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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Apr 06. 2023

참관수업 날 근육이완제를 먹었다.

아이를 낳고 보니 이 삶은 감사한 것투성이다.

아이의 참관 수업 날이 되었다. 왜 일 학년 때보다 더 떨리는지. 어제와 같은 아침이 다가왔을 뿐인데 나는 혼자서 무척이나 바빴다. 첫째 아이를 데려다줬다 둘째 아이를 차에 태워 보내고, 잠시 준비를 하면 되는 일이었다.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발바닥인 불에 덴 것처럼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 입고 다니던 옷들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어떤 걸 입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가장 날씬해 보이고, 가장 어려 보이고, 가장 예뻐 보일 옷이 필요했다. 그저 어제의 나보다, 평상시의 나보다 날씬해 보이고, 어려 보이고, 예뻐 보이면 되는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있는 걸 다 끄집어냈음에도 선뜻 걸칠 걸 고를 수가 없었다. 밖에 걸치는 옷 하나만 가지고도 이 옷 저 옷 대어 본다고 정신이 없었다.


립스틱 색마저도 신경이 쓰였다. 화장이 뜨진 않았는지, 얼굴에 비비크림을 바른 후에도 몇 십 번을 손가락까지 사용해 토닥거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토닥거리는 손가락보다도 바쁘게 움직이는 게 내 심장박동이었다. 오늘 하루는 합법적으로 궤도 이탈을 해도 좋다는 듯이 쉴 새 없이 빠르게 뛰어 댔다. 나는 그걸 진정시키는 방법을 잘 몰랐다. 곁에 누구 하나라도 있으면 이 긴장이, 떨림이 사라질까.


1학년 때 첫째와 같은 반이 되어 단짝 친구가 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의 엄마와 나도 자연스럽게 친한 사이가 되었다. 마침 학교 가는 길에 그 아이의 집이 있었다. 나는 종종거리는 와중에 아이 친구 엄마와의 약속을 잡고 함께 학교에 가기로 했다. 효과는 정말 말도 못 하게 좋았다. 곁에 안심되는 누군가가 있는 건 그 전과는 천지차이였다. 아이가 사귄 친구는 내게도 좋은 친구를 선물해 줬다. 거기다 친구 엄마는 나처럼 떨고 있지 않았다. 차분한 상태였다.


하지만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려던 차에 2학년이 되면서 두 아이가 반이 갈리는 바람에 우리는 학교 복도에서 이별을 해야 했다.


이제 곧 아이가 있는 반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낯선 곳에서의 떨림. 약간의 긴장. 그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흔한 거였다.


하지만 나는 그 흔하게 느낄 수 있는 긴장감조차 소화를 못 시켰나 보다. 쭈뼛쭈뼛 선 채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빨리 이곳을 벗어나길 바랐다. 사람을 한 두 번 보고는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나는 혹시나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까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눈을 굴렸다. 혹여 눈을 마주쳤다 날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면 누군지 몰라 상대만큼 반기지 못할까 봐 그게 두려웠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긴장이 내 속에서 폭발해 버렸다. 정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가만히 선채로 아주 심한 통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당시에는 담이 온 줄도 몰랐다. 신장이나 내장 하나가 심하게 고장 나 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어떻게 숨만 쉬어도 죽을 것 같지. 담벼락이 무너져 깔린다 해도 그렇게 아플 수 있을까. 허리부터 팔 아래까지의 몸통이 숨만 셔도 극심하게 아팠다. 아주 조금의 움직임으로도 극렬한 통증이 몰려왔다. 이러다가는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굴러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었다. 식은땀이 온몸을 덮었지만 그 자리를 떠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나만 기다렸을 아이가 두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이를 찍으려 핸드폰을 드는 그 쉬운 일도 온 정신을 집중해서 해야 할 만큼 통증이 심했다. 난데없는 통증이 날 해일처럼 덮었는데, 당장 응급실에 가도 이상하지 않은데 이상하게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내 모든 정신과 관심이 지금 내 눈앞에 아이에게 가 있어서였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그 통증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흐르는 식은땀만이 내가 지금 심각하게 아프다는 걸 일깨워 주었다.


오늘 수업을 하며 느낀 감정을 포스트잇에 적어 나와 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부터 포스트잇을 떡하니 이마에 붙이고 있더니 앞에 설 때도 기어코 그 모습으로 나왔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더 웃긴 건 아이와 친하게 지내는 아이가 꼭 닮은 모습으로 나왔다는 거다. 그 둘 말고는 그래. 한 명 딱 더 있었다. 개구쟁이들은 어디에 있어도 그 빛을 발하는 모양이었다.


그 후 친구 엄마와 커피를 한 잔 했는데 통증 때문에 제대로 앉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가 먼저 했던 약속이라 깰 순 없었다. 허리조차 필 수가 없었다. 그 후 회사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아이가 집에 돌아온 후 오늘 엄마가 학교에 가서 어땠는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엄마가 와서 좋았다거나 기뻤다는 대답을 은근히 바라고 있었지만 아이는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너무 떨려서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난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는 교실을 날아다니며 질문을 할 때마다 손을 번쩍번쩍 들래 긴장을 하나도 안 했나 보구나 싶었는데 나만큼 긴장을 많이 했구나 까무러칠 만큼 놀랐다. 왜 우리 아이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았던 걸까. 엄마인 나조차 짐작조차 못했으니 정말 티가 나지 않았던 게 맞겠지. 누군가가 보기에는 나도 그랬으려나. 나만 떤 게 아니었구나를 느낀 순간 정말 내가 나와 똑같은 아이를 낳구나 너무나 신기했다. 어쩜 이런 것까지 똑 닮았지. 아이가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그걸 참고 씩씩하게 임해 준 아이가 기특했다. 네가 엄마보다 낫구나 자랑스러웠다


선생님은 참관수업을 하는 오늘 아침 장문의 메시지를 학부모들에게 보냈는데 내용은 이랬다. 선생님이 다른 해 참관 수업날 겪었던 내용이었다. 선생님의 반에 엄청 활달해서 반장까지 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참관수업날 너무 긴장을 해 발표를 잘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참관수업이 끝나고 그 애 엄마가 엄청 큰 소리로 혼을 내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등짝을 세게 때렸다고 한다.


그걸 본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엄청 떨고 있을 거고, 긴장해 있어서 평소 생각했던 것보다 서툴러도 이해해 주라고 말이다. 그날 일은 선생님께도 충격적이었을 거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렇게 우리에게 이 일화를 전하며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양해를 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나는 그 메시지를 받고 생각했다. 실은 학교에 잘 다녀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울고 떼를 쓴다면 매일이 힘들고 지칠 텐데, 씩씩하게 학교에 나가 주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하루만 아이가 안 간다고 해도 바로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성향이 모두 달라서 앞에 서지 못하는 아이부터, 앞에 나오긴 했지만 말은 아직 하지 않은 아이, 누구보다 빨리 뛰쳐나와서 활동을 하는 아이 등 다양할 텐데 그걸 엄마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 아이는 대체 누구에게 이해를 받을 수 있을까.


나는 그 메시지를 받고 또 한 번 깨달았다. 선생님은 그 엄마를 탓하려고 보낸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그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아이에게 어떤 엄마가 되어주고 싶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거라고 말이다. 아이에 대해 한 번 더 생각을 해줄 수 있게 배려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덕분에 생각을 미리 하고 참관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두 번째 참관수업은 지나고 보니 내 부자연스러운 행동이나 통증을 참는 표정까지, 걸려본 적 없는 심한 담에 걸려 시트콤처럼 보내고 말았다. 덕분에 지금도 한 컷 한 컷 내가 있었던 그곳에 분위기, 모습이 생생하다. 하지만 통증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갈까 봐 아이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보니 아이의 어느 한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탈도 많고, 실수도 많은 나지만 그 순간 아이의 곁에 있어줄 수 있다는 게, 그래서 아이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3학년이 된다고 해서 나는 더 이상 긴장하지 않고 아이의 수업을 지켜볼 수 있을까. 벌써부터 떨리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이 옆에는 내가 있을 거다. 우뚝 서서 아이가 하는 모든 몸짓, 말을 두 눈에 담고 마음에 담을 것이다. 이 정도 용기면 충분하다. 내가 아이의 엄마가 될 수 있게 해 줘서, 그 덕분에 참관 수업까지 들을 수 있게 해 줘서 아이에게 한 없이 고맙다. 아이를 낳고 보니 이 삶은 감사한 것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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