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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Jun 23. 2023

건강복지 세금

복지국가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에 대하여는 논란이 있다. 유효수요이론의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는 이집트 피라미드가 고용 문제를 해결하고 유효수요를 늘리기 위해 건설됐다고 한다. 이 견해는 이집트는 사막으로 둘러 쌓여 도주하기 힘든 농민을 착취하기 쉬웠기 때문에 거대한 무덤 건설이 가능했다는 설명과 반대이다. 


가부장적 성격의 동양 제국이 복지국가였다는 견해도 있다. 천자(天子)라 주장하는 왕은 백성의 아버지로 자비로워야 했으며 백성의 삶을 위해 펼치는 복지정책은 하늘의 뜻이었다는 것이다. 


                                                         ***


기록으로 나타나는 최초의 연금은 기원전 13년 로마 군인에게 지급됐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내전을 수습하고 집권했지만 군사 반란을 가장 두려워했다. 그는 군인을 우대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현역으로 20년 그리고 예비군으로 5년을 복무한 군인에게 국가가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연금은 목돈으로 1회 지급했으며 약 13년 동안의 임금이었다. 퇴역 군인에게 목돈을 주면 군인들이 명예로운 퇴임을 위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5%의 상속세를 신설했다. 영국은 16세기 장애가 생긴 군인에게 장애연금을 지급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연금은 1744년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됐다. 스코틀랜드의 성직자는 젊은 나이에 사망한 동료 미망인과 자녀의 생계를 돕기 위해 기금을 만들었다. 그들은 매월 보수에서 일정액을 각출하여 연금을 만들기로 했다. 얼마의 기금을 걷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통계로 해결했다. 


당시 에든버러 대학 교수는 사망률, 어린이 수, 재혼한 미망인의 수와 미망인이 혼자 사는 기간에 대한 통계를 연구했다. 한 사람의 사망 일자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통계기법으로 평균을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은 성직자 개인이 매월 납부해야 할 금액을 계산하면서 20년 후에는 58,348파운드가 기금으로 모일 것으로 계산했다. 기금을 20년 동안 운영한 1765년 모아진 기금은 예상보다 1파운드가 모자란 58,347파운드가 적립되어 통계 예측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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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공적연금은 ‘무덤에서 요람까지’ 복지를 주장한 영국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공적연금은 오히려 전체주의 국가인 독일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엘버(Jens Alber)는 복지정책은 경제발전이 미흡한 국가에서 권위적인 정권을 합리화하기 위해 독재자들이 도입했다 한다. 실제 복지 프로그램은 미약한 시장경제와 강력한 관료체제를 가진 독일과 일본이 처음 도입했다.


비스마르크는 노동자의 표심을 얻어 사회주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복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는 1880년 노동자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제안을 했다. 윌리엄 1세는 이에 화답하여 1881년 ‘노년에 장애가 있거나 활력을 잃은 사람은 국가에 보살핌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했다. 


독일은 이에 따라 1883년 질병보험 다음 해에는 사고 보험을 도입했다. 1889년에는 70세 이상의 노인이 은퇴하면 국가가 연금을 지급하는 노령 연금이 도입됐다. 당시 독일의 평균수명은 남성 37.7 세, 여성 41.4세였기 때문에 70이면 당연히 사망하거나 거동이 불편했다. 독일은 1916년 은퇴 연령을 65세로 낮추었다.


이러한 정책으로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혔다. 비스마르크는 이에 대해 “사회주의자로 부르든 말든 나는 똑같다.” 했다. 독일은 연금에 참여를 강제했고 기금은 노동자, 기업 및 정부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영국은 노동자의 건강을 보장하는 국가보험법을 1911년이 되어 서야 시작했다.


20세기 이전 사회보장은 가족의 몫이었다. 노인을 부양하는 일과 자녀 교육은 가족이 담당했다. 집안에서 노령의 부모를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후손이 없는 노인은 종교단체에서 돌봐줬다. 


이는 평균 수명이 40세 이내로 짧고 의료비용이 낮았으며 교육이 초등교육 수준에서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이었다. 대가족 제도 또한 이를 가능하게 했다. 핵가족이 보편화되면서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거나 노인을 돌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평균수명은 두 배로 늘어나고 의료비와 교육비가 급증하면서 사회보장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사회보장을 국가가 담당하게 됐지만 이는 더 많은 세금 고지서를 의미한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 조세부담률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세부담을 실제 항목별로 분석해 보면 통계 분류에 의한 착시 현상이 있다. 개인 성향이 높은 미국은 국가 연금과 보험료를 포함하여 28%의 조세부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강제로 납부하는 사설 의료보험료를 포함하면 조세부담률은 국민소득의 34%로 증가한다. 


의료보험료 통계에 숨겨진 세금이 6%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은 연금 기여금 4.5%만을 조세부담으로 계산하지만 프랑스는 16.5%에 이르는 연금 기여금 모두를 조세에 포함하기 때문에 여기에도 숨은 세금이 있다. 이를 모두 포함하면 사실상 미국과 유럽의 조세부담률은 대동소이하다. 


결과적으로 세금이지만 미국은 정치적 부담으로 세금을 세금이라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세부담을 계산할 때는 모든 세금을 포함한 국민부담률이 더 정확하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총소득보다는 자기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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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동자가 근무기간이 끝나고 은퇴 후에 받는 돈을 연금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1800년대부터 시작된 연금은 신체장애와 고령 생존자에 대한 혜택으로 출발했다. 미국에서 연금은 1800년대 중반 지방공무원인 소방, 경찰과 교사에게 도입된 뒤 점차 민간으로 확대됐다. 


1875년에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사적 연금을 도입했고 1920년에는 철도, 석유 및 금융 같은 산업에서 연금을 제공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6년 사회보장 제도를 도입할 때 다른 나라를 참조하여 65세를 연금 개시연령으로 했다. 미국에서 공무원 연금은 민간과의 경쟁에서 시작했다. 국가는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민간기업에 맞서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연금을 강화했다.


과거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평생 일하면서 살았다. 평균 수명이 낮았기 때문에 극소수의 축복받은 사람만이 일할 수 없는 나이까지 살 수 있었다. 일정 연령이 지나면 하던 일을 그만둔다는 생각은 19세기까지 낯선 개념이었고 고령에 은퇴한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18세기 뉴 잉글랜드 성직자인 메더(Cotton Mather)는 노인들은 해고에 의한 은퇴에 기쁨을 느껴야 한다고 했다. 


평균수명이 2배 이상 늘어난 지금 해고에 의한 은퇴는 기쁨보다는 고통이 되고 있다. 여유 없는 퇴직자는 은퇴 후 생계유지, 여유 있는 퇴직자는 의미 있는 시간 보내기라는 과제가 생겼다. 연금 제도는 평균 수명이 40세이던 시절 설계됐고 연금 지급이 65~70세에 시작되었다. 


따라서 대다수의 사람은 연금을 탈 기회가 없었고 죽을 때까지 일했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연금제도는 잘 작동할 수 있었다. 평균수명이 90세에 이르는 현재 모든 사람이 60세 이전에 은퇴하여 30년 이상을 연금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속하기 어렵다. 


현재의 연금제도는 국가 재정, 인구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복지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후대에 짐이 되는 부담스러운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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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은 뚜렷하게 세금의 성격을 가진 조세이다. 건강보험이 보험이라면 부담은 공평해야 하며 자발적으로 납부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건강보험은 보험이라는 이름 외에는 자발성도 없고 부담도 공평하지 않다. 보험료 납부에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보험의 원칙에 어긋나지만 그래도 참을 만하다. 


문제는 상위 0.1%의 부자에게 납부 상한을 두어 특혜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조세라면 부자가 더 납부하는 것이 당연 하지만 보험료라는 이름으로 상한을 정하여 세금처럼 감면한다. 현재 지역건강보험은 상위 0.1%의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배려해 주고 은퇴자와 개인사업자가 책임지는 역진성이 강한 나쁜 세금이다. 회사에서 보험료를 절반 부담해 주고 재산과 관계없이 보수에서 일정액 만을 내는 직장인은 행복한 예외이다.


지역건강보험료는 현재 경제적 약자와 상위 0.1%의 부자를 배려하고 애매한 중간층이 떠맡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근로소득이 없는 은퇴자와 지역가입자는 보험료 산정에 불공정을 말할 수밖에 없다. 직장인과 달리 일반가입자는 건강보험료를 절반 분담해 주는 고용인이 없다. 


중간층의 보험료가 비쌀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국가가 개인의 건강보험료를 절반 부담하라는 요구도 있다. 실제 건강보험료는 매년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평균수명 연장과 의료기술 발달로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된다. 과연 언제까지 현재의 방식으로 건강보험이 재원을 조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차라리 건강보험을 세금으로 인정하고 국세로 징수하면 어떨까? 건강보험을 세금으로 부과하면 과세대상이 확대되어 보험료의 형평성 논란을 종식할 수 있다. 정치인은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징수하는 금액이 늘어나기 때문에 싫어하겠지만 징수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건강보험을 세금으로 전환하면 보험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사생활을 조사·감시하고 소득을 추적하는 무서운 기관이 하나 사라지게 된다.


건강보험을 세금으로 인정하고 징수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부담될 수 있다. 이 문제는 장기 과제로 넘기더라도 건강보험의 징수 기능과 지출 기능은 지금 즉시 분리해야 한다. 기능을 분리해야 하는 이유는 권력집중이다. 


역사적으로 조세를 부과하는 권력과 지출하는 권력을 한곳에 집중하면 지출하는 권력이 언제나 징수하는 권력을 압도한다. 정부는 항상 과도하게 지출하려는 경향이 있고 자신의 입맛대로 수입을 늘리고자 한다. 영국은 이러한 권력을 분리하여 국가 발전을 이루었다. 영국은 영원한 지출자 왕에게 새로운 세금을 만들거나 세율을 올리는 권리를 주지 않았고 주어진 수입의 범위에서 살아가도록 했다. 


건강보험도 징수와 지출의 권력을 한 곳에 모으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의 기관이 과세권과 지출권을 가지면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보다 많이 징수하려는 노력이 더 강해진다. 


높은 징수는 결국 세금이고 공평하지 않은 건강보험료 체계는 더 많은 편법을 조장한다. 현재의 건강보험은 국민이 기쁜 마음으로 납부하는 보험이 아니라 불평불만하면서 편법의 기회를 노리게 만드는 세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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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건강보험료처럼 세금은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 세금인 것이 너무 많다.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준조세라고 불리는 이들 세금은 부담금, 사회보험료, 수수료, 기부금 및 성금과 같이 모든 비자발적 부담금을 말한다. 


KBS 시청료도 조세이다. 피하려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처럼 실제 필요한 조세는 일부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상당수의 조세는 관료의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 이는 근대 이전 프랑스에서 불필요한 관직을 만들어 수수료를 걷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세금은 준조세처럼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나기도 하지만 우리가 전혀 세금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숨은 세금이 있다. 이 세금은 국가가 통화 증발을 통해 가져가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세금이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 책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참고 문헌

Taxing the Rich (Kenneth Scheve & David Stasavage, Princeton University, 2016), Taxing Inheritance, page 93

The Sex of a Hippopotamus (Jay Starkman, Twinser Inc 2008), Retirement at Age 65, page 345-346

The Triumph of Injustice (Emmanuel Saez and Gabriel Zuckman, Norton & Company 2019), A World of Possibility, page 179

The Triumph of Injustice (Emmanuel Saez and Gabriel Zuckman, Norton & Company 2019), Spiral, page 95-97

Those Dirty Rotten Taxes (Charles Adams, Simon & Schuster 1998), The Search for the Just Tax, page 226-227, 

Fight Flight Fraud (Charles Adams, Euro-Dutch Publishers,1982), The Swiss- From William Tell to no-tell, page 138-139, 

Fight Flight Fraud (Charles Adams, Euro-Dutch Publishers,1982), Proposition 13: Format for reform, page 288-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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