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평일 첫 외출_1
셋 만의 추억을 하나 더 만들러 가는 길.
어른인 내게도 일 년에 두 번, 둘째 복숭이의 방학에 맞춰 방학이 찾아온다. 어렸을 때 방학은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느라 놓친 방학 숙제를 벼락치기로 해치우는 거였는데 이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오히려 방학을 하지 않았을 때 보다 체력이 순두부처럼 흐물흐물해지며 미처 막지 못한 체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엄마가 된 내게는 이상한 습관까지 생겨버렸다. 아이들 방학 며칠 전부터 모두가 잠든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곳을 검색하느라 나 홀로 잠을 설치는 것이다. 그런 건 낮에 해도 될 텐데 왜 밤이면 온갖 하지 않아도 될 고민과 걱정들이 쉴 새 없이 몰아닥치는 걸까. 꼭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내가 만약 워킹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쫓기 듯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곳을 찾지 않아도 됐을까. 실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사치다. 이주 후 둘째의 방학이 끝나면 어김없이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신데렐라의 12시처럼 온전히 아이들에게 붙어하고 싶었던 걸 더는 해줄 수 없게 된다.
아이들은 눈 깜짝할 새에 크고 숨만 쉬어도 큰다. 나는 그 시간을 더는 붙잡지 못한다는 걸 안다. 첫째가 벌써 초등학교 삼 학년이 되다니. 차곡차곡 나이를 먹었겠지만 상상해 본 적 없는 숫자이다. 그만큼 아이들과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버린다.
내가 평소 체력이 좋았다면 일을 마치고도 둘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난 남들보다 다소 이른 퇴근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에 모든 에너지가 다 소진된 기분을 자주 느낀다. 놀아주고 싶어도 놀아줄 힘이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보낸 무기력한 시간들이 후회로 남을까(이미 경험해 보기도 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힘을 짜내어 그림 그리기, 만들기 놀이 등을 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애들을 데리고 평일 날 밖으로 나가는 건 정말 가뭄에 콩 날 정도였다. 그렇기에 둘의 방학이 겹치는 이 이주가 내게는 간절하다. 평소에 데리고 가지 못했던 곳을 다 데리고 가야 하는 날. 그게 둘의 방학이 겹치는 방학날이다.
그런데 여느 날처럼 계획대로 흘러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직장에 응급상황이 생겨 오후 한 시까지 는 근무를 하게 됐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실 분을 생각해 내고, 부탁을 드리고, 발등에 불이 붙은 마냥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일을 마친 후에는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며칠 동안 고르고 골랐던 곳들을 가야 했다. 아이들의 방학이 되었다고 해서 내 체력이 느는 게 아닌데 오히려 해야 하는 일의 양만 가중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기대에 가득 차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면 힘들어도 힘들다 내색하기 어려웠다.
차가 없는 내게는 골라놓은 곳들을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유모차가 익숙했던 네 살짜리 둘째를 데리고 다니는 일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게다가 아직 낮잠을 자는 둘째가 길 한복판에서 잠투정이라도 한다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모든 걱정과 고됨보다 아이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설렘과 웃음이 좋았다.
내게 낯선 곳은 두려움과 걱정이 먼저 비친다면 아이들에게는 설렘과 기쁨이 비췄다. 소풍을 떠나기 전 날처럼 한참을 들떠했다. 목소리부터가 달랐다. 목소리가 커졌고 환희에 차서 그곳에 가게 됐을 때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는 걸 마다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우여곡절 끝 우리가 처음으로 향한 곳은 지하철 두 정거장 하고도 10분 정도를 걸어가야 하는 영화관이었다. 더군다나 둘째를 영화관에 데려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