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1933년 미국에는 알코올을 금지하는 금주령(禁酒領, Prohibition) 법이 있었다. 현재의 가치 기준으로 술 소비를 금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 사회적 합의에 의해 술 소비가 금지됐다. 금주령은 알코올의 제조, 보관, 운송, 판매, 소지와 소비를 금지하는 강력한 법이었다.
법으로 알코올 소비가 금지됐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은 숨어서 술을 마셨다. 시민들의 갈증은 알코올의 불법 생산과 판매로 채워졌다. 이는 법을 무시하는 조직폭력배가 좋아하는 사업이다.
영화 <언터처블>은 조폭 알 카포네를 소득세 탈세 혐의로 조사 기소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알 카포네는 조직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폭력과 살인을 일삼았지만 그는 엉뚱하게도 탈세로 처벌받았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상과 달리 금주령은 조직 폭력의 주머니만 불려주었고 집행 공무원의 부패와 무능으로 폐지됐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이다. 금주령에는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세금이야기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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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 원천에서 재정수입을 확보했다. 수입물품에 부과하는 관세와 알코올에 대한 주세였다. 이 세금은 미국 재정수입의 90%를 조달했고 주세는 30~40%를 차지했다. 이는 금주론자에게 어려운 문제였다. 알코올에 대한 세금으로 살아가는 연방정부가 금주령을 채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주(州)는 독자적으로 금주령 실시 여부를 결정할 재량이 있었다. 금주령은 1913년 9개 주에서 그리고 금주령이 전국적으로 선포된 1919년에는 이미 절반 정도의 주에서 실시하고 있었다. 다수의 주정부가 도입한 금주령은 연방정부의 재정 수입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왔다.
연방정부는 다른 수입이 필요했고 그 답을 1913년 도입한 소득세에서 찾았다. 소득세는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시대에 부를 재분배하고 공평하게 하는 부자 과세였다. 소득세는 상위 2%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대중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일부 부자들은 소득세를 납부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으며 소득세는 부와 신분의 상징이었다.
소득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재정수입을 충실하게 조달했다. 이에 따라 재정수입에서 알코올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감했다. 1920년대에는 연방정부 수입의 2/3를 소득세가 차지했고, 주세 및 관세를 합한 금액의 9배까지 징수했다. 소득세는 이상주의자들이 10년 넘게 주장한 금주 운동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소득세가 없는 시절 의회는 재정수입에 엄청난 타격을 가져올 금주령을 도입할 수 없었다. 소득세 세수가 증가하면서 의회는 금주령을 시행한다 하더라도 세수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금주령은 이상 사회를 건설하자는 도덕의 힘이 아니라 초과 징수한 소득세의 힘으로 발령됐다.
현실에서 금주령은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도 동네 양아치 수준의 조폭을 기업형 범죄조직으로 성장시켰다. 알 카포네는 미국에서 알코올의 불법 생산과 판매를 주도하던 수많은 조폭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는 시카고 도시 전체가 아닌 일부 구역에서 주류 독점권을 가진 조직폭력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1년 수입은 현재 화폐가치로 100억 달러에 달했다.
그는 주류 판매 영역을 확보하고 지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살인과 폭력을 저질렀으나 살인죄로 처벌하기 어려웠다. 그가 외부에서 고용한 살인 청부업자를 잡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살인교사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대신 소득세 탈세를 이용하여 알 카포네를 처벌했다. 살인의 증거는 없었으나 탈세의 증거는 넘치고 남았다.
알 카포네의 부하들은 두목의 돈을 횡령했다는 의심을 받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위험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돈을 횡령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서류를 철저하게 관리했다. 부하들이 살아남기 위해 기록한 서류는 탈세 증빙서류였다. 이는 역설적으로 알 카포네의 종말을 가져온 입증 서류가 됐다.
수많은 조폭 중에 그가 대표로 처벌받은 이유는 일종의 괘씸죄이다. 알 카포네 혼자만이 밀주 사업에 성공해서 특별 세무조사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가 유난히 언론의 주목을 받고 도발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후버 대통령은 정부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가진 알 카포네를 처벌함으로써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자 했다.
대통령이 지시한 이 작전에 FBI는 실패를 두려워하여 참가하지 않았고 국세청의 용감한 세무조사가 알 카포네를 징역형으로 이끌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알 카포네가 체포된 이후 밀주업자들이 소득세를 자진 납부하기 위해 세무서에 긴 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금주령에도 일반 시민들의 알코올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이는 알코올의 불법제조, 밀수 및 판매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왔다. 범죄 조직들은 알코올 가격 폭등으로 통상 8배에 달하는 폭리를 취했고 밀주 제조와 유통은 미국 내 최고의 부가가치 산업이 됐다. 금주령을 집행하는 금지국(Bureau of Prohibition)은 단속공무원의 부패와 인력부족으로 유명무실해졌다.
단속공무원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조직범죄에 맞서는 대신 안전하고 부수입이 보장되는 타협을 선호했다. 금주령 기간 동안 디트로이트에서 1,600 명의 단속공무원이 금주령 위반, 허위공문서 작성, 위증 등의 혐의로 파면될 정도였다.
불법 증류주는 제조과정에서 부주의로 불순물이 들어가기 쉽다. 이는 마비, 경련, 시각장애 및 사망 같은 사고를 유발하고 국민건강을 위협한다. 당시 48개 불법 제조장에서 만들어진 증류주를 분석한 결과 절반 이상이 시민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의 납을 함유하고 있었다. 그 결과 미국에서 납중독 사망 사고의 80%를 불법 제조주가 차지했다.
증류주를 합법화하는 것은 조세수입을 가져오고 생명까지 구하는 좋은 정책이었다. 이러한 견해를 가진 언론인 멩켄(H.L. Mencken)과 일부 지식인들은 1920년대 금주령 폐지를 지속해서 요구했다. 그러나 의회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금주령은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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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대공황은 상황을 다시 한번 반전시켰다. 1931년 소득세 수입은 15% 감소했다. 1932년에는 소득세 수입이 또다시 37% 감소하여 2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1933년에는 1930년 보다 소득세 수입의 60%가 감소했다. 소득세를 통한 재정수입은 급감했으나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사업으로 정부지출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상위 2%가 아닌 평범한 노동자도 이제는 소득세를 납부해야 할 처지가 됐다. 소득세를 새롭게 납부해야 하는 시민과 노조는 소득세 확대를 반대했다. 이들은 다른 방법으로 조세수입을 충당하기를 원했다. 국가는 왜 알코올의 생산 및 판매가 주는 고용과 조세수입을 포기했는지 묻는 말이 당연히 생겼다. 대공황의 끝이 언제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는 새로운 소득원을 찾아야 했다. 1933년 정부가 찾아낸 답은 알코올을 합법화하고 다시 과세하는 것이었다. 금주를 통해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던 시민운동은 세금 부족으로 13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 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참고 문헌
The Great Tax Wars (Steven R. Weisman, Simson & Schuster 2004), The Dawn of a Day of Righteousness, page 342
The Great Tax Wars (Steven R. Weisman, Simson & Schuster 2004), The Dawn of a Day of Righteousness, page 345-350
Organized Crime (Howard Abadinsky, Nelson-Hall 1998), Prohibition page & AL Capone’s Chicago page 155-175,
The Sex of a Hippopotamus (Jay Starkman, Twinser Inc 2008), Al Capone page 213-21
Daylight Robbery (Dominic Frisby, Penguin Random House UK 2019), How income tax gave America Prohibition, page 11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