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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Apr 05. 2023

세금으로 잃은 자유, 로마

로마제국은 정복으로 부를 창출했다. 정복은 부를 쉽게 만들지만 전리품과 조공이 사라지면 위기가 시작된다. 정복으로 사는 것은 날카로운 칼 위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초기 로마는 합리적인 수준의 조공으로 안정적인 통치와 평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로마에 조공을 바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로마군이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때문에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다. 조공은 평화유지 비용이었다. 로마는 정복한 지역의 세금을 그대로 유지했다. 세금이 면제되던 지역은 세금을 면제하고 추수세 10%가 부과되던 지역에는 그 세금과 세율을 그대로 유지했다. 관세 또한 정복하기 전 세율을 그대로 유지하여 스페인에서는 2%였고 시실리에서는 5%였다. 로마인은 정복지에서 조세농부 사업을 할 수 없었다. 로마는 정복지 주민에게 익숙한 조세의 종류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체제의 안정을 가져왔다.


***

로도스(Rhodes) 섬은 터키 해안에 인접한 큰 섬이다. 기원전 4세기 해상 강국 아테네가 몰락하면서 이 섬은 지중해 상업과 교류의 중심으로 발전했다. 로도스가 해상 교통에 유리한 지정학적 위치를 기반으로 선박의 안전과 평화를 제공하자 무역선들이 모여들었다.


로도스는 2%의 관세(항구세)를 징수했다. 항구세는 선박에 적재된 모든 화물에 대하여 과세했기 때문에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해적의 출몰이 심한 지역을 통과하는 선박은 10%의 항구세를 징수했다. 로도스는 항구세 수입으로 해상 치안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전성기에는 항구 입 구에 세계 7대 불가사의인 거대한 청동상을 세울 수 있었다.


로마는 로도스에 시리아 지방의 조공 국가를 할애하여 주었고 특혜를 받은 만큼 우방의 역할을 기대했다. 페르시아의 확산을 견제하는 방파제 우방을 기대한 것이다. 로마의 기대와 달리 로도스는 로마와 그리스의 전쟁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중재를 자처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로마는 전쟁 대신 자유무역이라는 기상천외한 무기로 로도스를 응징했다. 


로마는 델로스(Delos) 섬에 로도스에 필적하는 자유무역항을 세우고 관세를 면제했다. 관세를 징수하는 로도스의 무역거래는 자연스럽게 위축됐다. 델로스가 세워지고 1년이 지나자 로도스의 무역거래는 85%나 줄었고 항구세 수입은 은화 1백만에서 15만 드라크마(drachmas)로 줄었다. 로도스는 청동상을 무너뜨린 지진 피해는 극복하고 재건할 수 있었지만 무너진 재정 손실은 회복할 길이 없었다.


로마는 이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해상 치안의 중요성을 잊은 것이다. 로도스가 재정 파탄으로 해상 순찰을 중단하자 해적들이 출몰했고 해적들은 지중해 동부의 해상무역을 불능상태로 만들며 자신들의 왕국을 구축했다. 로마 원로원은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폼페이우스에게 전권을 부여했고 그는 해적 소탕에 성공했다.


폼페이우스는 이후 갈리아 지방을 평정한 카이사르와 함께 군사력으로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린다. 이는 공화정 말기 장군들이 현지에서 징수한 세금을 자기 돈처럼 횡령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원칙적으로 조세수입은 원로원에 보고하고 국고에 보관하여야 했지만 이 규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장군들은 징수한 세금을 병사의 충성을 사기 위해 정치적으로 사용했다. 그 결과 병사들은 로마의 군인이 아니라 슐라, 폼페이우스, 카이사르의 사병으로 전락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군주가 현명하고 공정하다면 가장 좋은 정부 형태는 절대군주제라고 했다. 이 말은 아우구스투스 같은 지도자를 염두에 두고 한 말로 보인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내전을 수습했고 조세에 안정을 가져왔다. 그는 제1시민(First Citizen)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지만 실질적으로 권력을 독점했다. 그는 로마 시민에게 빵과 오락을 제공했다. 직업 군인에게는 보수와 연금을 지급하면서 공공시설을 개선하는 일을 책임졌다.


아우구스투스는 문제가 많았던 조세농부 제도를 폐지해 조세수입을 직접 통제했다. 이는 민심을 잃고 원흉의 대상이었던 조세 제도를 개선하는 효과도 있었지만 주목적은 황제의 재정 통제 강화였다. 조세농부는 원 로원과 계약하고 통제를 받았으므로 이를 폐지하면 원로원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었다. 조세농부의 폐지는 원로원이 가진 재정 통제 권한을 황제가 가져오는 것으로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아우구스투스는 대대적인 인구조사를 실시했다. 인구조사는 로마제국에 있는 모든 사람과 재산을 등록하는 절차로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킹 제임스 성경에는 인구조사가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로마는 인구 및 재산에 대한 통계(Censor)를 바탕으로 각 지방에서 납부해야 할 세금 총액 만을 결정하고 세부 징수는 지방에 일임했다. 중앙정부의 조세농부는 사라지고 각 지방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징수했다. 일부 지방은 과거의 관습대로 조세 농부를 사용했고 일부는 10% 내지 20%의 수확세를 징수했다.


기원전 30년 아우구스투스에서 기원후 180년 아우렐리우스까지는 로마의 황금기였다. 이 기간 납세자의 이익은 잘 보호됐다. 기원후 35년 티벨리우스 황제는 세금을 올려 달라는 총독의 요청에 “양은 털을 깎는 것이지 가죽을 벗기는 것이 아니다.” 했다. 하지만 무리하게 세금을 징수하는 세리의 문제는 계속됐다. 


납세의무자가 도주하면 그의 가족을 잡아 고문하기도 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로마 초기에는 무리하게 세금을 징수한 세리를 잡아 현장에서 십자가형에 처했다. 흉년이 들면 조세 징수를 유예하여 민심이 폭발하는 것을 방지했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보너스를 요구하는 군인에게 “정기적인 임금 외에 보수는 여러분 부모와 친척의 피에서 강제된다.” 하며 이를 거절했다.


제국의 외연이 확장되던 시기 넘쳐나던 전리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다. 3세기 로마 재정은 세금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농민들은 지주에게 토지 임대료와 영지세를 납부하고 수확의 9%에 해당하는 십일조를 교회에 납부해야 했다. 귀족과 성직자는 면세됐기 때문에 세금은 전적으로 농부들이 부담했다. 흉년이 들거나 생필품 가격이 오르면 농부는 생업을 포기하고 도주했다. 조세수입이 감소하자 로마는 가장 쉬운 상대인 농민에게서 세금을 더 많이 거두었다. 이는 더 많은 농민들이 농업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로마제국이 몰락하는 시발점도 결국 농촌 인구의 감소였다.


로마는 재정수입을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채택했다. 조세 저항이 없는 화폐를 증발한 것이다. 로마의 은화인 데나리우스(Denarius)의 순도는 점차 낮아졌다. 로마 초기에는 은 함량이 100%였지만 210년에는 50%, 270년에는 5%로 떨어졌다. 물가는 자연스럽게 상승했다. 200년에는 밀 1부셀(bushel)을 사기 위해 10데나리우스가 필요했으나 344년에는 200만 데나리우스를 지불해야 했다.


통화 가치가 급락하자 병사들은 법정 화폐 데나리우스(Denarius)로 급료를 받는 것을 거부했다. 세리 또한 데나리우스로 세금을 받는 것을 거절하고 현물을 징수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급료로 지역화폐 또는 현물을 선호했다. 인플레이션으로 통화가치와 함께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강도와 해적이 난무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245~313) 황제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사형까지 동원하여 물가를 안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물가가 통제불능 상태에 이르자 결국 황제는 화폐 제도를 포기하고 대신 밀, 보리, 고기, 와인, 의류 등 현물로 세금을 징수했다. 현물로 과세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징세 조직이 더 필요했다. 세금으로 걷은 곡물을 운반하고 보관하는 조직, 곡물 창고와 운송 수단을 관리하는 조직, 이들의 부패를 감시하는 조직뿐 아니라 지역 간 곡물 수요를 조절하는 조직까지 필요했다. 


조세 개혁으로 괴물 같은 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로마 말기에는 세리의 수가 납세자보다 더 많았다는 기록도 있다. 비대한 관료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세금이 필요했다. 기번(Gibbon)은 로마의 관료 제도를 ‘그 자체의 무게로 무너진 놀란 만큼 큰 의류’라고 비유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 시민이 누리던 거주 이전의 자유도 제한했다. 과도한 조세로 농부가 도주하면 세금을 징수할 수 없기 때문에 농부와 그 가족은 토지에 종속되어야 했다. 농민의 주거 이전을 제한하면서 로마 제국에는 중세 농노 제도의 씨앗이 뿌려졌고 시민들은 노예로 전락했다. 조세 개혁으로 로마가 자랑하던 자유로운 시민 제도가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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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징수를 위해 폭력은 당연하게 사용됐다. 세리는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농민을 고문했다. 어린이와 노약자도 성인으로 등록돼 조세를 납부해야 했다. 세리는 탈세의 증거를 찾기 위해 부인이 남편을, 자녀가 부모를, 노예가 주인을 고발하는 것을 장려했다. 기독교 탄압도 재정수입을 만들었다. 기독교인을 처벌하는 명령서에는 “교인의 재산을 국고에 귀속시킨다.” 또는 “교인의 재산을 국고에 귀속시키고 광산으로 보낸다.”라고 쓰여 있다.


말기 로마는 비대해진 관료 조직과 50만 이상의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더 올릴 수밖에 없었다. 로마 초기 10%였던 수확세는 33%까지 높아졌다. 이를 감당하기 힘든 농부들은 도주를 선택했다. 농부가 도주하면 이웃집 농부가 책임져야 했다. 세리가 도주한 농부의 토지 경작과 세금을 이웃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조세부담이 두려운 농부는 자신의 토지를 대지주에게 넘기고 농노가 되어 납세의무를 면제받았다. 토지 소유를 넘긴 농부는 같은 집에서 자고 같은 땅을 경작하면서 지주에게 소작료를 납부했다. 중세 봉건제도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로마를 붕괴시킨 탈세는 대지주가 주도했다. 대지주는 면세특권을 누렸다. 일반 지주는 뇌물을 주고 토지의 평가 금액을 낮추었다. 조세 사면령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로마는 붕괴를 앞두고 조세 사면령을 남발했다. 조세 사면령은 미납된 조세를 없던 것으로 만든다. 


사면령이 유행하자, 지주들은 조세 납부를 미루고 원로원에 로비하여 조세를 사면 받았다. 상원의원에게 면세 특권을 주는 대신 부과하던 세금인 글레바(gleba)도 상속세 및 판매세와 함께 폐지됐다. 로마는 귀족들의 로비로 재정수입이 고갈되어 스스로 퇴락했다. 이들 귀족은 중세 시대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들은 자신의 영지에 성을 쌓아 작은 왕국을 건설했고 소작농을 농노로 전락시켰다. 이들 탈세범의 이름은 봉건영주이다.


병역비리 또한 로마의 붕괴에 기여했다. 로마는 공식적으로 징병을 면제해 주는 세금이 있었다. 세금은 금화로 납부해야 했기 때문에 부자만이 병역을 면제받았다. 로마의 영주들은 형편없는 문제아나 병든 노예를 사서 군대로 보냈다. 이를 통해 영주들은 최고의 일꾼을 보호하고 나쁜 일꾼을 제거했으며 조세부담을 최소화했다. 출신이 좋은 군인들은 이탈리아 반도에 배치받았다. 따라서 최일선 부대는 사회의 이단아 또는 이민족 용병으로 채워졌다. 로마제국이 삼류 군대인 훈족과 반달족에 농락당하고 455년에는 로마까지 약탈당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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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는 국가의 흥망에는 일반적인 원인이 있으며 국가가 한 번의 전투에서 무너지는 것은 일반적인 원인에 의해 병약해졌기 때문이라 했다. 로마는 과도한 세금으로 시민들이 도주하거나 농노로 전락하여 조세 기반이 무너지고 귀족들의 조직적인 탈세로 국가부도 상태였다. 재정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세금을 현물로 징수하고 더 많은 관리를 채용했지만 부패와 무능이 발목을 잡았다. 일부 황제가 문제를 개선하고자 했지만 제도 자체의 개혁보다는 세금을 과도하게 징수하는 세리 처벌, 회계 감독 등 피상적인 개혁 수준에 머물렀다.


로마 몰락 이후 정체됐던 유럽은 봉건영주들이 노예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면서 발전했다. 영주들은 농업 노예 대신 일정 수확량을 받고 농지를 분할해 주는 소작 농노 제도의 장점을 발견했다. 새로운 제도에서 농노는 일정 수확량만 납부하면 됐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과 노력으로 농업 생산을 늘리고자 했다. 총생산량이 증가하자 소작 농노를 보유한 영주의 소득도 증가했다. 보이스(Bois)는 기원후 1000년경에 일어난 변화가 농업 노예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역동적인 생산이 가능한 소작 농노의 시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유럽은 농업생산을 기반으로 부흥하게 된다.



참고 문헌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The Early Republic, page 84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Augustus: Master Tax Strategist, page 97-109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Rome Falls: Was it Tax Evasion, page 125-126, Fight Flight Fraud (Charles Adams, Euro-Dutch Publishers,1982), The Kaleidoscopic Romans, page 55-97

A people’s history of the World (Howard Zinn, Verso 2017), European Feudalism, page 143-144,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Rome Falls: Was it Tax Evasion, page 119-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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