그게 처음 해보는 것처럼 새롭게 느껴졌다.


이 시간의 공기가 원래 이랬던가. 밖의 공기는 또 얼마나 차고 상쾌하던지. 누가 보면 오늘부터 새벽에 일어나 미라클 모닝이라도 하는 줄 알만큼 어깨가 으쓱했다.


어제보다 5도씩이나 떨어진 지도 모르고 복덩이 모자를 준비하지 않은 덕에 아이는 귀가 너무 시리다고 했다. 내 옷에 붙어있는 모자라도 떼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럴 수 없어 (우리 아이는 평생 모르겠지만) 나까지 모자를 쓰지 않는 걸로 마음을 대신했다.


하지만 조막만 한 두 손만큼은 시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책가방부터 실내화 가방까지 들고 가야 하는 건 다 내가 었다. 덕분에 복덩이의 한 손은 복덩이의 주머니에 나머지 한 손은 꼭 잡은 채 내 주머니에 쏙 넣 수 있었다. 적어도 내 온기만큼은 더 따뜻해졌겠지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골목골목을 누벼가며 지름길찾아갔다. 꼭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둘 다 들뜨고 설레 있었다. 우리는 오늘 일어날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복덩이가 오늘은 전교생이 운동장에 다 나와서 서 있을 거라 했다. 지만 나는 입학식을 해도 당연히 강당에서 할 거라 여겼다. 이렇게 잠깐만 있어도 귀가 시릴 만큼 춥다고 했는데 설마 밖에서 하겠냐고 었다. 복덩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나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 "그건 복덩이가 다녀오면 알겠지. 다녀와서 알려줘" 하고 말했다. 우리 아이는 지금쯤 강당에 서 있을까. 운동장 한 복판에 서있을까. 이에 관한 거라면 통 궁금한 것투성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가 그 아이와 학년을 함께 올라가는 거란 걸 알지 못했었다. 육아에 관한 아무런 지식이 없던 내가 벌써 아홉 살 아이의 엄마가 되다니. 심지어 본인의 반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간 네 살 둘째 아이의 첫날까지도 걱정이 되어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 선생님은 좋은 분을 만났을까. 몇몇의  낯선 아이들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반응을 할까. 낯섦에 주눅 들어 있지는 않을까. 정말 별에 별 상상을 다 하게 된다. 둘의 긴장이 내 몸속을 타고 흘러 심장이 목젖에서 뛰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을 다 보내놓고 출근을 했다. 따뜻한 차를 태워 한 모금 한 모금 천천히 들이키며 목젖까지 올라와 평소보다 세차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킨다. 나도 나의 삶이 있는 것인데 이런 날은 온통 아이들로 가득 차 도무지 내 일상이 평범해지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하루종일 아이의 옆에 붙어 있으면 이렇게 떨리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차를 들이켠다.


하지만 되지도 않을 일에 기대를 걸 바보는 없다. 그래. 이쯤 하면 된 것이다. 아무리 어려도 두 아이는 자신의 자리에 어울리는 곳에 갔을 뿐이다. 있을 곳에 갔을 뿐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우리 아이와 같이 긴장과 떨림으로 가득한 아이들만 있다. 모두가 다 같은 상황인 것이다. 약간의 두려움은 아침부터 내가 부지런히 집어삼켰으니 이제 남은 건 희망뿐이리라. 그곳에서 북적북적대며 서로가 좋은 친구를 사귀고 좋은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다.


사실 나는 며칠 전, 아니 몇 주전부터 학년이 바뀌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해왔었다. 제일 친한 친구와 반이 갈린 아이가 제대로 다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만약 갔다가 기가 죽어 오면 어떤 말로 아이를 달래주지 등등. 또 방학식날 집으로 들고 온 건 한가득인데 개학날은 도무지 뭘 넣어서 가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했다. 교과서를 넣자니 가방에 다 들어가지도 않고 크레파스나 쓰레받기세트 같은 것들을 넣자 해도 가방이 꽉 찼다.


준비물에 관한 내가 놓친 유의물이 있을까 해서 아이 친구 엄마에게 전화까지 해서 물어봤는데 당혹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걸 보고 엄마들도 아이들과 같이 학년이 바뀌 똑같이 허둥대고 서툴기는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들도 이런대 아이들은 오죽할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라면 남들과 조금 다르게 가방을 싸갔더래도 웃으며 넘길 수 있게 환경이 조성됐을 것 같다. 선생님께서도 이제 막 2학년이 된 아이에게 책임을 물으며 무섭게 대하실 거 같진 않다. '다들 비슷할 거야.'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 뭐 가방을 아예 안 가져간 것도 아닌걸. 더 챙겨  게 있다면, 그걸 적어 올 연필이 든 필통도 넣어줬고. 뭐든 밥심이라는데 점심을 먹을 숟가락통도 넣어줬는 걸. 또 맨발로 다닐 일 없게 실내화까지 야무지게 챙겼다고.'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날개를 달아 멀리멀리 퍼져갔다.


그게 내가 하루하루를 심각하게 살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날 보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틀 전 오래간만에 러닝머신에서 걷고, 뛰었더니 허벅지 뒤가 당기고 불편하다. 하지만 오랜만에 운동을 하고 느껴보는 근육의 긴장이 나쁘지 않다. 그만큼 허벅지가 탄탄해지고 몸이 튼튼해졌을 테니까.


오늘 내가 긴장한 만큼 나의 마음 근육도 한 겹 더 튼튼해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3학년 엄마가 됐을 때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에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직까지는 너무 떨려서 손에 아무것도 들어오질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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