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바람
쓰레기를 버리러 승강기를 탔다. 분리함에 하나씩 골라 넣고 음식쓰레기까지 처리하고 돌아섰다. 귓가를 시치는 바람에 문득 마음이 흔들렸다. 한참을 서서 망설였다.
'선선한 바람, 기분 좋은 바람이다.' 나를 유혹해 오는 건 바로 밤바람이었다. '그래, 오늘은 너에게 기분 좋게 넘어가 주마.' 어차피 내려온 김에 잠깐이라도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슬쩍했었다.
습관적으로 현관에 나와 있던 슬리퍼를 신으려다 일부러 운동화를 꺼내신고 내려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만히 서 있으면 서늘함이 느껴질 정도의 찬 바람, 으스스 소름이 올라오게 하는 이 밤바람, 앞으로는 무척 그리워질 바람이다.
유월의 첫날을 밤바람이 설레게 한다. 여덟 시가 넘어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아직 익숙한 사람의 얼굴은 알아볼 만큼의 밝기는 남아 있었다. 빠르게 질주하는 시간은 곧 짙은 어둠을 몰고 와 세상을 온통 깜깜하게 뒤덮을 거다.
차마 어둑어둑해지는 이 시간에 오송지까지 나갈 용기는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어떤 사람에겐 어둠이, 평소에는 있지도 않던 용기가 불끈불끈 솟게 하고 또 어떤 이는 이유 없이 마냥 주눅이 들게 도 할 것이다.
깜깜하고 짙은 어둠은 늘 나에겐 이유 없는 무서움과 공포였다. 혼자 나왔을 때에는 더욱 그랬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어두운 밤에 걸어야 할 때는 최대한 빛이 있는 곳에서 멀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러기에 아파트 울타리는 안성맞춤이다. 아파트 안쪽에도 좁은 오솔길이 있어 평소에도 애완동물을 산책시키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아파트 밖으로 난 인도를 따라 돌기로 한다. 시원한 밤바람이 머리칼을 한 올 한 올 날리며 더욱 기분을 좋게 했다.
두 번째로 돌 때는 일부러 아파트 울타리에 핀 넝쿨장미의 향기를 맡아보았다. 갈수록 꽃은 다양해지는데 그것들이 가진 본래의 향기는 점점 시들해지고 없어지는 게 현실이다.
이따금 꽃가게에 들러 예쁘고 화려한 꽃들의 향기를 맡아보았던 날, 그 어떤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