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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Jun 16. 2023

부(富)를 징발하라!

제1차 세계대전은 ‘부의 징발’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총력전(總力戰)에서 젊은 남성을 강제로 동원하듯이 재산과 소득도 국가를 위해 동원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징병은 젊은 남성의 무한한 희생을 강요하지만 중·장년 층과 여성은 제외한다. 하지만 중·장년은 전쟁에서 필 요한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


‘부의 징발’에 따르면 애국심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으며 물질적 애국심은 정신적 애국심보다 더 중요하다. 병역에 동원된 사람은 돈 벌 기회를 박탈당하기 때문에 이는 일종의 세금이다. 징집되지 않은 사람은 적어도 전쟁에서 목숨을 잃는 일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징집되지 않은 사람의 소득과 재산에 대하여 높이 과세하는 것은 공평하다. 


이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뀌기 위한 조치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고통받는 비상상황에서 부자도 동일한 희생을 감내하도록 하는 것이다. 높은 세금으로 사치품에 낭비할 돈이 없어지면 전시 빈부격차로 발생하는 계층 갈등도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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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은 각국의 재정 시스템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 소득세가 각국에서 정착하게 됐다. 각국 정부는 대규모 징병이 이루어지는 동안 소득세율을 최고로 높일 수 있었다. 미국에서 소득세 최고 세율은 1916년 15%, 1917년 67% 그리고 1918년에는 77%까지 급증했다. 이는 역사상 가장 높은 세율이었고 소득세가 재정수입의 60%를 차지하게 됐다. 소득세 면세 기준은 3,000달러에서 1,000달러로 낮아졌다. 전쟁이 없었다면 이러한 조세 구조는 불가능했다.


둘째, 담세능력에 따라 과세한다는 원칙도 확립됐다. 소득세는 전쟁 중에도 모든 사람에게 폭넓게 적용되지 않고 고소득자에게 집중됐다. 소득세는 1913년 상위 소득자 2%에 대한 과세에서 1920년에는 상위 소득자 13%에 대한 과세로 확대됐다. 전쟁 이후에도 미국은 높은 세율과 넓어진 과세대상을 통해 전쟁 부채를 상환했다. 1920년에는 4천2백만 노동자의 13%인 5백5십만 명이 소득세를 신고했다.


셋째, 조세의 중심이 관세에서 소득세로 바꾸었다. 1913~1915년 소득세 도입 초기까지 연방정부는 재정수입의 90%를 관세 및 물품세에서 징수했다. 소득세는 이를 바꾸었다. 전쟁이 끝나고 소득세율이 낮아져도 1930년대 재정수입의 2/3가 소득세 및 법인세에서 징수됐다. 소득세는 소비자와 생산자 간에 오랜 기간 벌여왔던 관세율 논쟁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었고 재정수입에서 관세는 그 중요성을 상실했다.


마지막으로 채권 투자가 대중화됐다. 정부가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면 부자들이 이를 구입하고 국민 모두의 세금으로 상환하게 된다. 이는 부자에게 돈이 되는 투자처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 제1차 세계대전 중 발행한 자유채권(Freedom Bonds)이었다. 자유채권은 일반 시민이 채권에 투자하여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고 채권의 상환은 부자를 과세하여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는 지금까지의 재원조달방식 즉 남북전쟁에서 부자에게 채권을 발행하고 일반 소비자가 채무를 상환하는 방식을 뒤집은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 77%였던 최고 소득세율은 1932년 23%까지 축소됐다. 미국은 전쟁 부채를 이유로 전쟁이 끝나고 14년이 지나서야 세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했다. 하지만 담세능력에 기초한 누진적 성격의 조세 구조는 유지됐다. 1924년 의회는 근로소득과 비근로소득을 구별하여 투자로 인해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는 임금보다 더 높은 세율로 과세했다. 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원칙에 의한 누진세를 적극 지지했다. 현재는 이와 반대이지만 투자소득을 임금소득보다 높이 과세하는 것은 의문의 여 지가 없이 공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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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4월 루스벨트 대통령은 깜짝 놀랄 제안을 했다. “국가가 중대한 위기에 처했을 때 필요 이상의 소득은 승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세금을 납부한 이후 25,000달러 이상의 소득을 가진 국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는 25,000달러 이상의 소득에 100% 과세를 제안했다. 루스벨트의 제안에 따라 제2차 대전 중 가장 높은 소득세율은 20만 달러 이상 소득에 94% 소득세였다. 이 세율은 전후 91%로 낮아져서 1964년까지 유지됐다.


미국은 홍보 전쟁을 통해 무자비한 소득세를 입맛에 맞도록 조절했다. 높은 세율의 소득세는 승리세 (the Victory Tax)라 불렸다. 월트 디즈니는 도날드 덕을 주인공으로 하는 새로운 정신(The New Spirit)이라는 영상을 제작했다. 재무부는 시민의 감성을 자극하는 홍보물을 만들었다. 유명 작사자 벌린(Irving Berlin)을 통해 <나는 오늘 소득세를 냈다(I Paid My Income Tax Today)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이 노래는 평범한 노동자의 소득세가 베를린을 공격하는 수 천대의 폭격기를 만든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미국인은 승리를 위해 높은 세금을 감수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남북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 볼 수 없었던 전시 물가안정이라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소득세 세율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부 자들은 전시에도 부자 과세를 강화하는 것에 반대했다. 부자들은 모든 사람이 폭넓게 비용을 분담하자고 주장했고 기업인은 법인세를 올리면 전쟁에 대비한 시설투자가 어렵다 했다.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여졌고 소득세의 성격도 변화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득세 납부 대상이 확대되면서 소득세는 부자만 내는 세금에서 보통 사람이 납부하는 세금이 됐다. 세계대전의 총력전은 모든 사람을 소득세 납세의무자로 만들었다. 전쟁이 종료될 시점 미국에서는 90%의 근로자가 납세 신고를 했고, 60%인 4천2백만 명의 근로자가 소득세를 납부했다. 개인 소득세는 연방정부 재정수입의 40% 그리고 법인세는 30%를 차지했다.


미국은 가난한 사람도 소득세를 쉽게 납부할 수 있도록 원천징수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은 의도적으로 많은 금액을 징수했고, 이는 사람들이 납부한 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소득세를 신고하도록 했다. 원천징수는 부자에 대한 소득세를 가난한 사람까지 내야 하는 소득세로 만들었다. 원천징수가 없다면 가난한 사람은 다음 해 실제 소득세를 납부할 돈이 없다. 


원천징수는 가난한 사람의 납세 고통을 분산시키어 소득세를 효과적으로 징수하는 빈자과세에서 출발했다. 부자도 세금을 내는 고통을 덜 느끼기 때문에 국가가 더 많은 금액을 징수하기 쉽다. 원천징수는 국가가 아닌 민간에서 대신 징수해 준다. 돈이 들지 않는 무임승차이다. 매년 뒤늦게 징수하던 소득세를 원천징수로 조기에 징수하면서 국가는 세금을 쉽게 생각하고 낭비하기 쉬워졌다. 결과적으로 원천징수는 서민의 납세를 돕는 듯 하지만, 국가가 도덕적으로 해이 해지기 쉬운 제도이다. 


***


제2차 세계대전의 정점에 연방정부는 미국 국내 총생산의 22%를 세금으로 징수했다. 이는 1950년대에 15%로 떨어졌다. 1970년대에는 국방 예산, 은퇴연금 등 사회복지 비용으로 조세징수 비율이 다시 20%대로 올라가 지금까지 20%대를 유지하고 있다. 주(State)세와 지방세는 제2차 대전 후 약 5%에서 1980년 이후 10%대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제2차 대전이 끝나고 20년이 지나서야 1964년 소득세 최고세율을 90%대에서 70%대로 낮췄다. 이후 소득세율은 1981년까지는 70%대를 유지하다가 1982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50%대로 그리고 현재 30%대로 낮아졌다.


위트(John Witte)에 의하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대 조세감면은 모든 소득 계층에 고르게 이루어졌다. 또한 조세감면은 흑자 재정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레이건 대통령은 불경기로 만성적인 재정적자 상황에서 세금을 낮추었다. 이는 군비 확장을 하면서 이룬 예외적인 조세감면이다. 


레이건의 감세정책은 고소득자와 기업을 유리하게 하여 부자가 내는 소득세 비중을 대폭 축소했다. 1980년대 말 연방정부의 재정수입에서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63%에서 57%로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중요 원인은 세금에 물가연동제를 도입한 것이다. 물가 상승 분만큼 과세기준이 조정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부자들이 더 높은 세금을 부담하지 않아도 됐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 책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참고 문헌

Taxing the Rich (Kenneth Scheve & David Stasavage, Princeton University, 2016), Treating Citizens as Equals, page 20, page 141, 

The Great Tax Wars (Steven R. Weisman, Simson & Schuster 2004), The Dawn of a Day of Righteousness, page 323-324

The Great Tax Wars (Steven R. Weisman, Simson & Schuster 2004), What did we do? What did we do? page 290, 

The Great Tax Wars (Steven R. Weisman, Simson & Schuster 2004), The Dawn of a Day of Righteousness, page 324, page 328, page 337, page 345-3466

The Great Tax Wars (Steven R. Weisman, Simson & Schuster 2004), Epilogue, page 351-354, 

The Triumph of Injustice (Emmanuel Saez and Gabriel Zuckman, Norton & Company 2019), From Boston to Richmond page 35-36

The Great Tax Wars (Steven R. Weisman, Simson & Schuster 2004), Here at last was fruition, page 277

The Great Tax Wars (Steven R. Weisman, Simson & Schuster 2004), Epilogue, page 356, page 359

Daylight Robbery (Dominic Frisby, Penguin Random House UK 2019), The Second World War, the US and the Nazis page 1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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