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2)

by 시나브로

베란다 아래 작은 텃밭의 부지런한 주인아주머니는 땡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엊그제는 넝쿨호박의 뿌리 깨에 우산을 씌워줬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내려다보니 검은 채광망으로 살뜰하게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여린 새순이 마음 놓고 뻗어나갈 수 있게 검은 아스팔트길같이 기다랗게 채광 망을 깔아 새 길도 내주었다.


베란다에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그 밭을 내려다보면 고된 일을 끝낸 농부같이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입가를 차지하고 절로 배까지 부르게 해 준다. 시간은 늘 우리의 마음은 아랑곳 않고 제 갈 길만 향해서 간다.


언제나 같은 속도로 가겠지 하면서도 가끔은 생떼를 쓰며 붙들어 두고 싶을 때가 있다. 흐르는 시간을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오래도록 붙들어 두고 싶을 때가 있지. 오늘도 딱 그런 시간 그런 날이다.


잔잔하게 바람이 왔나 보다. 잠잠하게 멈춰있던 집 앞 나뭇가지들이 산들산들 가볍게 몸을 흔든다. 긴 시간 멈춰있는 나에게도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여 보라고 마치 무언의 신호를 보내오는 것만 같다.

아침을 적시던 비는 이제 완전하게 우리 곁을 떠나간 건 가. 가늘게 내리던 비가 간사한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건 흐려지는 시력 때문인 건지. 아니면 잠시 회색빛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저 하늘 어디에 숨어 있다 잠깐 동안 숨을 고르고 몸을 추슬렀다 다시 나타날는지, 제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여태껏 자릴 잡고 껌딱지처럼 눌러앉았던 몸을 우는 아이 어르고 달래듯 해서 일어나 봐야겠다.

나에게 주어진 귀하고 소중한 오늘의 오전시간이 저 멀리로 앞서 달아나기 전에. 나도 알은체를 하며 귀한 시간 속으로 함께 빠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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