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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Apr 04. 2023

조세 농부 아데스타니

페르시아인 아데스타니(Muhammed Sayyid Ardestani)는 조세농부의 역동적인 삶을 잘 보여준다. 1620년 무굴 제국(Mughal Empire)이 영토를 확장하면서 제국 간 전쟁이 빈번해졌다. 당시 말은 인도에서 힘과 권력의 상징으로 전 쟁 필수품이었지만 인도 토양에서 사육이 힘들어 매번 수입해야 했다. 아데스타니는 말 무역과 조세농부 사업으로 돈을 벌었고 이후 다이아몬드 광산과 섬유 무역에 투자하여 천문학적인 부자가 됐다.


유럽 수입상은 자신이 원하는 품질의 옷을 얻기 위해 인도에서 선금을 주고 주문했다. 만약 돈을 받은 기술자가 부도를 내면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를 중간에서 해결하는 사람이 아데스타니였다. 조세 징수 조직을 가진 아데스타니를 중개인으로 하면 부도의 확률이 급격히 낮아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수입으로 아데스타니는 개인 경호원만 5,000명을 고용할 정도로 위세를 누렸다.


아데스타니는 벼락부자가 좋아하는 도박을 크게 했다. 정치에 개입한 것이다. 그는 왕권 투쟁에서 잘못된 후보자를 선택했다. 새로운 술탄(Sultan)은 그를 즉시 체포했지만 그는 뇌물을 주고 사면 받아 무굴 제국으로 망명했다. 무굴 제국은 그에게 귀족 칭호를 부여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조세농부를 계속하도록 허락한다.


술탄은 아데스타니의 망명을 왜 허락했을까? 조세농부를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은 당시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조세농부는 주변 국가에 친인척을 조세농부로 두고 있었다. 강력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조세농부를 처단하는 것은 이웃 나라를 원수로 만들 위험이 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조세농부로부터 과거의 징수 자료와 시스템을 온전하게 인수받기 위해서는 조세농부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보다 타협하는 것이 더 현명했다. 


아데스타니의 삶을 보면 신라시대 장보고도 일종의 조세농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장보고 역시 청해진에서 해상무역을 독점하고 사병을 키웠으나 중앙정치에 개입하다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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