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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Apr 04. 2023

조공에 취한 그리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는 이집트를 포함한 문명국가 대다수를 지배하던 강국이었다. 페르시아는 작은 도시국가 그리스에 조공을 요구했다. 조공을 바치는 것은 현실적인 방안이었으나 아테네는 다른 도시와 동맹을 맺고 페르시아에 대항했다. 동맹에 참가하는 도시는 방위비 분담금을 납부했고 이 돈은 델로스(Delos) 섬에 보관했다.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왔다.


전쟁에서 승리한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의 주도권을 가지게 됐다. 200여 개의 도시국가는 모두 하나의 투표권이라는 동등한 권리를 가졌지만 아테네는 동맹의 돈을 마음대로 사용했다. 아테네는 동맹의 국고를 델로스에서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으로 옮기고 동맹이 납부하는 분담금을 4배 늘렸다. 그리고 동맹의 분담금을 아테네를 위해 사용했다.


일부 도시국가는 분담금이 과중하다며 동맹 탈퇴를 원했다. 대표적인 도시가 밀로스(Melos)와 미틸레네(Mytilene)였다. 아테네는 군대를 보내 탈퇴를 원하는 도시를 징벌했다. 남성은 살해했고 여성과 어린이는 노예로 팔았다. 아테네는 이들 도시를 폐허로 방치하여 다른 도시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역설적이지만 이때가 그리스 전성기였고 아테네는 최고의 생활 수준을 향유했다. 그리스 황금기는 동맹이 바친 조공과 횡령한 돈으로 이룩한 인류 유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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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은 독재와 민주주의의 차이가 조세 제도에 있다고 믿었다. 독재는 직접세로 사유재산을 압류하고 시민을 감옥에 보낼 수 있다. 그래서 독재자가 마음대로 징수할 수 없는 간접세를 선호했다. 그리스인은 직접세를 자유에 대한 속박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 직접 과세하지 않았다. 다만 도로, 다리, 항구 같은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세금을 매겼다. 이는 시설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었다.


관세(항구세) 2%는 해적을 소탕하기 위한 비용으로 설명했다. 유독 해적 출몰이 빈번하고 경비가 어려운 항로에는 항구세 10%를 부과했다. 세금은 노예 경매 및 농지 매매 시에도 부과됐다. 그리스는 탈세액의 10배까지 벌금을 물렸지만 형사처벌은 하지 않았다. 계몽사상가들은 이런 이유로 그리스 조세 제도에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그리스는 속국에서 직접세를 거두었다. 매춘과 점성술 같은 직업에도 직접세가 과세됐다. 여관에 묵는 것도 세금이 부과됐고 대부분의 숙박세는 사업을 위해 아테네로 몰려온 외국인이 납부했다. 직접세는 식민지에서 주민에게 걷는 인두세(Poll tax)와 수확량의 10%를 거두는 추수세가 있었다.


아테네는 전시에 한하여 직접세를 징수했다. 이를 에이스포라(Eisphora)라고 불렀다. 아테네는 시민을 100개의 그룹으로 나누었다. 각 그룹은 대표 1인과 부대표 2인을 선출하고 선출된 3인이 먼저 세금을 납부했다. 대 표들은 자신이 선납한 세금을 시민에게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여 징수하게 된다.


세금은 시민들이 신고하고 선서한 내용을 바탕으로 부과됐다.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서로의 재산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견제하고 균형을 찾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사람들은 정직하게 신고했고 전쟁 비용은 즉시 조달됐으며 관료조직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아테네 시민들은 에이스포라가 영구적인 납세 제도로 정착되지 않도록 견제했다. 


중국도 유사한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가부장제는 행정력이 부족한 국가가 이용한 납세 및 통치 구조였다. 대표적으로 명나라의 보갑제(保甲制)가 있다. 보갑제는 열 가구가 한 개의 ‘갑(甲)’을 이루고 열 개의 갑이 모여 한 개의 ‘보(保)’를 이룬다. 하나의 보에 속하는 주민이 범죄를 저지르면 보의 대표가 대신 처벌받았으며 세금도 국가조직이 아닌 보가 부과했다. 보의 대표는 가구의 형편을 고려하여 각 가구가 납부해야 할 세금과 병역 의무를 결정했다.


보갑제는 장단점이 분명했다. 관리들은 100 가구를 대표하는 보만 관리했기 때문에 편리하고 효율적이었다. 보에 속하는 가구의 소득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은 보의 대표가 맡았다. 보의 대표는 각 가구의 형편을 고려하여 적정한 세금을 부과할 수 있었다. 단, 보의 대표가 탐욕스럽거나 정치적 이유로 타협하면 개인은 보호받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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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는 전례(Liturgy)라는 기증 제도도 만들었다. 전례는 도로 건설, 축제 등 국가에서 새로운 사업이 필요할 때 부자들이 기부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조세가 아니었으며 지도층의 자발적 기증이었다. 기증은 축제, 체육 행사 등의 경비와 군함 건조에 사용하였고 부자들은 필요한 금액보다 더 많이 기부했다. 기증자는 때로 자신이 책임지고 공공사업을 집행했기 때문에 국가가 복잡하게 감독할 필요가 없었다. 기부에 인색한 사람은 대중의 경멸을 받았으며 후한 기증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아테네의 전례 제도는 로마시대까지 이어졌으나 로마는 전례를 강제하여 나쁜 세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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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기부는 명예로운 일로 전례는 현대에도 활용될 수 있다. 기부가 합당한 존경을 받는 명예로운 일이라면 기부는 더 활성화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기부자의 이름을 딴 공연장, 대학 건물 등이 많다. 예를 들어 오라클은 2억 달러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트 야구장을 오라클 구장으로 20년 동안 사용할 권리를 샀다.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역 이름을 병기하면서 부수입을 얻을 수 있듯이 국가는 이름 사용권을 통해 자발적인 재정수입을 얻을 수 있다. 국가는 고속도로, 국도, 지하철 노선, 교량, 공원 등의 이름 사용권을 폭넓게 판매할 수 있다. 해군 함정의 이름도 판매 대상이 될 수 있다.


재벌 기업의 투자로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이를 유지·보수하면서 기업 창업자의 아호를 선택한다면 이 또한 아름다운 교환이라 생각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일정한 세제 혜택을 준다면 정부가 복잡한 건설 계약을 체결하고 비리를 감시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리스의 몰락은 외부의 침공이 아닌 조공을 원인으로 한 내전 때문이었다. 쇠락은 스파르타가 시작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시작됐다. 25년 넘게 지속된 전쟁에서 아테네의 세금은 높아졌고 소작농은 땅을 버리고 도주했다. 빈 땅은 귀족들이 차지했다. 귀족들은 대규모 영지를 노예와 이민족을 동원하여 경작했고 농업의 효율성은 떨어졌다. 


영주들은 면세 특권을 이용하여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아테네는 부족한 세금을 충당하기 위해 농부에게 부과하던 세금을 다시 올렸다. 이는 더 많은 농부들이 땅을 버리고 도주하거나 농노로 전락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고 결국 그리스 농민군이 붕괴됐다. 그리스는 국가가 세금으로 망하는 일반적인 공식으로 무너졌다.


아테네는 위기 상황에서 동맹을 과도하게 착취하면서 동맹마저 잃어버렸다. 아테네의 강압적인 조공에 시달린 동맹은 제국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잃어버렸다. 아테네는 인구, 부, 해군력에서 스파르타를 압도했지만 승리할 수 없었다. 전쟁은 아테네의 항복으로 끝났다. 그러나 붕괴된 경제 및 사회 안정은 회복할 길이 없었다. 스파르타는 전쟁에서 이겼지만 조공없이 그리스를 통합할 능력이 없었고 이 공백기를 이용하여 북부의 마케도니아가 쇠약해진 아테네를 격파하고 그리스를 통일하게 된다. 민주주의 그리스가 패망하고 알렉산더가 이끄는 제국주의 그리스가 등장 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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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패망은 현명하지 못한 조세정책의 결말을 잘 보여준다. 국가의 장기적인 성공은 다수에게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 농업이 주된 사회에서 경제적 기회는 토지 배분에 있다. 그리스 말기와 후기 로마제국에서 보여주듯이 소수 귀족이 토지를 독점하게 되면 그 결과는 항상 치명적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경제 및 정치적 안정이 사라지고 국가가 쇠퇴하게 된다.


보편적 정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 조세 제도는 실패작이다. 조세 평등은 신분에 따라 달라졌다. 외국인은 제외됐고 그리스 시민만이 직접세에서 면제되는 특권을 누렸다. 정부 지도자는 가벼운 세금을 납부했다. 이는 민주주의에서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 투표권이 없는 사람을 부당하게 과세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 민주주의는 자신만의 민주주의였다. 그리스는 이웃 국가에 제국으로 군림했으며 조공을 강요했다. 그리스는 찬란한 문화를 세계에 전파했지만 민주주의와 조세제도는 예외였다.



참고 문헌

Sapiens (Yuval Noah Harari, HarperCollins Publishers, 2015), The Collapse of the Family and the Community, page 357-358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Public Revenue, page 65-69, Fight Flight Fraud (Charles Adams, Euro-Dutch Publishers,1982), Proposition 13: Format for reform, page 283-284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The Ingenious Greek: Tyranny and Taxes, page 53-63, Public Revenue, page 71-73

Fight Flight Fraud (Charles Adams, Euro-Dutch Publishers,1982), The ingenious Greek, page 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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