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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Feb 23. 2021

샌드백이 도착했다.

행복, 뭐 별 거 있어?

신랑은 운동을 좋아다.

연애 때 그의 운동신경은 빛을 발했는데 신랑이 자취방에서 내게 보여주었던 그 자세 덕분이다.


신랑은 물구나무서기를 한 자세에서 팔 굽혀 펴기를 했다. 

나는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 아니라 물구나무서기도 못하는데 물구나무를 서고 또 그 자세에서 팔 굽혀 펴기까지 뚝딱뚝딱해내는 그의 모습이 흡사 드라마의 주인공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자신감에 가득 찬 그의 표정까지도 한몫 거들었던 것 같다.


그랬던 신랑은 이제 한창 에너지를 분출할 7살 남자아이와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가는 6개월 남자아기를 키우는 아빠가 됐다. 둘이 붙어서 육아를 해도 힘든 시기라 따로 짬을 낼 수 없어 선택한 운동이 가정용 샌드백이었다. 아이들 꺼 고를 때는 쉽게 손이 가는데 내 것 하나 살 때면 손 떨리는 우리 부부라 이번에 첫째, 둘째 세뱃돈을 반으로 나누어 가지면서 각자 사고 싶었던 걸 하나씩 큰 맘먹고 사게 됐다.


택배를 받고 보니 박스 길이가 우리 첫째 키보다 조금 더 길었다. 커다란 박스에 흥분을 한 첫째는 신랑이 박스를 뜯고 열어보는 동안 계속 곁을 맴돌며 폭풍 질문을 쏟아다. 신랑이 샌드백과 함께 어른 글러브와 아이용 글러브를 꺼내면서 이건 네 것이라고 건네주었다. 그걸 받아 든 아들 눈이 잠시 반짝였던 걸 나는 보았다.


신랑이 손바닥을 내밀며 여길 한 번 쳐보라고 했다. 첫째는 손바닥을 펴서 신랑의 손바닥을 쳤다. 신랑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니 주먹으로 쳐봐" 하고 말했다. 아이가 다시 주먹을 쥐고 신랑의 손바닥을 쳤다.


그러자 신랑이 "아악"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저 멀리 날아가는 시늉을 했다. 그걸 본 아이가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한 번 더 쳐보라고 하면서 손바닥을 다시 내밀었다. 아이는 신이 나서 주먹으로 신랑의 손바닥을 쳤다. 신랑은 한 번 더 할리우드 액션을 보여주며 "우와. 힘이 왜 이렇게 . 이제 아빠 때리면 안 되겠어."하고 말했다.


아이는 그 모습에 신이 나서는

"아.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되니까?"하고 말했다.


똑같이 생긴 두 명이 사이좋고 활력 있게 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지고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때 세 번 똑같이 생긴 6개월 막내는 언젠간 그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나름 단련을 하고 있었다.

점퍼루에 타서 돌리면 뱅글뱅글 돌아가는 장난감이 있는데 그걸 손으로 신나게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전에는 다른 장난감들에 관심을 보였지 지금 하는 건 안 가지고 놀았었는데 형아와 아빠가 훈련을 하는 걸 보고 저녁부터 훈련에 들어간 게 아닌가 싶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들만 둘을 낳은 나는 가끔 미래 부자의 모습을 상상해 볼 때가 있다. 함께 응원복을 맞춰 입고 야구를 보러 가려나. 탁구도 치겠지. 농구도 축구도 하면서 함께 뛰어놀고 함께 땀 흘리면서 추억을 만들어가겠지. 아이들에게 지금처럼 이면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주겠지 하고 셋이 함께 운동하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아빠보다 키가 큰 두 아들 사이에서 당신 참 듬직하겠다.


배드민턴이나 탁구처럼 짝수로 해야 하는 운동도 많은데 나도 운동을 골고루 배워놓아야 하나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배워놓기만 하면 아이들, 신랑과 함께 취미생활도 할 수 있고, 건강도 챙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 같다 하다가도 아직 둘째가 생후 6개월인 데하며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다시 현실은 둘이 붙어도 버거운 육아지만 그것도 좋다. 품 안에 자식이라고 언제든 꼭 껴안아 줄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이 작아서 좋고, 아직 무슨 일만 있어도 엄마하고 날 찾아줘서 좋다.


아이들은 줄곧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집 안에서 따로 있지 않고 한 공간에서 북적북적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눈만 마주쳐도 있었던 일을 하루 종일 말할 수 있을 만큼 수다스럽고 서로와 함께 있는 게 즐겁다. 아무 일도 아닌 일에도 자주 웃고 금세 또 웃음이 터져 나온다.

투닥투닥하고 삐지기도 하며 또 풀리기도 잘 풀린다.

그런 순간들이 다 소중다.


새로 온 샌드백으로 신랑과 아이가 쌓게 될 추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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