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문명이 시작된 이래 소득에 과세했다. 수확한 곡물에서 일정량을 징수하면 이는 소득에 대한 과세이다. 국가는 눈으로 확인 가능한 곡물, 특정 물품의 생산과 거래에 세금을 부과했다. 필요 경비와 비용에 대한 공제가 없는 수확량 10% 과세는 소득세 20% 이상이다.
문제는 국가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할 능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국가는 상인이 거래하는 물품에 과세할 수 있었으나 상인의 소득은 파악하기 어려웠다. 중국은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상인을 가장 천하게 취급했다. 상인은 사회적으로 유익한 물건을 생산하지 않으면서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상인은 천시되었다. 그 이유는 상인은 소득을 속이기 쉬워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았기 때 문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상인의 소득에 최초로 세금을 부과한 황제이다. 로마는 물품 제조 및 거래에 물품세(Excise)를 부과했다. 이들 세금은 소비자가 최종적으로 납부하기 때문에 상인의 소득은 면세된다.
콘스탄티누스는 306년 상인의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고 4년마다 이를 징수했다.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많은 납세자들이 이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자식을 노예로 팔았다고 한다. 토지세는 수확을 선점함으로써 객관적인 징수가 가능하지만 소득세는 세리의 주관적인 판단과 재량으로 징수할 수밖에 없었다. 소득을 알 수 없는 세리는 투옥과 체벌같은 강압을 통해 징수했고, 납세자는 무시무시한 체벌을 피하기 위해 자식을 노예로 팔았다.
콘스탄티누스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고문을 금지하는 대신 상인을 공기가 잘 통하는 넓은 감옥에 투옥하도록 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조세를 납부하겠다는 서약만으로 감옥을 면제했다. 서약을 어기면 더 무서운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서약만으로도 소득세를 징수하기 충분했을 것이다.
기번은 이 시기를 ‘탄압의 권력과 탈세의 예술이 끊임없이 투쟁한 기간’이라 재미있게 표현했다. 플라톤은 《국가론 The Republic》에서 “소득세가 있다면 같은 소득이라도 정의로운 사람은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부정직한 사람은 적은 세금을 낸다.” 했다. 소득세는 이러한 불공정에 더하여 군주가 자의적으로 납부 금액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근대 계몽주의는 소득세를 혐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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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소득세는 백년전쟁 중인 1404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불행히도 이 기록은 모두 파괴되어 알려진 것이 없다. 당시 영국 사람들은 이 세금을 지독하게 경멸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다시는 이런 사악한 세금이 도입되지 않도록 개인의 소득 자료, 납세액, 미납액 등 모든 기록을 파괴했다.
이는 정치적 화합은 가져왔으나 아마도 가장 행복한 사람은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버틴 사람이다. 이는 로마 말기 황제가 사면령을 내리고 납세 기록을 파기한 것과 같다. 기록을 파기하는 것은 세금을 납 부한 사람에게는 불공정하며 납부하지 않은 사람에게 행복과 평화를 가져온다.
소득세는 영국에서 나폴레옹과의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1799년 다시 도입했다. 소득세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효율적으로 징수됐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10%의 낮은 세율이었지만 소득세는 전쟁기간 동안 재정수입의 20%를 담당했다. 이 소득세는 엄청난 재정수입으로 승리에 기여했기 때문에 나폴레옹을 물리친 세금이라 한다.
영국 납세자는 자신의 납세의무액을 선서하고 납부해야 했다. 정부관리의 소득과 국채 이자소득은 원천징수했다. 사람들은 이 세금을 혐오했다. 다수의 사람은 “세리의 권한을 일상생활까지 확대한 것은 모든 것을 허용하는 독재이다.”라고 불평했다. 소득세는 전쟁이 끝나고 6개월이 지나 폐지할 예정이었으나 이 세금은 상당기간 계속됐다. 정부는 전쟁으로 누적된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 했지만 사람들은 이 세금을 혐오했다. 이 세금이 폐지되고 재무장관은 의회의 압력에 소득세 관련 자료의 소각을 주도하고 직접 불을 붙였다. 하지만 그는 조세 법원 지하에 사본을 몰래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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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소득세를 체험하고 증오하던 세대가 사망하자 소득세가 다시 부활했다. 도입 목적은 재정적자를 해소하고 가난한 사람이 더 부담하는 간접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1842년 새로 도입된 소득세는 3%의 단일 세율이었으며 원천징수했다.
필(Robert Peel) 수상은 소득세 도입을 사죄하면서 앞으로 3년 동안만 부과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소득세는 균형재정을 이루면 폐지한다고 발표했지만 폐지될 수 없었다. 소득세가 예상보다 50% 더 많은 재정수입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금맥을 발견한 정부는 19세기에도 소득세를 계속 징수했으며 세율은 1~5% 정도였다. 영 국은 1909년 전쟁에 대비하여 다시 세율을 높였지만 소득세 최고세율은 여전히 8.33%였다.
영국의 성공에 자극받은 다른 나라들은 소득세를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스웨덴, 이탈리아, 일본, 뉴질랜드,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와 덴마크가 소득세를 도입했다. 미국은 1862년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소득세를 도입했으나 1872년 폐지했다. 미국은 소득세를 1913년 뒤늦게 도입했다.
국가는 소득세를 관리하기 위해 엄격한 기장 의무를 부과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대부분의 국가는 제책된 장부와 페이지 번호가 찍힌 원장을 사용하여 거래를 기록하도록 했다. 각 페이지에는 정부의 직인이 찍혔으며 페이지마다 정부의 수입인지를 붙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란은 최근까지 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으며 고치기 어려운 페르시아어 만을 사용해야 한다. 장부를 지우거나 변경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이를 위반하면 과세가 임의로 이루어졌다. 기장은 매일 시간 순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원장에 즉시 기록되어야 한다. 기장 오류는 장부에 기록하여 정정해야 한다.
영국 왕실은 소득세를 납부했을까? 거의 납부하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빅토리아 여왕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1842년 소득세를 납부했다. 이후 영국 왕실은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국민에게 다가서기 위해 1992년 소득세를 납부하기로 했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 책에서 가져왔습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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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ht Flight Fraud (Charles Adams, Euro-Dutch Publishers,1982), The tax that beat Napoleon, page 237-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