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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May 05. 2023

나쁜 제도, 거만한 세관원

미국 독립운동은 영국의 오만과 잘못된 판단이 촉진했다. 미국은 영국군 주둔과 조세의 직접 징수에 대해 영국이 자신을 식민지처럼 통치한다는 반감이 있었다. 영국은 군대 주둔 비용을 미국 지방의회에 요청하여 분담하도록 할 수 있었지만 조세의 직접 징수를 고집했다. 


미국의 반발은 상당했다. 가장 큰 타격은 불매운동으로 인한 영국의 수출 감소였다. 영국의 대미 수출은 2.4백만 파운드에서 1.6백만 파운드로 줄었으며 미국에서 자국산업을 육성하자는 운동과 경쟁국 제품의 밀수가 더욱 성행하게 됐다. 초기 미국은 분리독립까지 생각하지 않았지만 영국의 계속된 오판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영국은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크게 보고 타협하는 대신 미미한 재정수입을 얻기 위해 억압적인 통치를 강화했다.


미국 독립운동은 조세 자체보다 조세의 억압적인 집행이 원인 일 수 있다. 정착민들은 영국의 사법제도를 통해 권리를 보호받았다. 배심원은 법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면 무죄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 미국 배심원은 밀수를 나쁜 세금에 대한 저항으로 보았고 대부분 무죄판결을 내렸다. 


미국에서 밀수는 성행했고 영국의 재정 이익은 심각하게 침해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은 처벌을 강조하는 나쁜 법을 계속 만들었고 이 법에 대한 반감이 흩어진 식민지 미국을 뭉치게 했다. 미국 건국자는 계몽사상에 영향을 받아 나쁜 법, 특히 나쁜 세금에 대해서 저항할 신성한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미국 정착민의 이러한 믿음을 촉진한 것은 나쁜 세관원이었고 처벌을 강조하는 나쁜 법이었다.


영국은 밀수를 처벌하기 위해 1764년 설탕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모든 조세 사건을 종전 배심원이 주도하는 지방법원에서 핼리팩스(Halifax)에 있는 해군법원으로 이관했다. 따라서 밀수범들은 더 이상 미국 배심원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됐으며 해군법원 판사는 지방법원 판사보다 매수가 어려웠다. 재판을 받기 위해서 핼리팩스까지 가야 한다는 문제도 있었다. 설탕법 이전 밀수 사건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됐다. 무죄 판결을 받은 피고는 세관의 기소에 문제가 있다며 민사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다. 설탕법은 이러한 민사소송을 금지했고 밀수신고자에게 몰수한 자산의 1/3까지 포상했다.


설탕법은 무역상을 잠재적 밀수범으로 취급했다. 단속이 강화되면서 수입상과 선박은 복잡한 규정에 옥죄었다. 선박과 수출입 화물은 조그마한 절차 위반에도 압수됐다. 선원 개인용품도 신고하지 않으면 몰수했다. 영국 해군은 압수된 선박과 물품의 판매에서 나오는 수익을 나누어 가졌다. 이는 해군에게 해적 면허를 발급한 꼴이 됐다. 해군은 밀수 여부를 불문하고 부적절한 서류만으로 선박 및 물품을 적극적으로 압류했다.


설탕법은 밀수로 죄지은 사람보다 죄 없는 사람을 더 많이 처벌했다. 영국은 여기에 더하여 조세 법원이 발부하는 집행영장(Writ of Assistance)의 발급을 쉽게 했다. 세관원은 과거 법원에 선서하고 특정 장소에 밀수가 있다는 것을 증언하고 영장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설탕법은 선서 절차를 폐지하고 세관 스스로 영장을 발부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 세관 순시선 게스피(GASPEE)호 사건은 민심에 이반하는 단속의 결말을 잘 보여주었다. 게스피호는 호전적인 선장에 의해 운영됐다. 그는 모든 선박에 승선하여 철저하게 수색했고 비협조적인 선박을 폭파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는 로드아일랜드주에서 저주의 대상이었다. 


게스피호가 순시 중 좌초되자 주민들은 복수를 위해 몰려들었다. 인근에서 8척의 선박이 몰려왔고 주민들은 게스피호를 공격하여 선장을 상해하고 배에 불을 질렀다. 이 사건에 놀란 영국은 500파운드의 현상금을 걸고 청문회를 열었으나 제보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영국은 관계자를 찾아 엄벌하겠다 엄포했지만 단서가 없어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주민들은 누가 영웅인지 알고 있었지만 영국은 범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사건을 종결해야 했다.


거만하던 보스턴 세관원도 미국 혁명에 기여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1773년 영국 세관 직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세금을 지겹게 하고 저항을 더 크게 하기 위해 영국에서 가장 비열하고 교양 없는 직원을 선발하여 미국으로 보냈다. 세관 직원이 일말의 친절함이라도 보이면 해고하고 민원을 일으키면 승진시킨다.”라고 했다.


세관의 강압적인 태도는 많은 반발을 가져왔다. 보스턴에서 가장 큰 선주인 핸콕(John Hancock)은 세관 직원이 자신의 선박을 검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768년 핸콕은 자신의 선박 리디아호(Lydia)에 세 관 검사를 거부했다. 세관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핸콕의 다른 선박인 리버티(Liberty)호에 기술적인 문제를 걸어 선박을 압수하고 기소했다. 세관은 리버티 호를 영국 해군 함정 옆에 보관했다. 성난 보스턴 시민의 습격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폭도들에게 습격당한 세관장은 영국 군함으로 어렵게 피신했고 영국에 추가 파병을 요청했다.


세간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지만 핸콕의 재판은 증거 부족으로 싱겁게 끝났다. 핸콕은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시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영국은 사태를 진압하고자 병력을 추가로 파견했고 이후 보스턴 학살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핸콕은 일련의 과정에서 독립운동을 이끌었고 독립 선언서에 최초로 서명한 인물이다. 반면 캐나다는 세관원의 부패와 부당함을 묵과하지 않던 총독 덕분에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

독립전쟁에서 미국은 전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체계적인 보급은 곤란했고 급료를 지급할 돈도 없었다. 병사들은 오합지졸이었지만 영국 또한 육상에서 장기전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다. 영국은 9만 명이 넘는 병력을 투입했지만 병력과 물자 모두를 대서양을 건너 수송해야 했다. 


영국을 도와주는 우군은 아무도 없었다. 영국은 적대적인 땅에서 전쟁을 수행했고 넓은 식민지에서 병력을 분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상황은 악화됐다. 영국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싸우고 있는 군인들이 필요로 하는 식량, 무기 등을 본국에서 적기에 공급하기 어려웠고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했다. 6년 간의 전쟁에서 빈약한 미국이 영국에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전쟁 상황은 1777년 영국군 8,000명이 사라토가(Saratoga)에서 항복하면서 반전됐다. 프랑스는 영국이 패하면서 완화된 조건으로 미국과 평화협상을 체결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미국과 영국이 적대적이기를 바라는 프랑스는 신속하게 신생국 미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동맹을 맺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미국을 도와 참전했다. 이들은 카리브해와 플로리다를 점령함으로써 영국군을 분산시키고 보급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네덜란드 또한 반군을 지원했고 러시아는 영국의 해상봉쇄를 문제 삼았다. 프랑스는 미국에 엄청난 병력과 자금을 지원했다. 미국은 대륙의회(Continental Congress)를 통해 전쟁을 지휘했으나 재력 없는 허수아비였다. 대륙의회는 전쟁 부채에 대한 이자는 물론 참전 용사의 보수조차 지급할 능력이 없었다. 대륙의회는 전후 복구계획을 발표했지만 세금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미국 초대 재무부장관이었다. 그는 관세 수입으로 재정을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위스키에 물품세을 부과하도록 의회에 요청했다. 그는 위스키에 대한 세금은 사치세이며 술 소비를 줄여 국민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위스키에 세금이 도입되자 펜실베니아 주에서 위스키 반란 1791~1794이 일어났다. 


당시 서부 개척지는 도로망이 없어 곡물 운송이 어려웠고 유통되는 화폐도 없었다. 농부들은 호밀을 재배하고 이를 가볍게 운송하기 위해 위스키를 만들어 판매했다. 위스키는 사치품이 아니라 화폐와 같은 교환 수단이었다. 농부들은 위스키 세금 25%에 항의하여 세리를 습격하고 폭행했다. 폭도의 입장에서 남부의 농민은 목화와 담배에 물품세를 납부하지 않는다. 목화와 담배를 제외하고 호밀에 대한 과세는 형평에 어긋난 세금이었다. 이 폭동은 워싱턴 대통령이 민병대를 이끌고 무력 시위하면서 마무리됐다.


위스키 반군은 물리적 충돌 없이 사면 조건을 받아들이고 항복했다. 미국은 워싱턴이 조세 반란에 강력하게 대응했다고 칭송하고 있으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조세반란으로 체포된 20명의 반군 중 2명만이 반역혐의로 기소됐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워싱턴은 이들을 곧 사면했다. 이후 제퍼슨(Jefferson) 대통령은 위스키에 대한 세금을 폐지했다. 조세 반군은 세금을 폐지하고자 하던 자신의 목적을 별다른 희생 없이 달성했다.


미국에서는 이후 참전 용사들이 조세에 반대한 1786~1787년 쉐이(Shay’s) 반란이 있었고, 부동산 과세에 반대하는 1798년 프라이스(Fries) 반란 등도 있었다. 하지만 주동자들은 사면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미국의 독립 전쟁도 조세 반란이라 할 수 있다. 제퍼슨 대통령은 조세 반란은 정부에 필요한 강장제라 했다. 그는 1785년 메디슨(Madison)에게 보낸 편지에서 국가는 20년마다 폭동이 필요하다 했다. 또한 국가는 치료가 필요한 관료주의의 병폐를 지적해준 폭도를 엄하게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 했다. 폭동은 ‘건강한 정부를 위한 약’이라고 했다. 그는 편지의 마무리에 ‘평화로운 노예보다는 위험한 자유’라는 교훈을 적었다.


***

독립 이후 미국은 연방정부 수입을 확보해야 했다. 직접세는 몽테스키외가 경고하듯이 필연적인 독재를 가져오는 세금이었다. 제임스 메디슨은 직접세는 예외적인 비상시에만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직접세 제도를 채택하면서 이를 완화하는 분배(Apportionment)의 원칙을 도입했다. 독립제정의회에서 분배의 원칙은 난관에 부딪쳤다.  주 별로 연방정부에 내는 세금을 분배하는 기준이 문제가 됐다. 분배는 각 주의 자산에 기초하여 세금을 안분하는 것이 맞지만 노예 제도가 발목을 잡았다. 당시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자산이었고 남부 인구의 40%가 노예였다. 노예를 자산으로 과세하면 남부에 과중한 세금이 부과된다. 남부는 자산을 기준으로 세금을 분배하는 것에 절대 반대했다. 하지만 남부는 유권자 수를 계산함에 있어 노예를 사람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북부는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노예를 유권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섰다. 정치적 타협 과정에서 제정 회의는 이상한 개념을 만들었다. 노예에 대한 직접세를 보통 사람의 3/5로 하고 하원의석을 배정하는 유권자 수를 계산함에 있어서도 3/5로 한다였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 책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참고 문헌

The March of Folly (Barbara W. Tuchman, 2014 Ramdom House Trade Paperback Edition), Remember Rehoboam: 172-75, page 205-206, The British Lose America page 137-247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Tax Revolt in the Colonies, page 301-312, 

Fight Flight Fraud (Charles Adams, Euro-Dutch Publishers,1982), Tax Revolt in the colonies, page 207-217

The March of Folly (Barbara W. Tuchman, 2014 Ramdom House Trade Paperback Edition), A Disease; a Delirium: 175-83 page 232-234

Those Dirty Rotten Taxes (Charles Adams, Simon & Schuster 1998), There Were Giants in the Earth in Those days, page 19-20, Perfect Nonsense, page 28-43, On the Horns of the Dilemma, page 49-60, Tax revolts Against the Federalists, page 65-72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The Tax Struggle for “a More Perfect Union", page 315-327, 

Fight Flight Fraud (Charles Adams, Euro-Dutch Publishers,1982), The Tax struggle for “a more perfect Union”, page 22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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