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아래 작은 텃밭의 부지런한 주인아주머니는 땡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엊그제는 넝쿨호박의 뿌리 깨에 우산을 씌워줬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내려다보니 검은 채광망으로 살뜰하게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여린 새순이 마음 놓고 뻗어나갈 수 있게 검은 아스팔트길같이 기다랗게 채광 망을 깔아 새 길도 내주었다.
베란다에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그 밭을 내려다보면 고된 일을 끝낸 농부같이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입가를 차지하고 절로 배까지 부르게 해 준다. 시간은 늘 우리의 마음은 아랑곳 않고 제 갈 길만 향해서 간다.
언제나 같은 속도로 가겠지 하면서도 가끔은 생떼를 쓰며 붙들어 두고 싶을 때가 있다. 흐르는 시간을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오래도록 붙들어 두고 싶을 때가 있지. 오늘도 딱 그런 시간 그런 날이다.
잔잔하게 바람이 왔나 보다. 잠잠하게 멈춰있던 집 앞 나뭇가지들이 산들산들 가볍게 몸을 흔든다. 긴 시간 멈춰있는 나에게도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여 보라고 마치 무언의 신호를 보내오는 것만 같다.
아침을 적시던 비는 이제 완전하게 우리 곁을 떠나간 건 가. 가늘게 내리던 비가 간사한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건 흐려지는 시력 때문인 건지. 아니면 잠시 회색빛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저 하늘 어디에 숨어 있다 잠깐 동안 숨을 고르고 몸을 추슬렀다 다시 나타날는지, 제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여태껏 자릴 잡고 껌딱지처럼 눌러앉았던 몸을 우는 아이 어르고 달래듯 해서 일어나 봐야겠다.
나에게 주어진 귀하고 소중한 오늘의 오전시간이 저 멀리로 앞서 달아나기 전에. 나도 알은체를 하며 귀한 시간 속으로 함께 빠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