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1년 차이다.
내머릿속지우개, 빨간펜선생님, 만날해장국 나만의 블랙리스트 속 인물들의 별칭이다.
일은 힘들어도 참겠는데 그들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며 사직서를 들고 다녔다.
매일 밤 나의 하소연을 들어주었던 친구가 곁에 없었다면 결국 그만두지 않았을까?
지끈거리는 회사를 떠나 동해로 바람 쐬러 가는 여행길에도 또 회사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같이 여행 중이던 선배가 한마디 던졌다.
“둘 중 하나야 회사 그만 둘 각오로 들이받던지, 아니면 척을 지지 말고 개선해 볼 방법을 찾아보던지...”
머리를 굴려본다.
"내머릿속지우개님~저번에 제가 분명히 보고 드렸는데요. 여기 녹음한 것도 있어요."(전쟁이다! 이기지 못하면 나는 퇴사 각이다) 합리적으로 근거를 모아서 이기려면 ‘건드리면 큰일 나는 애’로 완벽히 포지셔닝해야 한다.
"만날해장국님~오늘 넥타이 정말 멋지세요! 오늘은 해장국 대신 파스타 어떠세요?"(칭찬 스킬을 던진 후 내 의견을 살포시 제안한다. 그래도 해장국일 것 같다) 칭찬과 에둘러 말하기를 통해 불만을 표현하는 것도 실제 상황에선 어렵고 어색하다.
직장을 1년도 못 버틴다면 경력도 안되고, 어렵게 들어온 회사를 그만두기에도 억울하다.
약자인 나는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조금이라도 덜 부딪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그들의 탐구일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부장님은 자기주장이 강하셔서 처음에는 수용적이어야 화를 안 내심.
○○○차장님은 메일이나 문자를 안 보시니 바로 전화를 해서 보고해야 함.
○○○과장님은 업무 진행 상황을 하루 2번 이상 보고해야 안심 하심.
탐구일지가 채워질수록 이상하게도 상대의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자와 소의 슬플 사랑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소와 사자는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습니다.
소는 날마다 맛있는 풀을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풀이 싫었지만 사랑하기에 참았습니다.
사자는 날마다 사냥한 살코기를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는 살코기가 싫었지만 참았습니다.
소와 사자의 참을성에는 한계가 왔고 결국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소와 사자가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해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업무 스타일의 차이, 표현의 차이, 생각의 차이, 결국은 관계의 문제다. 관계적 갈등의 핵심은 사람은 자기가 좋은 대로 해주길 원한다는 것이다. 직장 내에서도 자신의 입장에선 최선을 다해도 상대는 불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무를 익히듯 관계를 잘 만들어가는 공부도 필요하다. 사람에 대한 심리를 공부하게 되면 조금은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복잡한 갈등 속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상대를 이해하는 노력에는 에너지가 많이 들겠지만 그것조차 안 한다면 블랙리스트를 품고 사직서를 들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누가 봐도 돌+i 그 분은 제외하자.
상식이 안 통하는 경우는 한바탕 전쟁이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