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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Apr 15. 2023

세금은 이교도에게

636년 이슬람군은 유대 지방을 점령하고 세금을 거두었으나 로마군이 대규모로 진격해 왔다. 이슬람군은 급하게 철수해야 했고 이 상황에서 이슬람 지도자는 세리를 불러 기독교인과 유대인에게서 징수한 세금을 돌려주라 했다. 인두세는 평화를 유지하는 대가로 받는 세금이므로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면서 세금을 거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이 조치에 감동한 기독교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신의 가호로 당신들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유대인은 율법과 선구자의 힘으로 우리의 생명이 있는 동안 로마가 다시는 이 도시를 점령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기독교가 유럽에서 뿌리내리기까지는 30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슬람은 100년 만에 강력한 종교로 자리 잡았다. 이슬람의 성공은 “이교도에 죽음을!”이라 알려진 이슬람의 잔혹성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으나 이보다는 조세정책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이슬람은 7세기 과도한 세금으로 억압받던 로마와 페르시아 통치 지역 주민들을 해방했다. 새롭게 등장한 이슬람은 타락한 로마보다 더 적은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다음 세계에서 천국을 보장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었다. 이슬람군은 수적으로 열세인 경우가 많았으나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고 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대부분의 도시들은 이슬람에 저항하지 않았다. 세금은 이슬람이 초기에 승승장구한 이유였다.


이슬람의 등장에는 시대의 특혜도 있었다. 무함마드(Muhammad)가 신의 계시를 받기 전부터 로마와 페르시아는 유스티니아누스 역병(Plague of Justinian, 540~800)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역병으로 콘스탄티누스에서 매일 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 역병은 10년 주기로 재발하여 면역 능력이 없는 젊은 층을 위협했으며 상거래와 경제활동을 위축시켰다. 이슬람은 역병의 침투가 어려운 사막에 위치했고 인구 밀집도가 낮아 역병 피해가 거의 없었다. 로마와 페르시아는 이 와중에도 예루살렘 등에서 엄청난 전쟁을 치렀다. 두 제국은 역병과 전쟁으로 국력이 쇠퇴하여 새롭게 부상하는 이슬람 세력을 견제할 힘이 없었다.


이슬람이 승승장구한 또 다른 이유는 효율적인 수입 배분 시스템에 있었다. 무함마드는 충성과 복종의 대가로 금전을 보상했다. 그는 이교도에게서 몰수한 재산을 군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슬람은 630년 약탈한 재산을 분배하는 공식 기구인 디완(diwan)을 설립했다. 디완은 종교지도자인 칼리프(Caliph)에 약탈한 재물의 20%를 넘기고 나머지는 전쟁의 공과에 따라 병사들에게 나누었다. 이는 이슬람 전사에게 싸움의 동기를 부여했다. 이슬람 정복이 확산되면서 전사들은 많은 수입을 올리었고 엄청난 부수입은 새로운 전쟁을 자극했다.


초기 이슬람은 정복민을 개종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슬람 지도자는 오히려 다른 민족이 이슬람을 믿는 것을 장려하지 않았다. 종교적 차이를 인정한 대신 이교도에게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피정복민에게 죽음, 세금, 개종 세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이슬람은 이교도가 인두세(Jaliya)를 납부하고 이슬람 남성을 폭행하지 않으며 여성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안전과 평화를 보장했다. 이교도는 자신의 종교를 자유롭게 믿을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아무리 낮은 세율이라 하더라도 이슬람은 세금을 싫어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본능을 통제할 수 없었다. 개종은 확실하게 세금을 면제받는 길이었기 때문에 이슬람의 폭력보다 세금이 더 많은 개종을 가져왔다. 세금은 기독교인이 다수였던 이집트, 북아프리카와 스페인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배화교가 지배하던 페르시아 사람들도 세금 때문에 개종했다. 결과적으로 이교도에 부과한 세금이 무력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개종을 가져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금을 납부하는 이교도들이 부족해졌고 재정수입은 고갈됐다. 수입이 부족한 이슬람은 결국 신과의 약속을 포기했다. 복음의 전파와 세금의 갈등에서 이슬람은 주저없이 돈을 선택했다. 그제야 종교로서 이슬람은 확장을 멈췄다.


이슬람은 페르시아의 관습에 따라 납세영수증을 사람의 목에 새기기도 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굴욕이라 비난했지만 장점도 있었다.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새겨진 영수증은 잃어버릴 수 없는 조세 납부기록이다. 여행 중 납세영수증을 잃어버리고 오가지도 못하던 유대 상인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편지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납세영수증이 필요하니 빨리 만들어 보내 달라는 애원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슬람 세계에서 납세영수증은 이교도에게 여권과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부패했고 스페인에서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국가를 망하게 하고, 토지 경작을 중단시키고, 백성을 파탄에 빠트리며 세금 납부를 중단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재와 착취이다. 농부들이 토지를 경작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지도자는 배가 고프다고 자신의 살을 베어 먹는 사람과 같다. 이슬람은 세리를 파견하여 매월 군비를 강제 징수함으로써 백성들이 농지를 버리고 도주했다. 결과적으로 재정수입은 감소했고 군대는 약해졌으며 적들이 이슬람 땅에서 강성하여 많은 영토를 차지했다.” 천 년 전에 쓰인 이 기록에 의하면 이슬람은 험준한 피레네 산맥을 넘지 못하여 몰락한 것이 아니라 과도한 세금으로 무너졌다.


이슬람 종교 지도자 칼리프(Caliphs)는 호화스러운 궁전과 후궁을 짓고 금은보화로 치장했다. 그러나 칼리프는 조세 징수를 지방의 술탄에게 맡기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칼리프 자신의 선택으로 권한 없는 상징적인 정신지도자가 된 것이다. 지방의 술탄은 징수 금액의 80%를 가지고 나머지 20%를 칼리프에게 지급했다. 효율적인 재정 통제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는 술탄은 20%마저 제대로 납부하지 않았다. 재력을 확보한 술탄은 칼리프 못지않은 궁전을 짓고 후궁을 들이는 등 사치를 누렸다.


탐욕스러운 술탄이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하면서 조세에 대한 불만이 이슬람 제국으로 퍼졌다. 인두세는 금 1디나르(Dinar)에서 4디나르로 늘어났으며 수확세 25%는 모든 사람을 조세의 노예로 만들었다. 이슬람군은 억압적인 조세의 해방군이 아니라 폭력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세리로 변했다. 파피루스 기록에 의하면 이집트 이교도는 세리에게 절을 하고 세금을 납부하면서 목을 두들겨 맞았으며 경비원에 의해 쫓겨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슬람은 세금으로 흥했지만 스스로 세금으로 쇠퇴했다.


참고 문헌

The Silk Roads (Peter Frankopan, First Vintage Books Edition 2017), The Road to Revolution page 74-76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Islam: Death or Taxes for the Infidel, page 131-141, 

Fight Flight Fraud (Charles Adams, Euro-Dutch Publishers,1982), Islam: Death or Taxes for the Infidel! page 10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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