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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Mar 27. 2023

문자의 발명이 세금때문이라고?

기원전 2000년 전 이집트 아메넴헤트 3세(Amenemhat III) 시절 기록이다. 두아 케티(Dua-Khety)는 아들 페피(Pepy)를 세무 서기(書記, Scribe)로 키우기 위해 사립학교에 보냈다. 세무 관리는 4000년 전에도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등굣길에 아버지는 농부, 노동자, 군인, 예술가의 비참한 삶을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말하길 노동자의 삶은 고통과 불행의 연속이다. 넝마를 걸치고 손에 물집이 잡히면서 온종일 일한다. 파라오 관리들은 노동자에게 강제노역을 시킨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얻는 것은 병밖에 없다. 아버지는 아들이 열과 성을 다하여 공부하면 왕의 서기가 되어 불행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원전 1200년에도 유사한 기록이 있다. 선생이 학생에게 직업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뱀이 곡식의 절반을 채어가고, 하마가 나머지 절반을 먹어버렸는데, 추수세를 내야 하는 농부의 입장을 기억하라. 논밭에는 쥐들이 득실거리고 메뚜기 떼가 습격한다. 소들이 곡식을 먹어버리고 새들이 재앙을 가져온다. 탈곡할 때는 도둑이 득실거리고 서기(Scribes)는 추수세를 걷기 위해 온다. 서기는 창과 막대기로 무장한 부하를 데리고 있으며 하나의 곡식도 남은 것이 없지만 곡식을 내라고 한다. 농부는 두들겨 맞 고 결박되어 우물로 던져진다. 농부의 아내 또한 결박되고 자녀에겐 족쇄가 채워진다. 이웃은 그를 버리고 곡식은 날아가 버린다. 서기는 모든 사람의 위에 있다. 기록으로 일하는 사람은 세금을 낼 의무가 없으며 내지 않는다. 이를 잘 기억하기 바란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고대 문자가 발명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수렵으로 먹고살던 시절 사람들은 숫자에 익숙할 필요가 없었다. 나무에 사과가 몇 개 있는지도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의 두뇌는 숫자를 저 장하고 처리하는 데 익숙하지 못했다. 그러나 농업혁명 이후 인류는 신화와 법 이외에 숫자라는 새로운 형태의 정보가 중요해졌다. 특히 고대 종교는 넓은 땅과 권력을 차지했다. 그러면서 사제의 기억 능력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사제는 강력한 하늘 신, 전지전능한 땅의 신을 대변할지 모르나 숫자를 틀리기 쉬운 하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제들은 어느 땅, 과수원, 농지가 전쟁과 성애(性愛)의 여신인 이슈타르(Ishtar) 여신에 속하는지, 이슈타르 영지의 어떤 직원이 봉급을 받았는지, 임차인이 임대료를 제때 냈는지, 채무자에게 어떤 이율의 이자를 받아야 하는지를 모두 기억할 수 없었다. 고대 농업을 발전시킨 초기 정착민들은 정보처리 능력이 부족하여 더 넓은 국가, 무역 네트워크, 하나의 종교를 만들 수 없었다. 


인류학자 로빈 던바가 발견한 던바의 법칙(Dunbar’s number) 이 적용된 것이다. 던바의 숫자 150명을 기준 삼아 왕이 말로 신하 150명을 거 느리고 신하 150명이 다시 백성 150명씩을 구두로 다스리는 국가는 상상하기 어렵다. 국가는 말로 운영될 수 없고 그러한 국가가 있다 하더라도 규모의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국가는 기록을 통한 명령과 보고의 의사소통 네트워크 없이 건설될 수 없다. 초기 국가는 농업혁명이 시작되고 4000년이 지나서야 문자와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보처리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이다. 비옥한 퇴적토와 뜨거운 태양은 수메르인에게 풍부한 수확을 가져다주었다. 강은 물류 운송을 통해 도시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통치하는 주민 수가 늘어나면서 필요한 정보도 부쩍 늘었다. 기원전 3500~3000년 사이 수메르의 어떤 천재가 두뇌 밖에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수학적 자료를 대량으로 처리할 수 있는 맞춤형 정보처리 시스템이었다. 수메르인은 인간 두뇌의 한계를 극복하는 사회적 구조를 가질 수 있게 됐으며 이후 도시, 왕국 및 제국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수메르인이 발견한 정보처리 시스템의 이름은 ‘문자’이다.


초기 문자는 사실과 숫자에 한정됐다. 게다가 상징으로 기록됐기 때문에 수천 가지 글자를 배우기 위해 10년 이상 공부해야 했다. 문자 해독은 소수 엘리트가 독점했고 권력의 상징이 됐다. 문자로 기록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를 읽을 수 있는 사람 또한 한정됐기 때문에 중요한 기록 이외 내용을 문자로 저장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초기 서사시 같은 문학 작품은 점토 평판에 기록되지 않고 구전됐다. 문자를 기록하는 점토판과 양피지의 가격도 높아 문자는 대중화될 수 없었다.


문자기록에서 인류가 5000년 전 남겨준 지혜를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인류 최초 기록은 철학적 통찰, 시, 전설, 법, 왕의 승리를 담고 있지 않았다. 초기 기록은 조세의 납부, 부채 및 재산의 소유를 기록한 단조로운 경제 서류이다. 인류가 남긴 최초의 문자는, “29,086 단위의 보리를 37개월에 거쳐 받았다. (29,086 measures barley 37 months) - 쿠심 Kushim” 정도이다. 수메르인이 남긴 기록은 조세 또는 배급으로 보리, 전쟁 포로, 남녀 포로에 대한 내용이 가장 빈도가 높았다. 즉 인류는 조세 정보를 기록하고 처리하기 위해 문자를 발명했다.


이후 메소포타미아인은 다른 기호를 추가하여 설형문자를 만들었다. 이로써 단순한 수학적 데이터 이외에 다른 것을 기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기원전 2500년 메소포타미아 왕은 설형문자로 법령을 만들었고 사제는 신의 말씀을 기록했다. 중국에서 최초의 문자 기록은 황하 유역에서 발견된다. 문자는 얼리터우(二里頭) 문화가 번창한 신석기에서 청동기 시대에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상왕조 시대(기원전 1600~1050) 갑골문자는 예언을 위해 사용됐다. 진나라는(기원전 221~206) 문자를 사용하여 국가를 통치했다. 이와 유사한 시대 이집트는 상형문자를 만들었다. 중미대륙에서도 기원전 1000~500년 사이 유사한 문자가 개발됐다.


조세 기록이 만들어진 후 1000년이 지난 기원전 2100년 경이되어서야 수메르인은 길가메시 서사시를 만들었다. 이 서사시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보다 1500년가량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이로써 사람들은 드디어 문자로 시를 쓰고, 역사를 기록하며, 사랑을 노래하고, 드라마와 예언을 기록하게 됐다.


서사시의 등장에도 문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수학적 자료의 기록과 유지에 있었다. 세무 서기(Scribe)의 임무는 여전히 중요했다. 세리가 토지를 측량하거나 인구를 조사하면 농부는 징발, 부역, 인두세, 농작물 과세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국가는 토지 규모, 비옥도, 재배 곡물, 예정 수확량 등을 자세히 기록한다. 세무 서기는 이러한 정보처리 시스템을 통해 부역과 곡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당신은 임금과 하느님을 섬길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무서워해야 할 사람은 세무 서기이다.”라는 수메르 속담은 세리의 막강한 권력을 잘 말해주고 있다. 농부들은 서류 기록이 탄압과 갈취의 도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반란이 일어나면 농부는 가장 먼저 국가의 정보처리 시스템인 조세 기록을 불태웠다. 국가는 기록으로 납세자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기록을 없애면 세금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가는 기록, 등록, 측정하는 통일된 시스템이다. 국가가 세상을 기록하면서 복잡한 세상은 표준 단위로 맞추어졌다. 표준화는 징수하는 곡물의 품질, 수량 단위, 경작하는 토지의 규모와 토양의 질을 규격화했다. 표준화는 곡식과 토지뿐 아니라 가축, 생선, 섬유, 오일 등의 품질을 표시하는 데 사용됐다. 노예와 노동자는 나이, 키, 성별로 표준화했다. 국가는 화폐 단위를 통일하고 마차의 축간거리까지 규격화했으며 노동의 품질, 쟁기질 면적, 파종 면적과 같은 단위를 관리했다. 표준화되면서 개인의 복잡한 사정은 무시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세리가 기록하는 표준 숫자로 표시되게 된다.


세리가 기록한 이러한 정보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진실이 된다. 관료의 기록은 우선 진실로 추정돼 반박하기 어렵다. 따라서 측정하여 수량을 정하고 기록하는 것은 곧 권력이다. 통일 도량형은 백성을 편하게 하기보다는 국가가 세금과 재정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이야기를 이어서 살펴보자.


참고 문헌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Ancient Egypt, page 7,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Taxes, page 3, Against the Grain (James C. Scott, Yale University, 2017), Writing Makes States: recordkeeping and legibility, page 139-149, Sapiens (Yuval Noah Harari, HarperCollins Publishers, 2015), The Language in Numbers, page 13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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