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은 정치적으로 사용하기 좋은 도구이다. 과거 국가는 정적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여 재산을 빼앗았고 세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노예로 만들었다. 국가는 세금으로 종교를 탄압했고 조공(朝貢)이라는 이름으로 주변 국가를 착취했다. 세금은 반정부 세력을 억압하고 정부 비판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세법은 모든 위반을 범죄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을 공포와 테러로 억압하기 좋은 도구였다.
역사학자 귀차디니(ancesco Guicciardini) 르네상스시절 플로렌스에서 세금은 정적을 살해하는 단검처럼 사용됐다 했다. 는 정치 선진국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소련은 재정 범죄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시민을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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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artin Luther King) 목사는 1960년 2월 탈세 협의로 앨라배마에서 구속 기소됐다. 시민운동가 파크(Rosa Parks)가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체포되자 몽고메리에서 흑인들이 버스 보이콧 운동을 벌였다. 킹 목사는 저항 운동의 지도자였다. 킹 목사는 당시 정부에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앨라배마 주정부는 세금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부담스러운 인권 운동가를 침묵시키려 했다. 정부의 비밀 무기는 세법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이었다. 당시 킹 목사 수준의 저소득자를 세무 조사하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주 정부는 킹 목사가 테러당하여 입원했을 때 후원받은 병원 치료비를 선물이 아니라 소득이라고 새롭게 해석했다. 또한 킹 목사가 인권운동을 위해 연설하고 받은 사례금(Honorarium)을 소득으로 신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앨라배마 정부는 3년 동안 부족 세액 1,722달러를 추징했고 킹 목사는 이 금액을 어렵게 납부했다. 그러나 주 정부는 허위소득신고로 그를 기소했다. 세무당국은 이에 더해 추징세액 1,722달러는 잘못 계산된 금 액이라면서 새로 결정된 세액 1,667달러를 추가 납부하라고 요구했다. 원칙대로 한다면 종전에 납부된 1722달러에서 차액 55달러를 환급해 주는 것이 정상이지만 의도적으로 괴롭히기 위해 추가 납부를 요구했다. 두 차례에 걸친 추징금 납부 요구와 보석 보증금 2,000달러는 킹 목사를 금전적으로 압박했다.
킹 목사 입장에서 탈세 기소는 최악이었다. 우선 킹 목사는 자신을 변호할 돈이 없었다. 앨라배마 주는 백인 우월주의로 유명했고 배심원은 전원 백인으로 구성됐다. 백인 배심원이 흑인에게 무죄를 판결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탈세라는 범죄 또한 인권운동가 킹의 명예와 도덕성에 치명적이었다. 유죄판결을 받게 되면 최대 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었다. 유죄판결은 킹 목사가 개인적으로 부도덕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을 전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킹 목사는 자신을 보호할 입증 서류가 없었다. 킹 목사와 같은 사람은 회계 기록을 유지하지 않고 개인 돈과 인권운동 기금을 섞어 쓰는 경향이 있다. 세무조사를 예상하지 못한 킹 목사는 보통 연설 사례금으로 1,000달러 정도를 받았으나 일부 실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인권운동 기금으로 기부했다.
주정부는 이 기금의 사용을 범죄로 만들고 싶어 했다. 킹 목사에 대한 6일간의 재판은 1960년 5월 종료됐다. 3시간 43분간 이루어진 배심원의 토의 결과는 모든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다. 예상 밖으로 무죄판결을 한 것이다. 흑인은 무조건 유죄라고 판결하던 백인 배심원의 전통이 깨어졌다. 결과적으로 배심원들은 흑인보다 자의적인 세금을 더 싫다고 판결한 것이다. 석방된 킹 목사는 “정부가 아무리 나를 억압하더라도 배심원은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미국은 킹 목사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계속했다.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는 1963년 10월 킹 목사에 대한 FBI 도청을 승인했다. FBI 요원들은 그의 납세 기록, 금융 기록, 해외 송금 내역을 샅샅이 뒤졌다. 킹 목사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세청은 킹 목사를 지원하는 기관을 세금이 면제되는 자선기관목록에서 제외했고 킹 목사에게 제공한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를 거부했다.
남부 정치인들은 흑인 인권운동을 지지하는 북부 언론을 침묵시키기 위해 소송을 적극 활용했다. 뉴욕타임지가 킹 목사를 변호하는 비용을 모금하는 광고를 게재하자 몽고 메리 공보관은 명예훼손죄로 뉴욕 타임스를 고소했다. 앨라배마 주지사도 명예훼손죄를 활용하여 언론을 고소했다. 비판적 기사를 쓴 기자들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이는 현재 소송을 남발하는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과 비슷하다. 이때 미국에서 확립된 판례가 정부 관료는 업무와 관련하여 악의적인 보도가 아니면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였다. 킹 목사는 인권운동으로 1964년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지만 킹 목사에 대한 탄압은 1968년 4월 그가 암살될 때까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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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치 1번지 워싱턴 D.C. 국립미술관에는 얀 반 에이크의 〈수태 고지〉, 산드로 보티첼리의 〈동방박사의 경배〉, 티치아노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 렘브란트의 〈화려한 의상의 귀족〉 같은 희귀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국립미술관은 당시 유명 정치인이자 금융가이던 멜론(Andrew W. Mellon)의 고귀한 뜻으로 설립됐다. 멜론은 자신이 평생 수집한 미술품을 대중에게 되돌리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이를 의회가 받아들여 만들어졌다. 이는 국립미술관의 공식 설명이다. 하지만 멜론의 고귀한 뜻 뒤에는 세금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과 갈등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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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대공황 중 스탈린은 자국이 보유한 미술품을 헐값에 팔았다. 재정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시장에서 최고의 예술품을 싸게 판 것이다. 멜론은 사적으로 미술품 25점을 7백만 달러를 주고 구입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러시아와 무역거래를 반대했지만 자신의 거래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7백만 달러는 당시 미국이 러시아에서 수입하던 금액의 1/3이었다.
멜론은 러시아 미술품 구입에 돈을 낭비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1932년 재무부장관에서 물러났다. 후버 대통령은 그를 영국 대사로 임명했다. 멜론은 구입한 미술품을 외교행랑으로 숨겨 들여왔고 이 그림이 워싱턴 국립미술관의 기반이 됐다.
대공황기 루스벨트 대통령은 새로운 정책을 입안하고자 했다. 그의 눈에 전직 재무장관 멜론은 구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멜론은 이전 11년간 재무장관으로 야당 인사와 정적을 세무조사로 탄압한 인물이었다. 멜론은 실제 성공한 금융사업가로 카네기, 록펠러에 비견되는 부자이기도 했다. 루스벨트는 멜론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루스벨트는 멜론을 거부이며 나쁜 지도자라 했다.
후임 재무장관은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그는 1933년 최고의 전문가를 선발하여 멜론을 세무 조사했다. 검찰 총장은 법에서 보장하는 납세 요청이나 이의신청 절차를 생략하고 1934년 멜론을 소득허위신고로 기소했다. 그는 이 재판이 개인의 부패 문제가 아닌 민주주의와 특권층에 대한 심판이라고 했다. 검찰총장의 부당한 기소에 대하여 배심원이 기소를 거부하자 재무장관은 부족한 세액과 벌 금 3백만 달러를 추징했다.
세무조사에서 멜론의 약점은 주식 가격의 저평가와 자기가 설립한 자선단체에 미술품을 기부하고 세금을 공제받은 것이었다. 루스벨트가 새로운 세무 조사를 계획하고 있을 때 멜론은 공개적으로 2,500만 달러 상당의 미술품을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기증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후에도 국립미술관 건설에 현금 15만 달러를 지원했고 더 많은 예술품을 기증했다. 멜론은 1941년 개관된 국립미술관에 총 121점의 그림과 21점의 조각을 기증했으며 세무조사는 유야무야 사라졌다. 멜론은 카네기홀과 같이 자신의 이름을 딴 멜론 미술관을 남기고 싶어 했지만 세무조사로 인해 그 이름이 국립미술관으로 바뀐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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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다른 정치 시스템을 가진 소련은 일반 시민에 대한 통제가 더 필요했다. 일반 시민에 대한 통제는 비밀경찰 KGB가 담당하지 않았다. 소련에서 일반 시민에 대한 통제는 재정 범죄를 통해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의사는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 암시장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약을 처방했다. 환자는 암시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이는 재정 범죄에 의한 처벌대상이다. 문제는 이 내역을 국가가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국영점포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매번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이유로든 체포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 체포될 확률은 낮았지만 시민들은 항상 죄의식에 쌓이게 된다. 러시아 사람 모두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어 항상 체포될 수 있다는 공포와 강박감에 시달렸다.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사람은 권력에 약할 수밖에 없다. 독재국가에서 가장 효율적인 통제 수단은 사람들을 항상 불법적인 상태에 놓아두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 모스크바 지점장이었던 데이비드 시플러(David Shipler)는 “러시아 시민은 항상 불법의 상태에 놓여 있다. 시민들은 언제든지 체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권력의 입장에서는 최고이다. 죄의식을 가진 사람 들은 국가의 지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생활은 항시 불법으로 둘러 쌓여있고 언론은 가볍거나 무겁거나 심각하거나 독창적인 모든 범죄를 비난하고 있다. 인위적인 범죄와 진짜 범죄가 서로 섞여 범죄의 개념이 애매하고 혼란스러워지며 사람들은 불명예스럽게 이를 범죄로 받아들이게 된다.” 재정 범죄를 활용하는 것은 러시아 같은 독재국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민주국가에서도 일정 수준의 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세금 문제에서 항상 떳떳할 수 없다. 핵심은 모든 사람들이 법을 위반하고 있어 권력자가 세금이라는 범죄로 누구든지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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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신고에는 누가 어디서 얼마를 벌고 어디에 얼마 썼다는 개인정보가 있다. 과거 정치 실세들은 이러한 자료를 십분 활용했다. 세금을 부과할 힘은 파괴할 힘을 포함한다. 닉슨 대통령은 정적을 제거하는 무기로 국세청을 적극 활용했다. 그는 국세청에 인권 및 반전 운동가를 조사하는 특별조사관을 운영했다. 특별조사관은 3,000개 단체와 개인 8,000명의 조세 기록을 심사했다. 특별조사관은 탈세 자료와 유력 인사의 언론기사, 풍문 자료를 조직적으로 수집했다. 이들은 ‘작은마귀작전’을 통해 플로리다 주 정치인 30명의 성적 취향과 음주 습관을 조사했다. 백악관은 정치적 탄압 대상자의 명단(Blacklist)을 관리했고 국세청은 이 명단에 있는 사 람을 세무 조사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드러난 닉슨의 비밀 테이프는 국세청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려는 여러 가지 음모의 실체를 보여주었다. 닉슨은 자신의 심복을 국세청 차장으로 임명하여 국세청 내부의 조사 정보를 보고 받았다. 닉슨은 당시 청장인 워커(Johnny Walker)가 협조하지 않으면 새로운 청장을 임명하려 했다. 닉슨은 정치적 음모가 드러나지 않도록 그의 측근도 세무 조사했다. 측근들은 당연히 가볍게 처벌받았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닉슨을 반대하는 정치조직, 국회의원, 유명인사를 제거하고 처벌하기 위해 국세청을 동원했다는 것을 널리 알려주었다.
미국 국세청도 조직의 이익에 반하는 정치인을 제거하는 실력이 뛰어났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같은 직접 통제 방식이 아니라 납세신고 파일에 숨어 있는 개인 정보를 흘리는 방식으로 껄끄러운 상대를 제거했다.
상원의원 에드워드 롱과 조셉 몬토야는 1960년대 국세청의 잘못된 관행을 추궁하는 청문회를 추진하다가 물러나야 했다. 이들은 개인정보 유출로 마치 독재국가의 반체제 인사처럼 침묵을 강요당했다. 대법원 판사 포르타스(Abe Fortas)는 운이 더 나빴다. 존슨 대통령이 그를 연방대법관으로 임명하려 하자 국세청은 포르타스의 납세 파일을 라이프지(Life Magazine)에 흘렸다. 이 정보로 포트타스는 지명이 철회됐으며 법관 자리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느 착각" 책에서 가져왔습니다.
참고 문헌
The Swerve (Stephen Greenblatt, Norton & Company, 2011), Birth and Rebirth page 127
The Sex of a Hippopotamus (Jay Starkman, Twinser Inc 2008), Seditious Libel, page 234-236, Martin Luther King’s Tax Perjury Trial, page 230-234
The Sex of a Hippopotamus (Jay Starkman, Twinser Inc 2008), The National Gallery of Art, page 220-224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How a good tax goes bad, page 386-390
Those Dirty Rotten Taxes (Charles Adams, Simon & Schuster 1998), Putting On a Friendly Face, page 204-205,
The Sex of a Hippopotamus (Jay Starkman, Twinser Inc 2008), Watergate, page 236-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