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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FREEBOW MAN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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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산의 카프카 May 22. 2023

09. 체코 프라하, 프란츠 카프카를 만나다

카프카가 사랑한 도시 프라하, 그 아름다움에 빠지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적인 소설 “변신의” 한 문장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유대계 독일작가로 우리에게 익숙한 변신을 포함해 성, 시골의사, 소송 등을 집필하며 현대사회 속에서의 인간 존재의 의미, 소외와 허무를 표현하고자 한 작가다. 내가 그를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내가 도착한 이곳이 바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이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도시 체코 프라하이기 때문이다. 


프라하는 한국인에게 인기리에 방영됐던 ‘프라하의 연인’으로 유명한 도시다. 천 개의 탑이 있는 도시,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낭만의 도시로 이름난 이곳은 말 그대로 더 천천히 걷고 더 오래 머물며 깊이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도시임이 틀림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카를교를 같이 건너면 그 사람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가슴 설레는 곳이지만, 그러나 날 두근거리게 한 것은 중세의 아름다움이나 연인과의 추억보다 카프카와의 만남이었다.  


청소년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오며 삶과 인생을 고뇌할 때 늘 내 손을 잡아주었던 것이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집이었다. 존재론적 인식이라던지, 실존주의와 같은 철학적 관점을 떠나서 개인의 선택이나 노력과 무방하게 벌어지는 이유 없는 불가항력에 흥미를 느꼈다. 눈 뜨고 일어나니 벌레로 변한 것처럼 눈 뜨고 일어나니 집을 나간 어머니와 망해버린 가정이 동일시되었고 우리가 흔히 운명이라 부르는 그 어떤 절대적인 힘 앞에서 아등바등하는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 잠자와 열입곱의 나는 동일한 존재였다. 


그렇게 나의 한 시절을 함께 한 카프카! 그런 그가 살았고 또 작품을 집필했던 프라하에 왔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채 동도 트기 전 이른 새벽에 버스 터미널에서 프라하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마치 전기가 내 몸을 관통하는 듯했다. 기분 좋은 떨림을 느끼면서 카프카의 유명한 격언을 되뇌며 프라하에서의 FREEBOW를 시작했다.


“어떤 일이 당신을 기다릴지 누가 알겠는가? 여기서는 모든 것이 기회로 가득하다.” 

-프란츠 카프카-


‘어떻게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그런 고뇌가 흘러나왔을까?’ 그의 고독과 외로움, 무력감을 상기하며 걷던 나를 멈춰 세운 것은 새벽이슬을 고고하게 머금은 카를교였다. 뒤편으로 보이는 프라하성을 배경으로 좌우에 블타바강을 품은 카를교는 눈 부시게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나도 모르게 엎드려 절을 하고야 말았다. 그 감격을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다리에 대고 절을 하는 내 모습이 신기했던 걸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노성종이라고 합니다. 저는 freebow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알겠어. 여기로 와 봐”

손짓으로 나를 부르는 그의 무례한 언행에 기분이 나빴지만 나는 freebow man이니까 그를 존중하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본 그는 상당히 술에 취해 있었다.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온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나를 껴안고 꽤 멀리 있던 자신의 친구를 불러 사진을 찍게 했다. 좀 전까지 카를교를 마주하며 느꼈던 감동이 그의 억센 손아귀에 아스라이 사라지는 듯했다. 나는 그 감정을 좀 더 붙잡고자 용기를 냈다. 그에게 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나는 당신을 존중합니다. 당신도 나를 존중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 나도 널 존중해. 세계는 하나니까!” 

그 말을 하면서 그는 날 포옹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건 freebow지만 freehug면 또 어때? 서로를 대하는 따뜻한 마음이 중요할 뿐이지. 그의 언행이 내 기준에 조금 무례하면 어때? 내가 꿈꾸는 세상과 그가 꿈꾸는 세상이 같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지. 나도 웃으며 그를 마주 안았다. 그가 내뿜는 술냄새에 푹 안긴 듯한 기분이었지만 되려 그의 체온에 얼어붙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 사람 덕분에 뜻하지 않게 주위의 이목을 끌게 되어 부랴부랴 freebow를 시작했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그는 freebow를 시작하는 내게 따봉을 날리고는 사라졌다. 나도 마주 따봉을 날리고 자리를 펴고 사람들과 절을 했다. 1시간쯤 지나니 다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아졌고 통행에 불편이 될까 싶은 마음에 철수를 결정했다. 사실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보다는 카프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카를교에서 freebow를 정리하고 걸음을 옮긴 내가 향한 곳은 카프카가 살았던 생가다. 현재는 1층에 레스토랑이 생겨 있었다. 딱히 카프카와 관련이 없는 것 같았지만 메뉴판부터 카프카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카프카 이름을 딴 커피를 팔고 있었다. 나는 기분을 내기로 했다. 없는 살림을 털어 그곳에서 커피 한 잔을 했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카페인에 괜스레 취해 카프카처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척했다. 고독을 위장한 허세가 뿜어져 나왔다. 자신한테 취한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그다음으로 간 곳은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이다. 그의 박물관이 있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내가 으쓱해졌다. 박물관은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는 공간이었는데 특이했던 것은 그의 정신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이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어두운 공간 한 중간에 빛을 뿜어내는 영사기라던가, 거울과 빛을 이용해 형이상학적인 것을 표현한 방 같은 것들이다. 분명 이 박물관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사람은 나보다 훨씬 더 카프카라는 작가를 사랑하고 더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분에 잠깐이나마 살아생전 카프카의 정신세계를 훔쳐본 듯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행복한 시간은 왜 이다지도 빠르게 흘러가는가? 보고 싶은 것은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은데 시간을 보니 어느새 오후 4시였다. 프라하에서는 숙박 없이 밤에 다른 도시로 떠날 계획이었기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하룻밤 묵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욕심 내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아쉬워할 시간에 한 발자국 더 걷자는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어느새 freebow는 뒷전이었다.  프라하에 흠뻑 빠져, 카프카에 흠뻑 빠져 여행의 목적을 잊었다. 


그런 나를 한 무리가 붙잡아 세웠다. 그들은 유대인 청년들이었다. 유대인 전통복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그들은 내게 사진촬영을 청했다. 보통 때였으면 사진촬영을 하고 freebow를 설명했을 텐데, 카프카의 생전 작업실에 바삐 가고 싶었던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거절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들은 미안하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아차 싶었다.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존중의 가치를 나누고자 여행을 시작했으면서 내게 다가온 기회를 발로 차다니. 나는 급히 그들에게 달려가 사과를 하며 사진촬영을 청했다. 

“급한 볼일이 있는 거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다른 생각을 하다가 실수했어요. 죄송합니다. 저랑 같이 사진을 찍어주시겠어요?”

그렇게 사진촬영을 하고 freebow에 대해 이야기했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존중의 가치를 퍼뜨리자는 나의 캠페인 얘기에 그들은 매우 흥미로워했다. 그리고 자신들과도 freebow를 하자며 청해왔다. 나는 감사인사를 하고 그들 한 명, 한 명과 맞절을 했다. 그들은 비틀거리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웃기도 하고 안정적인 내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다. 


“정말 대단합니다. 당신을 존경합니다. 성종. 그건 그렇고 프라하는 어때요? 

“너무 아름다운 도시예요. 그리고 제게는 무엇보다 프란츠 카프카의 도시라서 뜻깊어요.”

“오! 프란츠 카프카를 알아요? 신기하다. 그런데 카프카도 우리와 같은 유대인이라는 것도 알아요?”

“이곳에 온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의 고통에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요.”

우리는 그 이후로도 카프카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독일인이 상류층을 차지하는 프라하에서 유대인으로서 그가 겪어야 했던 차별과 좌절, 그리고 그 아픔이 작품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등에 대해서였다. 그리고 우리의 긴 이야기 여정은 돌고 돌아 다시금 freebow로 왔다. 


“성종, 그래서 당신의 freebow는 계속 진행되어야 해요. 우리가 좋아하는 카프카가 겪었던 아픔이 세상에서 없어질 때까지. 알겠죠?”

“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아우슈비츠를 보고 왔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핍박과 고통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어요. 앞으로 우리들이 만들어 갈 세상에는 유대인이나 게르만인, 한국인이 서로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의 우리처럼 비록 복장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세상이 될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좋아하는 카프카 같은 작가의 작품은 볼 수 없게 되겠네요?” 한 청년의 농담에 웃음이 터지면서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그들은 내게 너무 많은 시간을 뺐은 것 같다며 사과했다. 나는 당신들 덕분에 행복했다고 화답했다. 그렇게 그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아쉬운 이별을 했다. 그리고 내가 향한 곳은 원래 가고 있었던 카프카의 작업실이 아닌 그 반대방향이었다. 


애매하게 남은 버스시간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그들과의 만남으로 굳이 작업실에 갈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약간의 과장을 더하면 딱 원효대사의 해골물이었다. 이미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카프카의 작업실에서 느낄 감동보다 더 큰 감동을,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프라하에 한 번 더 와야 할 이유를 남겨두고 싶었다. 


다시금 카를교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침 햇살이 아닌 저녁 야경을 품은 카를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늘 보고 들었던 것들, 그리고 느꼈던 것들을 되새김질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오늘이 참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글로는 차마 느낄 수 없는 프라하의 아름다움을, 가슴 한가득 채운 하루였다. 건물과 도로, 그리고 사람들. 카프카가 사랑했을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잠깐이라도 경험해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프라하의 밤하늘을 도화지 삼아 카프카의 말을 그려본다. 

“청춘이 행복한 이유는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을 잃지 않으면 결코 늦지 않는다.” 

-프란츠 카프카- 

다시금 프라하를 찾았을 때도 오늘 느꼈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내 청춘을 간직하련다.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잃지 않으련다. 카를교에 대고 다짐의 절을 올린다. 우리 또 만납시다, 프라하. 그리고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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