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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May 31. 2023

숨어있는 간접세는 공평한가

몽테스키외는 사람에 대한 직접세는 위험하며 노예제도에 가깝다 했다. 물품에 대한 간접세가 자유와 더 가깝다 했다. 직접세에 대한 두려움은 몽테스키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키케로(Cicero)는 국가의 완전한 붕괴 같은 재앙이 아니면 직접세를 부과하지 말라 했다. 이는 과거 직접세가 정치적으로 남용됐기 때문이다. 세금을 부과할 힘은 파멸시킬 힘을 말한다. 군주는 임의로 직접세를 부과하고 이를 납부하지 못한 사람을 노예로 만들었다. 사람에 대한 직접세는 정적을 제거하는 특효약이었다.


계몽사상가들은 이런 이유로 군주가 자의적으로 세금을 부과할 수 없는 간접세를 선호했다. 간접세는 귀족같은 특권계층이 면세 혜택을 누리는 일이 없어 공평하다는 장점도 있다. 17세기 스웨덴 수상 옥센셰르나 (Oxenstierna)는 거래세는 “신을 기쁘게 하며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 반란을 자극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계몽사상가들은 공정한 세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고 공정할 뿐 아니라 단순한 하나의 세금이 있을 것이라 보았다. 그들은 부자가 납부하는 사치세를 두고 많은 논쟁을 했다. 장자크 루소는 사치세 도입에 적극 찬성했다. 그는 제복, 마차, 거울, 샹들리에와 같은 물품에 과세를 주장하면서 이들 물건은 꼭 필요하지 않은 사치품이기 때문에 과세해야 한다 했다. 볼테르(Voltaire)는 사치세에 반대했다. 그는 사치라는 개념이 모호하여 쉽게 적용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담세능력에 따른 과세는 불가능하다 했다.


거래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거래세는 시장의 인센티브를 왜곡하지 않는다 한다. 소득세와 재산세는 노동과 투자의 인센티브를 감소시킨다. 최악의 과세는 경쟁을 금지하는 독점권을 국가가 판매하거나 운영하는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최적의 과세는 물품세 또는 판매세이다. 


이는 현대의 부가가치세이다. 거래에 과세하는 것은 특정 그룹을 선호하지 않는다. 또한 사치품을 높은 세율로 과세하기 때문에 거래세는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한다.


거래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치품에 부과하는 세금을 제외하고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된다 한다. 가난한 사람은 평소 부역과 전시 징발을 통해 부자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소비세가 중심인 세제에서 부자는 저축하여 소비세 납부를 무기한 연기할 수 있다. 


반면 가난한 사람은 모든 소득을 즉시 소비하여 소비세를 납부한다. 이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과 일치한다. 노동자는 생존을 위해 세금을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거래세는 노동자의 소득을 탕진한다. 생존을 위해 설탕, 빵, 맥주, 초, 비누와 같은 물건을 사용하는 노동자는 소득에 비해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한다.


***


월폴(Robert Walpole)은 영국 최초의 수상으로 불린다. 왕의 최측근으로 수상은 재정과 조세를 담당했다. 초기 수상이 그랬듯이 그는 철두철미한 세리였다. 월폴은 1723년 커피와 차에 물품세를 부과했다. 


10년 후 그는 와인과 담배에 수입 관세를 폐지하고 물품세를 부과하려 했다. 시민들은 물품세에 반대하여 들고일어났다. 모든 신문에 풍자 만화가 등장하고 ‘자유, 재산, NO 물품세’라고 새긴 모자를 쓴 폭도들이 거리를 누볐다. 폭동은 월폴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가 제안한 것은 수입 관세를 폐지하고 대신 물품세를 부과하는 것이었다. 이론상 부담해야 할 세금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폭동이 일어난 것이다.


월폴은 군중 심리를 잘못 해석했다. 당시 와인과 담배 밀수는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월폴은 밀수가 만연한 와인과 담배에 대한 관세를 포기하고 대신 국내에서 물품세를 징수하고자 했다. 일종의 조세 개혁이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새로운 물품세를 원하지 않았다. 관세는 밀수로 회피할 수 있었고 밀수 와인과 담배는 정상가격의 2/3 정도에 구입할 수 있었다. 밀수는 영국 왕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됐다. 일반 시민들은 밀수에 긍정적이었다. 당시 영국은 매년 4백만 파운드의 차를 소비했으나 실제 세관에 신고된 것은 80만 파운드였다. 이는 80%의 차가 밀수됐다는 것을 말한다. 폭동으로 월폴은 물품세를 포기하고 종전의 관세로 되돌아갔다.


국가의 입장에서 거래세는 징수하기 편한 세금이다. 거래세는 소득세에 비해 행정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일부 거래세는 제조 시설만 관리하면 쉽게 징수할 수 있다. 제조 시설에 과세하는 것은 상인들이 시장에서 판매한 내역을 찾아 과세하는 것보다 편하다. 


영국은 물품 제조시설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양초를 만들기 위해서는 양초를 만드는 장소 및 작업시간을 세리에게 알리지 않으면 작업할 수 없었다. 양초를 만드는 틀의 개수를 정확하게 신고하지 않으면 수백 파운드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양초 생산량은 매월 보고해야 하며 작업 중 부러진 양초는 세리의 입회 하에 처분해야 했다. 양조장, 찻집과 커피숍도 이와 유사한 감시를 받았다. 


계몽사상가들은 조세를 부과함에 있어 주권자가 납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면 과중한 세금이 없어질 것이라 믿었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미국 독립운동 구호가 그 예이다.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네덜란드와 미국은 조세 혁명 이후 세금이 더 많아졌다. 


네덜란드 독립 후 채택된 물품세는 독립 전 스페인이 부과하려 한 세금보다 높았다. 미국은 혁명에 성공하고 ‘대표 없는 과세’보다 ‘대표 있는 과세’가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역사에서는 조세 혁명이 성공하면 납세자는 패자가 된다. 혁명 전후 조세납부금액을 비교하면 혁명을 왜 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간접세를 강조하던 계몽주의 사상은 소득세가 확산되면서 그 의미를 상실했다.


***


소득세가 보편화되면서 물품세의 중요성은 반감됐지만 물품세는 20세기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했다. 프랑스 세무공무원 로레 모리스(Laure Maurice)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시작된 부가가치세가 바로 그것이다. 로레는 어린 시절 프랑스 세무공무원의 제복에 반하여 공무원을 지망했다 한다. 그는 탈세가 만연한 거래세 제도를 개선하고자 획기적인 부가가치세를 제안했다. 물건을 사면서 거래세를 지불한 구매자는 세금이 제대로 납부되는지 별 관심이 없다. 거래세를 납부한 구매자는 판매자가 거래세를 자기 주머니에 챙기더라도 알 수 없고 이를 방지할 방법도 없다.


부가가치세는 모든 것을 바꾸었다. 부가가치세를 납부한 구매자는 자신이 납부한 세금을 공제받기 위해 세무서에 신고하고 실익을 챙길 수 있다. 모든 사업자가 납부한 세금 내역을 신고하기 때문에 부가가치세는 스스로 규율하는 세금이 됐다. 거래 당사자가 상호 견제하기 때문에 부가가치세는 거래세보다 몇 배 탈세하기 힘든 세금이다. 부가가치세는 물품의 거래뿐 아니라 서비스에 대해서도 과세하기 때문에 엄청난 세수를 가져온다.


부가가치세는 몇 가지 기술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소비에 대한 세금이기 때문에 노동, 소득 또는 투자에 대한 과세처럼 인센티브를 왜곡하지 않는다. 둘째, 경제 상황이 악화하여도 소비는 소득에 비해 변동이 적어 안정적인 재정수입을 가져온다. 셋째, 소득세처럼 면세되는 사람 없이 모든 사람이 구매를 통해 세금을 낸다는 점이다. 또한 온라인 거래에 대해서 과세가 가능하다는 점과 수출에 세금을 면제하여 수출을 장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히려 부가가치세는 세금을 부과하기 너무 쉽다는 단점이 있다. 부가가치세는 최종소비자가 부담하지만 물건값에 포함되어 사업자가 징수하고 납부한다. 세금이 물품 가격에 포함되어 표시되기 때문에 세금을 올리기 좋은 구조이다. 세금을 올려 가격이 높아져도 판매자가 정부 대신 욕을 먹게 된다. 가격 속에 숨어있는 세금은 나쁘지만 부가가치세는 저항 없이 걷기 좋은 세금이다.


세계 각국은 1960년대 부가가치세를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부가가치세는 다른 어떤 세금보다 빠르게 확산되어, 현재 미국을 제외한 200여 개 국가가 도입하고 있다. 부가가치세율은 8~25% 정도로 대부분 국가에서 조세수입의 20% 정도를 걷고 있다. OECD국가는 평균적으로 이보다 더 높은 33% 그리고 프랑스는 재정수입의 40%를 부가가치세를 통해서 징수하고 있다.


부가가치세는 소비에 부과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많은 세금을 내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는 가난한 사람이 주로 구입하는 물품에 대하여 면세한다. 다수의 국가는 식료품, 의약품, 학용품을 면세하고 있다. 정책 목적으로 또는 로비에 의해 부가가치세를 면세하면 세법 규정이 복잡해지고 적용이 어려워진다. 우리나라도 식품의 부가가치세가 품목과 상황 별로 복잡하게 갈라진다. 기본적으로 가공하지 않은 식료품은 면세이고 가공한 식품은 과세하지만 복잡한 규정은 면세를 받기 위한 꼼수로 이용된다.


***


부가가치세는 물품의 가격을 올릴 뿐 아니라 경제 성장을 저해하기도 한다. 일본은 1989년 부가가치세를 도입한 이후 세율을 지속해서 인상했고 소비 침체로 경기가 악화되는 것을 경험했다. 부가가치세는 일상생활의 모든 면을 과세하기 때문에 정치적 쟁점이 되기도 한다. 


일본은 영화산업을 진흥하기 위해 극장입장권에 부과하는 부가가치세를 면세했고, 프랑스는 2009년 레스토랑 판매 음식에 부가가치세를 낮추고, 독일은 2010년 호텔방 사용에 부가가치세를 낮추었다. 로비스트의 주장과 달리 낮아진 부가가치세는 소비자의 이익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후속 연구에 의하면 낮아진 부가가치세의 이익은 사업자가 가져갔다.


유럽에서는 생리대에 대한 부가가치세가 여성에 대한 세금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따라 영국, 프랑스 등 국가는 부가가치세를 면세했지만 대부분 국가는 생리대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생리대에 대한 부가가치세가 여성에 대한 세금이라고 면세됐다. 좋은 생각이 아니다.


나는 안경을 쓰고 있다. 안경은 신체장애를 극복해주는 도구이다. 안경에 부가가치세를 과세하면 신체장애를 처벌하는 것 아닌가? 같은 논리라면 국가의 미래를 위하여 모든 어린이 및 육아용품이 면세되어야 한다. 노인 복지를 위해 노인들이 쓰는 건강보조용품 등도 다 면세되어야 한다. 


개별적으로 생리대가 특혜를 받는 것은 좋을 수 있으나 모든 서비스와 물건은 세금을 면제받을 이유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종국적으로 부가가치세를 내야 할 대상이 모두 사라질 수도 있고 반대로 로비할 능력이 있는 사람만 면세 혜택을 누리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여성 중심의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남녀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온다.


세금 감면의 혜택을 실제 누가 누리는가?라는 문제도 있다.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부가가치세 감면 혜택은 의도한 대로 여성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제조회사 및 유통회사가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몇 개의 제조 회사가 시장을 독점하는 상황에서는 더 그러하다. 국가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세금만큼 가격을 인하하도록 규제한다면 행정 비용만 늘어난다. 국가의 규제에도 제조회사는 원재료 상승, 친환경 소재 변경 등의 이유를 만들어 가격을 올릴 것이다. 결국 규제만 늘어나고 세법 또한 복잡해진다. 특정 물품에 대한 면세는 경제적으로 또는 조세 정책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면 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보다 재정 지원 또는 다른 방식을 통한 지원이 더 바람직하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 책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참고 문헌

A Fine Mess (T.R. Reid, Penguin Press 2017), The Money Machine, page 227-228, page 232-236, page 237-240, Scooping Water with a Sieve page 73

The Triumph of Injustice (Emmanuel Saez and Gabriel Zuckman, Norton & Company 2019), A World of Possibility, page 185-186, 

Taxing the Rich (Kenneth Scheve & David Stasavage, Princeton University, 2016), Treating Citizens as Equals, page 28-29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Parliament Searches for a Better Tax, page 261-267

The Triumph of Injustice (Emmanuel Saez and Gabriel Zuckman, Norton & Company 2019), A World of Possibility, page 18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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