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금만사 May 12. 2023

돈의 전쟁

전쟁에서는 영웅이 부각된다. 영웅은 용기와 지략으로 역경을 극복하고 위대한 승리를 가져온다. 국가는 전쟁 영웅을 부각해 후대에 교훈을 삼고자 하지만 영웅이 승리를 가져온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전설이다. 


역사적으로 전쟁에서 승패는 영웅보다 재정에 의해 결정됐다. 영웅은 한두 개의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지만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보장하기 어렵다. 적군에도 뛰어난 전쟁 영웅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대 부분의 전쟁은 끊임없이 자금을 조달하여 더 많은 병력과 물자를 투입한 국가가 승리했다.


**

근대 이전 전쟁은 돈으로 용병을 고용하는 소모전이었다. 적군이 가진 우수한 무기는 언제든지 구입하여 복제할 수 있었고 좋은 전술은 따라 배우거나 대응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 교전국들은 전투에서 실패와 성공 원인을 분석하고 자국의 전투 시스템을 끊임없이 개선했다. 


그 결과 전쟁은 누가 더 뛰어난 조세 시스템을 가지고 자금을 잘 조달했느냐에 의해 결정됐다. 돈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전비는 세금과 부채로 조달할 수밖에 없다. 과도한 세금은 폭동과 혁명을 일으킨다. 과도한 부채는 높은 이자와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역사학자 탤럿(Frank Tallett)은 1480년부터 1700년까지 220년 동안 영국은 29개, 프랑스는 34개, 스페인은 36개의 전쟁과 관련됐다 한다. 1610년 이후 1세기 동안 스웨덴과 합스부르크 제국은 매 3년 중 2년, 스페인은 매 4년 중 3년을 전쟁으로 보냈다. 이 기간 유럽 각국은 승리를 위해 더 좋은 총포를 만들고 군사기술을 현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엄청난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승리는 결국 비용을 효율적으로 조달하여 투입한 국가가 가져갔다. 서양에서 군비경쟁이 일어나는 동안 동양은 상대적으로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명나라와 인도 무굴 제국은 대포의 중요성을 알고 생산을 독점했지만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이 적어 무기를 개량할 필요가 없었다. 서양에서 수백 년 동안 치열한 총포 개량 경쟁을 벌이는 동안 동양은 상대적 평화를 누렸지만 스스로 낙후됐다.


제1차 세계대전의 승패도 전쟁비용 조달 능력이 결정했다. 제1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 주요국은 국민소득의 4% 정도를 국방에 사용했으나 전쟁 중에는 국민소득의 25~33%를 전비로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영국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 1913년 9천만 파운드이던 국방비를 전쟁 막바지인 1918년에는 20억 파운드로 22배 늘리었다. 이는 재정수입의 80%로 국민총생산의 52%를 차지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총력전에서 교전 국가는 산업, 노동, 금융을 통제하고 전쟁물자를 생산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특히 기초체력이 약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같은 국가는 경제가 붕괴될 위험에 처했다. 이들은 주도 국가의 지원이 없었다면 전쟁을 계속할 능력이 없었다. 


프랑스 역시 외부의 지원없이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프랑스는 모든 물자와 인력을 군수물자 생산과 전쟁에 투입했기 때문에 식량을 생산할 농부가 없었다. 1917년 흉년이 들면서 농산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예비 식량은 바닥났다. 폭동이 일어날 상황이었지만 미국과 영국의 비상식량지원으로 프랑스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지리적 약점으로 연합국에서 받을 수 있는 군사 및 물자 지원이 제한됐다. 여기에 금주령으로 조세수입의 1/3을 가져오던 알코올의 소비를 제한하여 수입이 줄어들었고 철도 마비로 운송 수입마저 급감했다. 러시아는 증세 대신 종이 화폐를 증발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 물가지수는 1914~1917년에 700% 폭등하여 노동자의 파업과 데모가 일상화됐다. 러시아 스스로 노동자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독일은 내부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프랑스와 영국을 항복 위기로 몰고 갈 수 있었으나 지속적인 희생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독일의 한계는 1916년 힌덴부르크 프로그램(Hindenburg Program)이 잘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군수물자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경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독일은 군수물자를 증산하기 위해 전선에 나가 있는 숙련기술자 3백만 명을 공장으로 되돌리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기본적인 농업 생산을 무시함으로써 식량부족으로 기아와 식품 물가상승을 겪어야 했다. 독일은 세금을 늘리는 대신 부채와 화폐발행으로 연명하여 인플레이션을 유발했고 이는 전쟁을 계속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의지를 꺾어 버렸다.


영국은 제1차 대전 중 채무상환 능력이 없는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의 부채를 지급 보증했다. 1917년 연합국의 부채는 43억 달러에 이르렀고 이중 88%는 영국이 지급을 보증했다. 연합국은 돈을 미국에서 빌리고, 그 돈으로 미국에서 무기와 식량을 구입했다. 연합국이 재정적자와 부채에 시달리는 동안 미국은 국제금융 및 상품 시장에서 강자가 됐다. 전쟁은 1917년 미국이 참전하면서 급변했다. 미국이 군대를 조직하고 훈련하여 유럽으로 파병하기에는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미국의 경제력과 생산력은 대적할 상대가 없었다.


미국은 철강, 에너지, 공업 생산에서 독일의 2배 이상이었기 때문에 이미 한계에 이른 독일은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독일 동맹은 제1차 대전 중 전비로 240억 달러를 사용하고 2천5백만 명의 군인을 동원했다. 반면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은 그 두 배인 580억 달러를 사용하고 4천만 명의 군인을 동원했다. 폭넓은 전선에서 천만 명 이상의 군인을 동원하여 벌이는 전쟁에서 훌륭한 장군은 몇몇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전투의 승리가 전쟁의 승리를 말하지 않는다. 승리는 더 많은 재정 자원을 동원한 연합국이 당연히 가져갔다.


***

제2차 세계대전 역시 재정의 힘이 승리를 지배했다. 전략과 전술의 성공은 거대한 전쟁의 흐름을 바꾸기 어려웠다. 연합국은 독일 동맹에 비해 국민소득과 전쟁 잠재력에서 3배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항공기, 대포, 탱크 및 군함의 생산으로 이어졌다. 1944년 미국은 하루에 한 척의 군함을 생산하고 5분에 한 대씩 전투기를 생산했다. 1944년 독일 동맹은 항공기 67,987대를 생산한 반면 미국 연합군은 167,654대를 생산했다. 연합국이 생산량 자체에서 절대적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전투기와 폭격기의 성능 차이를 고려한다면 독일은 전략과 전술로 이를 극복할 수 없었다.


연합군은 서유럽에서 독일에 비해 탱크 수에서 20배 항공기 수에서 25배의 우위를 누렸다. 1942년에는 러시아도 독일보다 전투기를 만대 더 생산했다. 전쟁 막바지에 러시아는 독일의 5배에 이르는 탱크, 비행기, 대포로 독일을 공격했다. 미국은 4년짜리 전쟁에서 역사상 가장 비싼 비용을 치렀다. 미국은 전쟁 중 4조 달러 이상을 사용했다. 전쟁 막바지인 1945년에는 국민총생산의 40%를 군비로 사용했다.


독일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동원하여 자금을 조달하였다. 세금을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가장 쉬운 방식은 부채를 늘려 비용을 조달하는 것이었다. 독일은 국가 부채를 국가기밀로 유지하였고, 1937년 GDP의 40%이던 국가부채는 400% 가까이 늘어났다.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도 전비 조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독일은 유대인의 희생을 통해 전비의 1/3을 조달했다. 독일 점령군의 비용은 피정복지에서 납부해야 했다. 독일군의 약탈은 당연한 권리였다. 일례로 독일군은 러시아 침공에서 6개월 동안 3백5십만 박스의 러시아 자산을 고국으로 보냈다. 약탈 물품은 독일에서 면세로 반입되었다. 피정복지 주민들은 유대인처럼 강제 노동 수용소에 보내졌다. 나치는 폴란드인 5백만 명을 강제 동원하여 3백만 명이 사망하였으며, 1944년에는 독일 노동자의 1/4이 강제 노역자였다. 


독일은 열세에도 잘 싸웠지만 전선이 너무 넓었다. 1943년 독일군 390만 명이 동부전선에서 러시아와 싸우고 있었고, 18만 명이 핀란드, 48만 명이 노르웨이와 덴마크, 130만이 프랑스와 벨기에, 60만이 발칸반도, 41만이 이탈리아에 흩어져 있었다. 독일은 서유럽 전체에서 전쟁해야 했기 때문에 작은 전투력의 손실도 치명적이었다. 클라우제비츠 (Carl Phillip Gottlieb von Clausewitz)의 말처럼 전쟁과 펜싱에는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지만 검이 부족하다면 기술은 별 의미가 없게 된다.


***

일본의 패망도 재정 문제로 볼 수 있다. 초기 일본은 중국(1894년), 러시아(1905년)를 상대로 승리했지만 종이호랑이를 상대로 한 승리였다. 청나라는 양무운동(洋務運動)으로 군대를 재편했으나 빈약한 정치체제가 총력전을 지원하지 못했고, 러시아는 극동으로 병력과 물자 수송이 어려운 상태였다. 시베리아 철도는 기본적으로 단선이었고 미개통 구간과 탈선 사고로 병력과 보급품 수송에 한계가 있었다. 


일본의 승리에는 서방 제국의 지원이 있었다. 일본은 영국 군함, 독일 대포(Krupp)를 수입하여 사용했고 전비는 영국과 미국 금융시장에서 조달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자금 부족으로 재정 파탄의 위기에 내몰렸다. 평화가 시급했던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징벌적 배상을 포기하고 완화된 평화협상 조건을 받아들였다.


청나라가 1895년 일본에 패한 이유 또한 재정 부족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당시 청나라는 양무운동으로 일본보다 더 좋은 무기체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청나라 장군 이홍장은 북양함대 하나로 일본 해군과 싸워야 했다. 중국의 다른 함대는 북양함대를 지원하지 않았고 군수품도 제때 보급되지 않았다. 그 이유로 쿠데타를 두려워한 중국 황제가 군의 총괄 지휘권을 이홍장에게 주지 않았다는 것과 실제 청나라의 재정 상황이 최악이었다는 설명이 있다. 


당시 청나라는 국민총생산의 2%를 재정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나 이는 다른 제국의 절반 수준이었다. 청나라는 근대화 개혁에 많은 돈이 필요했지만 조세 징수의 한계로 군사 부분에 끊임없이 투자할 능력이 없었다. 해외 금융시장에서 부채를 조달할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예상과 달리 일본에 쉽게 패했다. 반면 일본은 메이지 유 신 이후 군비 확장과 근대화에 체계적인 재정지원이 가능했다. 정치의 지원을 받은 일본군은 총력전을 벌일 수 있었고 승리했다.


1930년대 일본 재무장관 다카하시(Korekiyo Takahashi)는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부채를 동원하여 군대를 지원했다. 정부지출에서 군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30년 31%에서 1936년 47%까지 늘어났다. 균형을 상실한 군비확장을 우려한 다카하시가 군비에 제동을 걸자 그는 1936년 암살됐다. 


중일전쟁은 그가 암살된 다음 해 시작됐고 군비는 재정지출의 70%까지 올라갔다. 일본은 재정적으로 한계에 부딪쳤다. 무리한 전비를 투입했음에도 일본은 1937년 시작된 중일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없었다. 일본은 총력전으로 70만 이상의 병력을 중국에 투입하고 매일 5백만 달러 이상의 전비를 사용했지만 중국의 저항은 계속됐다. 여기에 더하여 일본은 러시아의 침공을 막기 위해 30만 이상의 병력을 만주에 주둔시켜 야 했다. 일본의 전쟁 부채는 무한정 늘어났다.


일본은 재정수입의 70%에 이르는 군비 지출이라는 약점에 더하여 석유, 철강 등 주요 물자를 수입에 의존했다. 중국에서 일정 지분을 가지고 있었던 미국과 유럽 제국은 일본의 중국 침략을 반대했다. 미국의 방해로 물자 수급이 어려워진 일본은 1938년 석유의 강제 할당을 실시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일본은 미국이 중국을 돕는 것으로 의심했고 중국과의 지루한 전쟁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일본은 남아시아를 점령하여 석유, 철광석 등의 원자재를 확보하고자 했다. 남아시아는 해안을 봉쇄당한 중국이 전쟁물자를 지원받던 루트이기도 했다. 남아시아 점령은 일본에 일석이조였지만 미국과 충돌은 불가피해졌다. 일본은 1940년 유럽에서 프랑스가 무너지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점령했다. 미국은 이에 대응하여 1941년 핵심 원자재인 철강과 석유 수출을 금지하는 일본 금수령을 선포했다.


***

미국은 일본에 비해 인구와 소득이 절대 우위에 있었고 산업 생산도 7배 높은 강국이었다. 일본이 승리할 가능성은 오직 기습공격을 통해 전쟁을 단기간에 끝내는 것이었다.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는 절대적 오판이었고 전쟁은 일본의 희망과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다. 


진주만 기습은 전쟁에 반대하던 미국인들을 단결하게 만들었고 미국은 엄청난 물자를 전쟁에 투입할 수 있었다. 일본은 재력과 물자가 부족하여 패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일본과의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하고 항모 몇 척을 더 잃었다 하더라도 이는 미국의 승리를 늦출 뿐이지 대세에는 영향이 없었다. 일본은 파손된 항모를 다시 건설할 능력이 없었으나 미국은 그 해 3척의 항모를 새롭게 건설했으며 1943년에는 5척, 1944년에는 9척의 새로운 항모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중국에 100만이 넘는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미국을 공격한 것은 자폭이었다. 일본은 만주에도 70만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었다. 이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본은 돈 먹는 하마 중일 전쟁에서 최종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 엄청난 도박을 벌였고 결과는 참패였다. 일본의 전략적 실패는 미군이 남태평양에서 본토로 진격해 올 때 중국에 170만의 병력이 묶여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의 해상교통을 봉쇄한 미국 잠수함 전략의 승리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것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다. 미국은 군인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원폭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원폭은 극동에서 남하하려는 스탈린에 대한 경고라는 의견도 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원폭을 개발하기 위해 투입된 비용을 합리화하기 위해 원폭을 투하했다는 주장도 있다. 원폭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는 개발비 200억 달러를 지출했고 12만 명을 고용했다. 마지막 견해에 따른다면 실패할지 모르는 프로젝트에 사용한 세금을 합리화하기 위해 원폭을 투하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

전쟁의 승패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재정을 통한 자금조달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첨단 전자기술의 발전은 재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한다. 첨단 무기를 장착한 현대 전투기는 제2차 세계대전 때보다 100배 비싸고 폭격기는 200배 비싸졌다. 


최첨단 무기를 원하는 군의 요구 때문에 군수품 시장은 특화됐다. 드론 폭격기와 같은 무인 무기가 발전하려면 더 많은 연구개발 자금이 필요하다. 폐쇄적인 군수품 시장에서 경쟁은 제한될 수밖에 없고 첨단제품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있다. 국가안보에 천문 학적인 국방비를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국가의 조세 시스템이 중요한 이 유이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가져왔습니다. 



참고문헌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Paul Kennedy, Frist Vintage Edition 1989), Total War and the Power Balances, page 274, War, Money, and the Nation-State, page 72, The European Miracle, page 23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Paul Kennedy, Frist Vintage Edition 1989), Total War and the Power Balances, page 262, page 267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Paul Kennedy, Frist Vintage Edition 1989), Alliances and the Drift to War, page 256, page 266, Total War and the Power Balances, page 264-270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Paul Kennedy, Frist Vintage Edition 1989), The Proper Application of Overwhelming Force, 352-356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Paul Kennedy, Frist Vintage Edition 1989), The Position of Powers, page 209, The Challengers, page 300-303, Unexpected Victory, page 346-364, The Proper Application of Overwhelming Force, page 350-356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Paul Kennedy, Frist Vintage Edition 1989), History and Speculation, page 442-443

Daylight Robbery (Dominic Frisby, Penguin Random House UK 2019), The Second World War, the US and the Nazis, page 118-121


작가의 이전글 조세반란으로 퇴락한 제국 스페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