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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Sep 09. 2023

시작과 끝에 관한 사색 6

빅뱅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2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의 물리학과  교수인 숀 캐럴은 빅뱅 우주론자다. 하지만 그에 앞서, 자칭 '양자 우주론자'라고 부르는 물리학자 그룹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는 우주의 맨 처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혹은 그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을지를 알고 싶어 한다. 캐럴과 다른 양자 우주론자들은 빅뱅이 일어난 순간에 우주만 태어난 게 아니라 시간 그 자체도 탄생했을 거라고 믿는다.


양자 우주론은 추측을 기반으로 하는 분야다. 예를 들어, 우주의 탄생은 한순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 장면을 목격한 이는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태초에 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공할 만큼 높은 밀도의 물질과 에너지의 중력 즉 앞 장에서 다루었던 양자 중력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론물리학자들은 빅뱅 상황에 관하여 펜과 종이, 그리고 수학을 이용해 추측해 보려 노력한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시간은 그 기막히게 높은 밀도의 덩어리에서 생겨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또 어쩌면 시간은 이미 그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빅뱅 때 나타난 것은 미래 방향으로 달려가는 시간의 화살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캐럴은 우주의 질서와 상대적 매끈함smoothness 에 매료되어 있었다. 물리학에서 질서는 정확한 뜻을 지닌다. 정량화도 가능하다. 그런데 물리학에서는 질서보다 무질서의 상태를 발견할 가능성이 더 높다. 마치 카드 한 벌을 마구 섞어놓고 나면, 카드 여러 장을 집었을 때 순서대로 이어진 카드보다 순서가 뒤섞인 카드를 집을 가능성이 더 큰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우주의 규모에 대입해 보면, 물리학자들이 제시하는 관측 가능한 우주의 수많은 물질을 보면서 우리는 우주가 실제보다 훨씬 더 무질서하고 울퉁불퉁할 것이라 예상하게 된다.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에는 천억 개에 달하는 은하들이 존재한다.


그들을 충분히 넓은 공간에서 보면 멀리 있는 자갈빛 해변처럼 매끄럽게 보인다. 우주 속의 한 커다란 공간이 또 다른 커다란 공간과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보통 우리가 우주를 관측할 때는 우주 물질들이 균일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보다는, 같은 물질들이 매우 적은 수의 초대형 은하나 거대 은하단, 또는 거대질량 블랙홀에 뭉쳐져 있는 모습을 관측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한다. 해변의 바위 속에 뭉쳐져 있는 모래들처럼 말이다.(40-41 쪽)

양자역학과 더불어 양자중력이론을 바탕으로 계측된 우주는 일반적으로 은하계나 대규모 성운이나 성단을 원거리에서 관측한 매끄러운 예상도와는 달리 울퉁불퉁한 구조를 가졌다.


일단 빅뱅 이후의 시간의 방향대로 현재에서 미래로 진행되어도 질서에서 무질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태양계도 50억 년 이후에는 태양의 수명이 다되어 블랙홀이 되어 주변 행성을 다 흡수할 것이다.


우주 가운데는 곳곳에 블랙홀이 존재하고 또 어떤 블랙홀들은 충돌해서 융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빅뱅 이후 형성된 코스모스(질서의 우주)는 점점 더 카오스(혼돈의 우주)로 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의 정상적 모습은 질서와 생명이 아니라 무질서와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방향도 가능하다. 즉 빅뱅 이전으로 흐르는 시간도 있기 때문이다.

캐럴과 그의 동료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질서가 시간의 '화살'과 같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질서가 무질서해지는 움직임을 통해 시간이 나아가는 방향이 결정된다고 본다. 이를테면, 우리 눈에는 테이블에서 떨어진 유리잔이 깨져서 바닥에 유리가 흩어지는 영화 속 장면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만약 바닥에 흩어져 있던 유리들이 다시 하나의 유리잔으로 뭉쳐져 테이블 가장자리에 놓인다면, 아마 우리는 영화가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깨끗했던 방을 그대로 둔 채 시간이 지나면 그 방은 더러워진다. 전보다 덜 깨끗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라고 부르는 것은 더 엉망이 된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과거'라고 부르는 것은 더 정돈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 두 개의 상태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통해, 우리는 이 세계의 시간에 정확한 방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우리 우주의 비정상적인 질서 정연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캐럴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MIT의 선구적인 우주학자 앨런 구스 Alan Guth와 함께, 아직 학계에 발표하지 않은 '두 방향의 시간 Two-Headed-Time'이라는 이론을 개발했다.


이 이론에서 시간은 영원히 존재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나 뉴턴, 아인슈타인의 정적인 모델과 달리, 우주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더 나아가 우주가 시간과 대칭으로 비례하며 진화한다. 즉, 빅뱅 이전의 우주가 빅뱅 이후의 우주와 거울을 가운데 두듯 비슷한 모습으로 변화한 것이다.


140억 년 전, 빅뱅이 일어나기까지 우주는 수축했다. 그리고 빅뱅의 순간, (과학자들은 이 순간을 t=0이라고 부른다.) 가장 작은 크기로 압축되었고, 바닥으로 떨어진 슬링키 스프링처럼 충돌과 함께 최고 압축에 도달했을 때, 다시 팽창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부피를 키워나간 것이다. 다른 양자 우주론자들도 이와 관련된 이론 모델을 제안했다.


양자물리로 인해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무작위 변동 때문에, 수축하는 우주의 모습이 팽창하는 우주와 완벽히 같을 수는 없다. 그 때문에 물리학자 앨런 구스가 우리 우주의 수축 단계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빅뱅의 이전과 이후의 우주 모습은 굉장히 비슷할 것이다.


이제 과학에서의 질서와 무질서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게 되었다. 다른 조건이 모두 같더라도, 공간이 넓을수록 물질들이 흩어질 공간이 많아지므로 그 공간은 더욱 무질서해진다. 마찬가지로, 좁은 공간일수록 더욱 질서가 있다. 그 결과, 캐럴과 구스가 상상한 바에 의하면 우주의 질서는 빅뱅의 순간에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그 전후로 질서의 정도가 줄어들었다. 시간의 방향이 질서가 무질서해지는 움직임과 같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만일 시간을 쭉 뻗은 길이라 가정하고, 빅뱅을 그 길 위 어딘가에 움푹 팬 구덩이라고 한다면, 그 구덩이 옆 표지판에 그려진 반대 방향의 화살표 두 개가 미래로 가는 방향을 알려줄 것이다. 그래서 '두 방향의 시간'이다. 구덩이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는, 그러니까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두 개의 화살표 가운데에서는, 시간의 정확한 방향이 없다. 이때 시간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아원자 세계에서 본다면, 테이블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깨져버린 유리잔의 모습만큼이나, 바닥에 흩어진 유리들이 튀어 올라 유리잔이 되는 일도 흔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집이 더욱 깔끔해지는 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집이 지저분해지는 일만큼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때 아원자 세계에 사는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경우가 똑같이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41-43 쪽)

빅뱅 이전의 우주 상태에 대한 양자물리학적 사고가 가능해지면서 시간의 가역성(현재에서 미래로만 진행) 뿐만 아니라 불가역성(현재에서 과거로의 불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이론적으로 제기되었다.


빅뱅 이전에 이 특이점을 중심으로 수축하는 시간의 방향이 있고 반대로 그 이후 팽창하는 방향의 시간이 존재한다. 이것은 종교적으로 전생과 내세가 공존한다는 믿음과 같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시간의 양 방향 즉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로 혹은 미래로 흐르는 것이 우리의 사유 속에서만 아니라 실제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한다.


이어서 캐럴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과거는 기억해도 미래는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빅뱅의 상태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에게 그건 정말 놀라운 깨달음의 순간이었습니다.” 과연 이 깨달음은 양자이론으로부터 어떻게 도출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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