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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Jun 12. 2023

부자과세

미국 상원의원들은 1913년 9월 7일 기립하여 박수치기 시작했다. 역사적 입법이 통과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서로 악수하고 부둥켜안았다. 수 십년 간의 논쟁과 타협 끝에 소득세법이 통과한 것이다.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과 소득세법 서명식을 가졌다. 소득세는 출범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세금이었다. 소득세는 보통 사람이 납부할 일이 없었고 모건과 록펠러 같은 부자가 내는 세금이었기 때문이다.


소득세는 당시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미국은 1894년 소득세법을 제정했으나 대법원이 위헌이라 판결했다. 대법원은 소득세를 부자가 많은 뉴욕 같은 주에서 주로 납부함으로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위반한다고 했다.


1913년 뒤늦게 도입된 소득세는 소득 상위 2%에 해당하는 3,000달러 이상의 소득에 대하여 1~7%를 부과했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가벼운 세금이었지만 소득세는 오랜 논쟁과 타협의 산물이었다. 남북전쟁에서 부과되던 최고 10% 세율의 소득세가 1872년 폐지된 이후, 소득세는 미국에서 40년 동안 최소 66번 이상 입법이 시도됐고 좌절됐던 세금이다. 미국은 그러한 소득세를 도입하기 위해 1913년 헌법을 개정했고 소득세는 의회에서 환호와 함께 도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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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세 이전 미국은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와 소비세에서 재정수입의 90% 이상을 징수했다. 이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역진과세였다. 1860년 이후 연방정부의 재정은 50년 동안 6배 증가했으나 관세와 소비세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부담했다. 같은 시기 기업 이익은 10배 증가했으나 과세되지 않았다. 


부자는 관세 등을 통해 최대 소득의 8~10%를 세금으로 납부했으나 가난한 사람은 소득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납부했다. 당시 평균 관세율은 40%를 상회했기 때문에 1만 원짜리 물건을 구입하면 4천 원은 세금이었다. 노동자들은 물가를 상승시키고 소비에 악영향을 미치는 높은 관세에 반대했다.


셔먼(John Sherman)은 관세, 면허세, 주세, 담뱃세, 맥주세 및 물품에 대한 과세로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한다 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이 소비하는 모든 것을 사치품이라고 과세하면서 부자들의 재산을 신 성시한다고 비난했다. 국가는 가난한 사람이 소비하는 차, 커피, 설탕, 향신료에 세금을 부과한다. 가난한 사람을 취하게 하는 위스키, 기분 좋게 하는 맥주, 위로하는 담배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높은 관세에 대한 대안은 영국과 같은 소득세였다. 그는 2.5%의 소득세를 부과하면 관세를 25%로 줄일 수 있다 했다.


부자 과세를 두고 사람들이 내세우는 명분과 원칙은 시대가 변하더라도 바뀌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사회 정의를 내세우고 부자는 근로의 미덕을 주장한다. 사회 정의를 주장하는 사람은 소득이 높을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부자 과세를 원한다. 소득세는 부를 재분배하는 도구는 아니지만 불공평한 부의 집중을 완화한다. 따라서 누진적 소득세는 정의 및 공정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이다.


반대로 근로의 미덕을 강조하는 부자는 누진적 소득세에 반대한다. 자본주의는 부를 창조하기 위한 노력으로 발전한다. 부자는 근검절약, 노력, 창의성과 위험부담의 결과이기 때문에 부자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면 성장 동력인 인센티브를 감소시킨다. 부와 미덕은 긍정적인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소득세는 미덕에 대한 처벌이다.


부자 과세에 대한 견해는 부자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부자를 단순히 행운, 착취, 정치적 특혜, 약탈적 경쟁의 결과로 보는 사람은 강력한 부자 과세를 원한다. 부자를 노력, 근검절약, 창조, 인내의 결과라고 보는 사람은 부자 과세를 합법적인 강도라 한다.


소득세 도입을 앞두고 미국에서 40년 동안 주고받은 논쟁은 현재와 다르지 않다. 이들이 주장한 논리는 그대로 차용하여 현재 부자 과세의 찬반 준거로 사용할 수 있다. 오히려 과거에 현재보다 더 다양한 세금 논쟁이 이루어졌다는데 놀랍기만 하다. 이러한 논쟁은 위대한 세금 전쟁(The Great Tax Wars)에서 와이즈만(Steven Weisman) 잘 정리했으며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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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세를 찬성하는 논리이다. 멕밀런(Benton McMillin)은 빈부격차가 국가를 망하게 한다며 소득세를 주장했다. 고대 이집트는 3%의 귀족이 97%의 부를 독점했을 때 암흑기가 왔다. 페르시아는 1%의 인구가 모든 토지를 소유했을 때 망했다. 1929년 미국 국부는 3,620조 달러이지만 3%의 부자가 60%를 소유했다. 역사상 가장 큰 부자들도 로스차일드나 록펠러만큼 큰 부자가 아니었다. 소득세는 빈부격차를 완화하여 나라를 구하는 애국적인 조치이다.


부자는 돈이 많아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도울 의무가 있다는 담세능력 이론도 있었다. 소득이 낮은 사람은 간접세 등을 이미 많이 납부하고 있다. 따라서 생존을 고민하는 가난한 사람은 그대로 두고 세금의 혜택을 많이 보고 있는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정부의 중요한 의무는 국민의 자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정부의 보호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부자가 정부에 더 크게 기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부자가 국가의 특혜로 돈을 벌었다면 부자 과세를 강화하여야 한다. 국가는 모든 시민을 평등하게 대우하여야 하며 국가가 특정인을 직간접으로 지원하여 부자가 됐다면 이를 중과세해야 한다. 이는 일종의 보상이론이다.


소비가 늘어나면 한계효용이 감소하듯이 소득이 늘어나면 소득의 한계효용 또한 감소하게 된다. 소득의 증가는 가난한 사람에게 높은 효용을 주지만 부자는 한계효용이 낮다. 한계효용 이론은 누진과세로 한계효용 이 비슷하게 감소하도록 하는 것이 정당하고 공정하다는 논리이다. 이 이론으로 누진과세는 정치 선동가가 주장하던 선전문구가 아니라 학술적 외양을 가진 존경스러운 이론이 됐다.


정치적 고려도 부자를 불리하게 한다. 소득세는 정치적으로 소외된 반항적인 서민층을 달래는 안전밸브이다. 하원의원 홀(Uriel Hall)은 소득세를 통해 무정부상태를 없애고 사회주의를 약하게 할 수 있다 했다.


칼 막스 또한 누진적인 소득세의 적극적인 지지자였다. 소득세가 부과되면 부자들이 해외로 이주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민주정부의 가치를 경시하고 애국심이 2%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없이 사는 것이 더 낫다. 이들은 나라가 없는 사람으로 이들의 도주는 명예스럽지 않고, 애석하지도 않으며 칭송받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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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세의 반대에도 다양한 논리가 동원됐다. 소득세는 개인의 창의력과 기업가 정신을 억압하며 부동산과 주식시장을 침체시킨다. 밀(John Stuart Mill)은 소득세는 ‘온화한 강도질’이라 했다. 


소득세는 ‘돈이 많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처벌’이므로 사람들은 ‘노상강도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듯 소득세로부터 방어할 수 있다.’ 했다. 그는 소득세는 책만 읽는 교수, 사회주의자의 음모 그리고 무정부주의자의 폭탄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소득세가 사회적, 도덕적 타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소득세는 납세자들이 자기 재산에 대해 거짓말하도록 할 것이며 이는 국가 가 부정직(不正直)을 장려하는 것이다. 멜론(Andrew Mellon)은 높은 소득세는 탈세를 조장하고 주식시장을 침체시킬 것이라 했다. 소득세는 경제에 충격을 주며 개인의 창의적 노력을 제한한다. 임금을 삭감하며 탈세와 부패를 가져올 것이다. 세금으로 사람들이 노력하지 않게 된다면 국가발전에 기 반이 되는 에너지를 빼앗는 꼴이 된다. 경제가 회복되면 관세 수입만으로 충분함에도 부담을 고소득자에게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소득세는 85,000명의 부자에게만 부과되는 특별세이다. 부자만 세금을 내면 부자가 국가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세금이 아니라 부자가 국가에 주는 사례금이라 했다. 부자의 소득에 한하여 과세하는 것은 다수의 시민이 ‘정부를 지원할 애국적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과거 제국은 정부의 압제로부터 인간의 근면성과 사유재산을 보호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망했다.


모든 인간이 신 앞에서 평등하듯이 법 앞에서도 평등해야 한다. 평등하다는 것은 재산 정도, 출생지, 인종 및 신념에 따른 차별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소득세는 부자를 차별하는 계급 입법이다. 소득세는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전체주의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소득세는 전시에 한하여 정당화될 수 있으며 평상시 소득세는 위헌이다.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 높은 세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빵집에서 부자라고 높은 빵 가격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불평등한 세금은 우연히 다른 사람보다 많은 재산을 소유했다고 가하는 재산의 몰수이다. 부자는 세금을 납부하는 대신 나라를 떠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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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세 입법 과정에서도 많은 희극(喜劇)이 벌어졌다. 입법을 막을 의석이 부족했던 공화당은 토론을 지연하거나 통과하기 어려운 개정안을 제출하여 입법을 방해했다. 일부 의원은 납세의무자를 수백만 명으로 늘리면 소득세에 대한 지지가 낮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더 높은 세율과 더 낮은 면제 기준을 제안했다. 소득세법 자체를 위헌으로 만들기 위해 공무원 보수와 국채 이자를 과세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다른 의원은 공무원에게만 소득세를 징수하는 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최초의 연방소득세는 3,000달러 이상의 소득에 1~7%의 세금을 부과했다. 결혼한 부부는 4,000달러였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소득의 범위가 넓게 정의됐다는 점이다. 소득은 임금, 임대, 배당, 보수, 이자, 기업 소득, 자본소득을 가리지 않았다. 당시 미국인 평균 소득은 621달러였고 상위 2%만이 소득세 납부 대상자였다. 부자 과세 입법이었던 것이다. 


소득세가 도입되자 재정위원회의장 모릴(Justin Morrill)은 존 밀턴의 실낙원을 인용했다. 그는 미국 납세자를 ‘세금 없는 천국에서 쫓겨나 이마에 땀을 흘려 먹고살아야 하는 아담과 이브’에 비유했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 책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참고 문헌

The Great Tax Wars (Steven R. Weisman, Simson & Schuster 2004), Chase has no money, page 32, Fraught with Danger…to Each and Every citizen, page 132-133, There is No tax more equal, page 123-125, Introduction page 6-7, There is no tax more equal, page 103, Epilogue, page 350

The Great Tax Wars (Steven R. Weisman, Simson & Schuster 2004), “Fraught with danger…to Each and Every Citizen” page 141, page 137-138, page 138, page 152, There is No tax more equal, page 101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Scaffolding for Plunder, page 346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Scaffolding for Plunder, page 370, “Fraught with danger…to Each and Every Citizen” page 138-144, It will lighten the burdens of the poor, page 251-252, page 258, page 261-262,

The Great Tax Wars (Steven R. Weisman, Simson & Schuster 2004), Here at last was fruition, page 279, page 281-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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