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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FREEBOW MAN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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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산의 카프카 May 23. 2023

10.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별들이 들려준 이야기

크리스마스의 수도에서 야외 취침을 하다

프라하를 떠난 나의 여정은 스트라스부르로 이어졌다. 스트라스부르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도시이자 크리스마스의 수도로 불리는 곳이다. 그 이유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되는 전나무의 발상지인 이유도 있지만 1570년부터 지금까지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기 때문이다. 매년 12월이 되면 전 세계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크리스마스의 도시, 스트라스부르. 그러나 내가 도착했을 때는 크리스마스와 먼 한 여름이었기에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반대로 고요하고 아늑한 맛이 있었다. 나는 조용한 거리를 거닐며 FREEBOW 장소를 물색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먹이를 찾아 산기슭 헤매는 하이에나의 눈빛을 한 채로.  

  

처음 간 곳은 노트르담 대성당이었다. 700년의 긴 시간 동안 건설과 증축을 거듭한 이 성당은 스트라스부르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한 여름의 스트라스부르를 찾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이곳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통행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 자리를 폈다. 그리고 FREEBOW를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서 내리쏟아지는 햇살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낡고 추레해진 내 모습 때문일까? 안 그래도 유동인구가 적은데 나와 절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들 땡볕에 서 있는 나를 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 햇빛을 피해 도망치듯 성당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행히 캐나다에서 가족여행 온 여행객들이 있어 그나마 자리를 편 보람이 있었다. 그들 중 딸이었던 한 소녀는 나와 FREEBOW를 마치고 내게 스트라스부르의 또 다른 유명관광지인 쁘띠프랑스를 추천했다. 그곳에 가면 여기보다 더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이야기에 감사인사를 전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녀가 방문했던 시간과 달라서인지 쁘띠프랑스 일대에도 사람은 없었다. 사진명소인 다리 위에 자리를 잡았는데 3시간 동안 5명만이 나와 절을 해주었다. 오후 대부분을 서서 시간을 보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그리고 이런 도시도 있는 거지.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여기는 이렇게 마무리하자는 생각으로 버스터미널로 돌아갔다. 오전에 버스터미널을 떠날 때 예약해 두었던 야간버스를 타고 다음 도시로 갈 생각이었다. 다음 도시에서는 부디 많은 사람들과 절을 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버스를 타려는 내게 버스기사는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 


“당신 좌석 예약이 안 되어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 이렇게 아침에 예약한 버스표가 버젓이 있는데? 나는 당황하며 버스기사에게 표를 보여주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당황한 나는 손짓발짓을 포함해 모든 대화수단으로 그에게 설명했지만 그는 한 문장으로 내 간절함을 일축했다.

“예약이 취소되어 있으니, 이 버스를 탈 수 없습니다. 다시 예약하세요”


그는 내게 하차를 명했고 차디찬 길바닥에 나를 버려둔 채 무심한 버스는 굉음을 내뿜으며 떠났다. 이 무슨 황당한 경우란 말인가? 이미 늦은 시간에 버스예약소는 문을 닫은 상태였기에 다른 버스를 탈 수도 없었다. 꼼짝없이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떠난 버스를 원망해서 무엇하랴. 이 또한 여행의 일부분이 아니겠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물을 주워 담기보다 닦을 생각을 해야 노성종이지. 나는 노성종이다! 나는 존중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려 여행하는 freebow맨, 노성종이다! 큰 소리로 내 이름을 외치며 애써 정신을 다잡았다.


급히 숙소를 검색했다. 어찌 된 일인지 비수기라고 할 수 있는 한 여름의 스트라스부르의 숙박비가 10만 원을 넘었다. 내가 잘못 검색한 줄 알고 아무리 검색조건을 바꾸면서 조회를 해봐도 이보다 싼 숙소는 없었다. 답답했다. 이미 몇 번이나 뒤져서 뻔한 지갑을 또 뒤진다. 종내에는 여행가방을 다 뒤집어 깐다. 혹시나 흘린 동전이나 운 좋게 어디 구석에 박힌 지폐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는다. 그리고 그 기대는 여지없이 실망감으로 돌아온다. 낭패다. 제길, 이 놈의 도시! FREEBOW 하려는 사람도 제일 적어 나를 슬프게 하더니, 이렇게 나를 물 먹이는구나!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남은 기간을 고려했을 때 3만 원 남짓이었다. 이 돈으로 여기서 하룻밤 지낼 곳을 찾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공원 화장실에서 잠을 청해야 되는 걸까? 민폐이지만 바람과 사람들 눈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싶었다. 하릴없이 스트라스부르 지도를 펼쳐 공원을 찾았다. 그때 번쩍이듯 지도상에 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캠핑장이었다. 캠핑장이라면 이 돈으로 어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정당하게 돈을 지불하는 것이니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마음도 편할 터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급히 캠핑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1시간을 걸어 캠핑장에 도착했다. 캠핑장은 2만 5천 원 정도였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비용을 지불하려는 내게 스태프가 물었다. 

“근데 텐트는 어디 있어요?”

“텐트는 없습니다.”

“텐트가 없으면 캠핑장을 이용할 수가 없어요.” 

그녀는 나를 버렸던 버스운전기사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안돼.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더 이상 갈 곳도 그리고 걸어갈 힘도 없었다. 절실함을 담아 다시 한번 간절하게 부탁했다. 


“텐트는 없지만 침낭이 있어요. 그리고 깔고 누울 카펫도 있습니다. 제발 제게 자리를 내어주세요.”

“죄송합니다만 안 돼요. 규정이에요. 그리고 오늘 밤에는 비 예보가 있어요. 텐트도 없이 어떻게 하시려고요.”

“만약 비가 온다면 그 또한 제 운명이겠지요. 선생님, 저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존중의 가치를 알리는 캠페인을 하고 있는 여행객이에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버스예매가 잘못되어 정말 갈 곳이 없어요. 여기까지도 1시간을 걸어왔어요. 폐 끼치지 않을게요.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한숨을 쉬더니 어딘가로 전화했다. 아마 사장님이나 그녀의 관리자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침 삼키는 것도 까먹고 그녀의 전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1시간 같은 3분이 지나고 그녀는 내게 얘기했다. 

“좋아요. 여기에서 쉬시면 돼요. 대신 비가 오면 지금 이곳에 와야 돼요. 알겠죠?” 


천사다. 나는 또 한 번 천사를 만났다. 허리를 거듭 숙이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비가 와도 이 사무실에 와서 당신이든 이곳 캠핑장을 이용하는 다른 이용객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녀는 자신을 더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꼭 이곳에 와서 비를 피하라고 당부하며 내게 캠핑장을 안내했다. 


나는 좌우에 텐트가 쳐진 곳 가운데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다른 빈 공간도 많았는데 혹시 모를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그녀가 배려한 듯했다. Freebow를 할 때 사용하는 카펫을 펼쳐 땅에 깔았다. 그리고 침낭 속에 몸을 넣었다. 썩 나쁘지 않았다. 군대 혹한기 훈련 때 영하 20도의 추위에 벌벌 떨며 잠을 청하던 것에 비하면 천국과 다를 바 없다. 하긴 천사가 있는 곳이니 천국이지. 실없는 생각에 실소가 터졌다. 그렇게 텐트도 없이 캠핑장에 와서 자리를 깔고 침낭을 덮고 웃는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옆 텐트의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아쉽게도 그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나 또한 영어 아니면 한국말 뿐이니 그와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만국공통어인 바디랭귀지가 있으니 서로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는 내게 자신들의 저녁을 나눠주었다. 덕분에 굶주린 배를 채웠다. 배가 부르니 자연스레 잠이 쏟아졌다. 침낭을 덮고 이른 잠을 청했다.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불현듯 잠에서 깼다. 처음에는 못 느꼈는데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바닥에 전신이 쑤셔왔다.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2시였다. 9시 전에 잠이 들었으니 그래도 꽤나 깊이 잠들었나 보다. 늦은 밤이라 캠핑장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비는 오지 않았다. 되려 하늘에는 별이 쏟아지듯 점점이 박혀 있었다. 


“이야. 너무 이쁘다.” 

속으로 혼잣말한다는 것이 그 이쁨에 혹해 밖으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이걸 내게 보여주려고 오늘 하루가 이렇게 되었나 보다. 나를 두고 간 버스기사도 천사였나 보다. 이 밤하늘을 보여주고 싶어 내 걸음을 그렇게 잡았나 보다.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매혹적인 밤하늘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한다. 인생에 있어 길흉화복은 항상 바뀌어 미리 헤아릴 수가 없다는 뜻이다. 오늘 하루만 해도 그렇다. 유래 없이 FREEBOW에 관심 없었던 사람들, 찌는 듯한 더위, 내 의사와 상관없이 취소된 버스티켓과 비싼 숙박비. 내게 최악의 여행지로 남을 뻔한 스트라스부르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이 세상에 나 혼자 뚝 떨어져 이 밤하늘을 전세 낸 기분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별과 달과 그리고 바람을 독차지한다. 화가 복이 됐다. 


지금까지의 여정도 그렇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것, 그 어머니를 방송을 통해 찾은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파했던 것, 방황을 꿈꾸며 인도로 갔던 것. 인도에서 차별을 경험한 것. 그래서 freebow를 하게 되고 여기까지 흘러오게 된 것도 돌이켜보면 흉이 길이 된 것이었다. 이 여행을 했기에 많은 사람들과 서로의 가치를 나누고 보다 아름다운 세계를 위한 미래를 얘기하고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경험을 얻었다.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차근차근 별에 지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새겨본다. 저 별은 코펜하겐의 복월화 씨, 저 별은 리가의 주인아주머니, 그리고 저 별들은 프라하의 유대인 친구들. 그렇게 여행 중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과 추억을 별 하나하나에 기록한다. 언젠가 살면서 이 소중한 마음을 잃어버렸을 때 언제든지 저 별들을 보며 그들의 가르침과 마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금의 나를 변함없이 지킬 수 있게 내 간절함을 담아 별들에게 절을 한다. 그리고 별들도 내게 시공을 넘어 절을 해온다. 항상 변함없이 여기서 그렇게 날 지켜보겠노라며 덕담도 아끼지 않는다. 내게만 보이고 들리는 별들과의 Freebow다.   


문득 잠에서 깨어 새벽을 바쁘게 보냈지만 전혀 피곤하거나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별들의 기운을 받은 덕인지 힘이 넘쳤다. 어제와는 달리 꽤나 밝은 모습인 내가 신기했는지 캠핑장의 천사가 작별인사를 하는 내게 물어왔다. 

“잘 잤나요? 텐트도 없이 불편하지 않았어요?” 

“아니요. 하늘을 가리는 것이 없어서 밤하늘을 텐트 삼아 잘 잤어요. 그리고 그 덕분에 별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 인생 최고의 밤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에요. 당신에게 스트라스부르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네요.”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웃으며 답했다. 

“스트라스부르에 가면 천사와 별들을 만날 수 있다고 얘기할게요. 감사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를 뒤로 한 채 캠핑장을 나섰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날 기다릴까? 또 어떤 흉과 화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또 어떤 길과 복이 그 아픔을 덮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재밌는 인생, 재밌는 여행이다. 다음 여행지의 새옹지마를 기대하며 오늘도 freebow man 노성종,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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