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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Jun 27. 2023

마법의 인플레이션

“세금 걷는 기술은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게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 털을 뽑는 것과 같다.”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재무장관 콜베르(Jean Baptiste Colbert)의 명언이다. 국가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에도 이 격언을 잘 지키고 있다.


국가는 세금을 여기저기에 숨겨 놓아 납세자가 아무 생각 없이 내도록 한다. 우리는 술집에서 소주를 마실 때,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차를 운전하며 세금을 내고 있으며 봉급을 받을 때도 세금을 낸다.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세금을 내게 된다. 이러한 세금은 누적적으로 엄청난 금액이지만 우리는 이를 직접 내거나 한꺼번에 내지 않기 때문에 비명을 덜 지르고 있다. 국가는 이러한 세금 이외에도 사람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면서 세금 아닌 세금을 걷고 있다.


보통 사람이 전혀 알지 못하는 이상한 세금의 이름은 ‘부채’이다. 이 세금은 국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미래에 대한 세금이다. 국가부채는 후대에게 물려주는 ‘대표 없는 과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이 빌린 전쟁 부채는 100년이 지난 2015년에서야 갚았다. 전쟁과 관련 없는 전후 세대들 전쟁 부채를 갚은 것이다.


국가는 전쟁 같은 위기상황에서 부채를 발행하고 전쟁은 부채를 발행할 좋은 명분을 제공한다. 영국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통화를 증발했다. 통화증발은 보통 부채 증가와 함께 이루어진다. 그 결과 빵 가격은 50%, 낙농 제품은 75%, 집세는 76%, 소금 가격은 270% 올랐지만 임금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이 통화 증발의 인플레이션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보이지 않는 세금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흉년으로 곡물가격이 급등하자 노동자들의 폭동이 많이 일어났다.


미국 남북전쟁에서 남부는 부채를 발행하여 전쟁 비용을 우선 해결하고 앞으로 수익을 누리는 후손들이 이를 갚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남부는 화폐와 채권을 끝없이 발행하여 전쟁비용을 조달했다. 통화가치는 급락했고 물가는 급등했다. 남부 통화는 누더기(rags) 또는 건초(fodder)라고 불리었으며 사람들은 남부 1달러보다 낙엽이 더 가치가 있다 했다.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깨달은 사람들은 지금 당장 세금을 올리지 않으면 모두가 파멸할 것이라 했다. 세금에 반대하는 의원은 적군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통화증발 대신 차라리 과세하라고 주장하는 신문 사설이 등장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비용을 국내 부채로 조달했다. 독일의 부채는 1914년 50억 마르크에서 1918년 1,560억 마르크로 30배 이상 불어났다. 전후에도 독일은 대외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종이돈을 찍어냈고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그 결과 노동자와 예금을 가지고 있던 은퇴자 등이 가장 큰 비용을 지불했다.


초인플레이션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발생한다. 독일 노동자는 맥주 집에 도착하면 여러 잔의 맥주를 한꺼번에 주문했다. 맥주를 마시는 동안 술값이 오를 것을 대비하여 노동자들은 거품 빠진 맥주를 선택했다. 헝가리에서는 시시각각 물가상승으로 매일 3회 임금을 지급했으며 배우자들은 화폐가치를 보존하고자 매일 3회 사업장을 방문하여 이를 수령했다 한다. 


제2차 세계대전기간 교전국들은 부채를 발행하여 전쟁비용을 조달했다. 각국은 전쟁기간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화폐를 발행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교전국들이 장기간 소모전을 지속할 수 있던 이유는 부채와 화폐 증발로 전비 조달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쟁 비용의 48%를 세금을 통해 조달했지만 부채가 6배 증가했다.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많은 신용을 제공받았다. 이들 부채는 달러로 표시됐기 때문에 영국은 폭락한 파운드화 대신 자산을 팔아서 이 부채를 갚아야 했고 많은 금이 미국으로 넘어갔다. 전쟁 기간 영국의 물가는 2배 올랐고 파운드 가치는 50% 폭락했다.


국가가 통화를 남발하고 부채를 발행하는 것은 역사적 현상이다. 로마제국은 재정이 어려운 시기 금은화의 함량을 줄여 평가절하했고 오스만 제국도 평가절하를 남발하다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 원나라도 동전 주화와 종이돈을 남발하여 민생을 어렵게 했다. 이후 명나라에서 은이 주력 화폐로 사용된 이유이다. 


부채 발행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음에도 모든 나라에서 지속되고 있다. 국가는 과도한 복지비용을 그 이유라하고 있지만 조세 저항 없는 부채의 매력에 빠진 것 같다. 아니면 국가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세금의 매력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가는 전쟁이 아니더라도 절체절명의 위기를 강조하면서 또다시 부채를 발행하고 있다. 가히 부채 중독이라 할 수 있다. 2007년 세계금융위기, 2019년 팬데믹은 부채를 발행하기 좋은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이 상황에서 대부분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추면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라는 방식으로 돈을 풀었다. 이는 통화가치를 하락시키는 조치로 부채 발행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집값과 물가 상승이라 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미국의 통화량은 1971년 $4,800억였으나 현재는 이보다 30배 늘어난 $16조에 이르고 있다. 이 기간 미국 GDP는 16배 늘고 인구는 60% 증가했으나 화폐 증발이 2배 가까이 압도적이다. 상황은 영국도 유사하다. 부채와 통화 증발의 결과로 나타나는 인플레이션은 가장 가증스러운 세금이다. 


케인즈(Keynes)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세금은 백만 명 중 한 사람도 알기 힘들다 했으며 이 세금은 신고되지 않고, 알 수도 없으며 잘못 이해되고 있다.” 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세금은 일부 사람의 재산을 압수하여 다른 사람에게 배분한다. 이 세금은 월급생활자와 저축을 가진 사람을 처벌하고 빚이 많은 국가와 실물 자산을 가진 사람을 유리하게 만든다.


화폐가치가 하락하면서 대표적으로 상승한 실물 자산은 집값이다. 금본위제가 기본이던 과거 영국에서는 집값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영국의 집값은 1290년부터 1939년까지 649년 동안 887% 상승했다. 많이 오른 것 같지만 이는 매년 0.4% 상승한 것이다. 실제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집값은 49%가 떨어졌다.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화폐를 증발한 기간 동안 집값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영국의 집값은 1939년부터 매년 8% 상승하여 지금까지 41,363% 올랐다. 많은 사람들은 주택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에 집값이 상승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통계는 이와 다르다. 영국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인구는 5% 증가했고 주택공급은 10% 늘었다. 


집값이 수요와 공급의 문제라면 이 기간 집값은 하락해야 하지만 실제 집값은 3배 올랐다. 이 기간 주택담보 대출은 370% 증가하여 집값 상승은 부채로 인한 통화증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통화 증발로 인한 집값 상승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적인 현상이다. 


통화 증발로 가격이 오른 것은 집값만은 아니다. 미국의 물가는 금본위제이던 1차 세계대전 이전 100년 동안 40% 하락했고 영국은 30% 하락했다. 금본위제가 포기되거나 약화되자 상황은 반전됐다. 1914년 이후 약 100년 동안 각국의 통화는 구매력을 99% 상실했다.


 영국에서 1914년 1 페니는 현재 1파운드보다 더 많은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100년 전에 비해 물가가 30배 올랐다고 한다. 이는 물가가 오른 것이 아니라 화폐가치가 떨어졌다 할 수 있다. 1914년 이후 예금을 가진 사람은 이자를 포함한다 하더라도 매년 통화가치의 3-5%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인플레이션의 마법이다.  


경제학자 해즐릿(Henry Hazlitt)은 인플레이션을 ‘특히 악랄한 세금’이라 했으며 프리드먼(Milton Freidman)은 “처음에는 고통 없고 때로는 즐거운 것처럼 보이는 숨겨진 세금으로……인플레이션은 법 없이 부과되는 세금이다. 이는 진정 대표 없는 과세이다.”라고 했다.


통계학자 테일러(Bryan Taylor)는 20세기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으며 이는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했다. 인플레이션은 그 의미 또한 왜곡되고 있다. 현재 인플레이션은 소비자가 주로 구매하는 물건의 가격 동향을 집계하여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 통계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집값과 금융자산을 빼고 계산하는 문제가 있다. 


소비자 물가를 계산하면서도 일부 조정이 있다. 가령 소고기 값이 2배 오르면 소비자들이 소고기 대신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사 먹는다는 가정 하에 소고기 값을 빼고 물가지수를 계산한다. 기술 발전에 의해 같은 가격에 살 수 있는 TV수상기의 기능과 크기가 커지면 이를 물가가 내렸다고 계산하여 소비자 물가는 대부분 안정적이다. 발표된 물가지수와 체감 물가가 항상 다르다고 느끼는 이유이다.


만약 이자율이 통화공급을 반영하여 결정된다면 이자율은 현재의 2배 이상이 되어야 한다. 높은 이자는 집값 거품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는 더 많은 정부지출을 위해 통화공급을 늘리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갚아야 하는 실질적인 부채를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이는 사람들의 부를 국가로 이전시키며,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부의 쏠림을 가져온다.


레닌(Vladimir Lenin)은 “정부는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통해 국민의 중요한 재산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면서 비밀스럽게 몰수한다.” 했다. 인플레이션은 특정계층에 혜택을 주기도 한다. 강남에 집을 가진 사람처럼 모두가 선호하는 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특혜를 누린다. 반대로 실물 자산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와 예금 자산을 가진 은퇴자들이 인플레이션 비용을 납부하게 된다. 


미래 세대 또한 인플레이션과 집값 상승으로 인한 부의 불균형을 부담하게 된다.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으로 집을 살 수 없고, 결혼할 수 없으며 아이를 낳는 것이 불가능하게 됐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다시 부채를 동원하여 주택 지원책을 발표하고 출산 장려 정책을 도입하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가난한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


국가가 통화를 증발하여 얻게 되는 이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가는 소리 소문도 없이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할 수 있다. 10년 전 토지를 10억에 구입하여 30억에 팔았다면 원칙적으로 20억의 양도차익에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에 의하여 줄어든 화폐가치를 고려한다면 실제 늘어난 자산가치는 0일 수 있지만 세금은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20억이라는 명목상 차익 때문에 가장 높은 구간의 양도소득세율을 내야 한다. 


양도소득세의 기준 구간은 물가 상승을 고려하여 변해야 하지만 잘 변하지 않는다. 가령 10억 이상의 양도차익에 최고세율을 적용하고 그리고 이 기준 금액이 10년 동안 변하지 않으면 국가는 새롭게 법을 만들지 않아도 더 많은 세금을 걷을 수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물가와 땅값이 전국적으로 3배 오르면 실제 양도차익은 없지만 많은 거래가 최고 세율을 적용받아 높은 세금을 내야 한다. 소득세도 최고세율 기준을 장기간 고정하면 더 많은 세금을 걷을 수 있다. 실제 화폐구매력으로 볼 때 소득은 증가하지 않았지만 인플레이션 때문에 고소득자가 늘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최고세율의 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최근 인플레이션의 문제를 잘 보여준 사건은 공인중개사 보수요율이다. 보수요율은 부동산 거래금액에 일정비율로 고정되어 있었다. 집값 폭등 상황에서 공인중개사는 거대한 인플레이션의 혜택을 누렸다. 시민사회는 터무니없이 높아진 수수료에 반발했고 공인중개사는 인하에 결사 반대했다. 


논란 끝에 반값 수수료제도가 채택됐지만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높은 수수료이다. 만약 정책입안자들이 초기에 최대 수수료 100만 원처럼 정액제로 보수요율표를 만들었다면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공인중개사는 물가 상승을 들어 수수료 인상을 로비했을 것이고 시민 사회는 이에 반대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가장 피해를 본 징세 기관은 KBS이다. KBS가 징수 구조를 잘못 설계했기 때문이다. KBS수신료는 1980년대 2,500원이었으나 지금까지 30년 넘게 올리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의 반대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만약 초기 설계에서 시청료가 물가 상승을 반영하도록 했거나 전기요금의 2%라는 식으로 못을 박았다면 KBS는 시청료 인상 투쟁 없이 편안하게 더 많은 세금을 걷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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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금융위기와 코비드 19 이후 풀린 돈으로 우리는 상당기간 인플레이션을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통화 증발로 화폐가치를 떨어뜨려 덕을 본 국가는 여기에 더하여 인플레이션으로 사악한 세금을 소리 소문 없이 부과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플레이션 시대 모든 세금과 수수료의 징수 구조는 재설계되어야 한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 책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참고 문헌

Daylight Robbery (Dominic Frisby, Penguin Random House UK 2019), The Unofficial Taxes: Debt and Inflation, page 137-145, the birth of big government page 106-116, The second world war, the US and the Nazis, page 117-125, the system is broken page 203, 

The Great Tax Wars (Steven R. Weisman, Simson & Schuster 2004), Every Man’s Duty to Contribute, page 58-64, 

Fight Flight Fraud (Charles Adams, Euro-Dutch Publishers,1982), The Taxing Habit grows, page 253, 

The Triumph of Injustice (Emmanuel Saez and Gabriel Zuckman, Norton & Company 2019), Taxing the Rich, page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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